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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떠나. 일전에 이야기했듯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서 만나기로 했어. 물론 그가 사는 곳으로 가서 그 사람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내 조카와 사촌 동생이 그곳에 살고 있거든.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부모님들이나 가족들에게 어떤 기대를 주고 싶지가 않아서. 일이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그 사람과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4달이 되어 가네. 한국을 기점으로 위 아래로 나누어져 사는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 어쩜 우습기도 하고 또 그런걸 인연이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돼. 어떤 방법이 되었든 가능하면 결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고 보면말이지.
물론 결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 그 뒤로 아이에 대한 요구가 이어 질 것이고 또 그로 인해 이런 저런 많은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스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를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든 한번은 선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이야. 평생 효도를 모르고 살아온 내가 그나마 부모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결혼이고 보면.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겠구나. 적지 않은 나이에 그 곳으로 유학을 갔다 지금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고 하더군. 사진도 몇 장 받아 보았어. 글쎄 사진 마다 다른 사람 처럼 보여져서 어떤 사람이다라고 인상을 이야기 하긴 어렵네. 단지 몇 번의 통화, 메신저, 그리고 메일을 통해서 느껴지는 건 밝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느껴져.
그런데 그 사람과의 만남이 이제 채 하루도 남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착찹한지 모르겠어. 그래… 너 때문이겠지. 내 심장 속에서 벌떡 벌떡 살아 숨쉬는 네가 있으니까 말이야.
어쩜 너와 나는 오래전 신파극 대사처럼 그저 마주보고 달리는 철로인지도 모르겠어. 멀지 않은 곳에 손을 뻣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만날 수 없는, 혹 만난다 하더라도 밝은 태양의 그것이 아니라 조금은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만 만날 수가 있으니까. 누구는 불륜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오래전 너와 처음 만났던 캠퍼스 언덕에서 처럼 사랑인데말이지.
나 어쩌면 그 사람에게 사랑하노라고 말 할지도 몰라. 또 어쩌면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늘어 놓을지도 모를 일이고. 내게 지금 필요한 사람이 그 사람이니까. 그리고 지금 내게 가까이 할 수 있는 현실이 그 사람이니까 말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네게 주었던 내 모든 사랑의 반을 가져 오려고 해. 그래. 그냥 마음을 담지 않고 사랑한다고 사랑하노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그 사람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인형을 가질 수는 있지만 같이 살 수는 없으니까.
그 사람 또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고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면. 나. 그 사람에게 널 보내고 닫아 놓았던 마음의 빗장도 한껏 열어 놓으려 해. 한 심장을 가지고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내겐 이렇게 한 심장에 두 사람을 놓어야만 하는 형벌이 지어져 있으니까.
미안하다. 너만을 사랑하고 내게 너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했었던 내 말을 내가 깰지도 모르니까. 허언을 하지 않는 것이 남자여야 하는데 내가 남자 구실을 못하는구나. 이런 나를 넌 이해해 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