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퇴근 즉시 소파에 누워 ‘시체놀이’에 들어간다. 곧이어 귀가한 여자는 TV 리모컨을 쥔 채 굳어버린 남편을 발견한다. 그녀는 남편을 다그쳐 청소를 맡기는 한편, 저녁을 준비하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걔가 똑같은 블라우스를 입은 거 있지? 그 위에 감색 슈트를 입으니까 되게 안 어울리더라. 킬힐에…. 그런 차림으로 회의에 지각하고는 자료도 잘못 준비한 거 있지?”
남자는 아내가 뭘 얘기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다. 블라우스와 킬힐, 지각, 회의 자료 같은 것들이 뒤엉킨다. 차라리 TV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내의 이야기에 묻혀 뉴스가 들리지 않는다. 슬며시 볼륨을 높인다.
여자는 둘 사이에 벽이 등장했음을 알아챈다. 격렬한 배신감. “뭐야! 시끄러워죽겠어. TV 좀 꺼!” 싸움은 그렇게 시작된다. 며칠 전 시어머니의 전화를 시작으로, 여자가 마음속에 다져놓았던 분노들이 1분에 4000발씩 벌컨포처럼 튀어나온다.
남자는 아내가 왜 자기를 한시라도 가만두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내가 등장하면 귀찮은 일이 마구 생기고, 도대체 모를 이야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난데없이 시댁은 왜 또 등장하는 건지.
어쨌거나 싸움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상황만 다를 뿐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이런 과정을 거친다. 전문가들은 “어느 쪽 잘못보다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남자와 여자의 스트레스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여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대화가 곧 스트레스 해소 수단인 셈. 누군가의 구두 색깔처럼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한다. 수다는 ‘배려와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불러내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반면 남자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축 늘어진다. 의욕 없이 누워 있거나 컴퓨터 게임, 친구와의 내기 같은 것을 원한다. 그렇게 하면 ‘경쟁과 욕망의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나와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런 싸움을 피하기 위해선 서로가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 서로 다른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잘못이 아니며 어쩔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최소한 어제보다는 충돌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남자는 아내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적당한 호응(‘정말이야?’, ‘그랬어?’ 같은)이 윤활유가 된다. 다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금물. (아… 이 부분은 절말 200% 공감 !!!)
여자는 남자에 비해 간단해 보이지만 훨씬 어렵다. 남자의 ‘시체놀이’를 최소한 30분 정도는 먼저 참아주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선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한상복의 남자이야기 중에서 발췌.
“도대체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던 중에 눈에 확 들어왔던 윗글을 읽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