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어떻게 한미FTA를 추진하게 되었는가.

  • #99210
    있는 그대로 68.***.80.72 2745

    이하는 소설이므로 감안하고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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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은 인정 강박에 중독된 사람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투쟁에 강박을 가진 것으로, 이는 단지 인정받지 못해서 욕구불만에 걸린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말했다시피 강박이니까.

    심 리적인 문제는 그 환자 본인이 그 상황에 의존하고 있음으로 주로 발생한다. 다시말해서 혹시 당신이 만성적으로 우울하다면 당신은 그 우울에서 효과를 누리고 잠재적으로 그 우울을 좋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그 우울이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어 병원을 찾게 될지라도, 다시말해서 나는 환자라고 수긍하게 될 지라도 당신의 우울에 대한 의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은 다시 우울해지고자 꼬투리를 찾게된다.

    노무현은 일생은 일종의 인정투쟁에 복무해 왔다. 더 강한 자, 기득권자에게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는 것에 최고의 목표를 두었고, 이는 그를 대단히 정치적인 인물로 성장시켰다. 그가 추구한 대의나 명분 또한 그런 의미에서 유용한데, 이러한 나르시시즘, 편향적 자기애는 명분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항상 명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명분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구차하게 변하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 동인에 의한 것이다. 거창하고 의지적인 명분이 없으면 자기 정당화가 불가능한 심리 구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싸우기 힘든 범사회적인 모순과 대척점에 서는 영원히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자로서 자리매김했고, 그 선봉을 자처함으로써 대중과 정치적 반대자의 인정을 얻어냈다. 그 투쟁을 통해서만 자기확인을 하기 때문에 그 투쟁은 영원히 지연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더 거대한 모순, 도저히 싸운다고 사라지지 않을 그런 자연적 사건과 대결한다. 예를 들면 지역주의가 그러하다. 동키호테가 풍차와 싸우는 심리이다.

    이 투쟁의 결과로 자신을 인정하는 자가 생기면 그에 대해 노무현은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왔다. 현재 그를 가장 노골적으로 이용한 사람 중 하나가 유시민인데, 유시민은 노무현의 어떠한 판단에도 인정과 존중을 표시해 왔다. 극히 최근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유시민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인으로 통용되는 서울대 출신의 인물이다. 논리 정연하다. 그의 논리는 늘 상대의 오류를 찾아내기위한 논증의 도구로 사용되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성찰에 사용되지 않는다. 이부분이 그의 함정인데, 단편적으로는 똑똑하다고 어필되어 있다. 유시민이 한결같이 표시하는 노무현의 결정에 대한 인정과 존중은 노무현에게 상당한 심리적 쾌락을 주었을 것이다.

    유시민은 이라크 파병 당시, 이는 자신이 그 당시 주장하던 정치적 자유주의와는 대척점에 잇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지했는데, 이는 불가지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더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어서 이를 승인한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 중요한 정보는 유시민은 모른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장관이 되어서도 그는 그 중요한 정보를 밝힌바가 없다. 주장의 근거나 주장의 진실성보다는 이러한 존중의 효과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을 정치적인 인간으로서 유시민도 이해하고 잇었던 것이다.

    맥락으로 돌아가서 노무현의 악명높은 회전문 인사도 바로 이러한 자기사람에 대한 반대급부, 논공행상의 형태를 띤다. 노무현은 자신의 탁월성을 인정하는 사람에 대해서 물질적인 보상을 반드시 챙겨왔다. 모두 인사권을 사용한 것으로 적재적소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기 보다는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을 채우는 데 주력했다. 심지어 최근에 읽은 좋은 책이 있으면 그 저자를 데려다가 청와대에 자리를 주기도 했다.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서. 지식인과 동급으로 자리하고자하는 욕구의 투영이다.

    이것또한 더 많은 반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위효과에 해당한다. 또 자신의 대의를 공유하여 한 배에 타게 하기보다는 단순한 반대급부로서 지위나 보상만을 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선행에 대해 일시불로 보상하고 어떠한 결의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들, 소위 간신들만을 꼬이게 한다.

    그또한 심리적으로 매우 적합한데, 노무현의 궁극의 대의는 자신의 탁월함을 인정받고자 하는 열등감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명분적인 보상보다는 물질적인 보상을 주게된다. 두번째로 자신을 인정한 자들에게 일시불 보상을 함으로써 그 인정한 자는 다시 노무현과의 신뢰를 갱신해야하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노무현은 반복적으로 갱신되는 존중을 원한다. 그래야 더 자주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노무현의 쾌락과 추종자들의 승인의 주기적인 협상은 정치적인 결사체보다는 계약 갱신 따위의 시장 거래를 닮아있다는 부분도 특징적이다.

    노무현은 이렇게 영원한 자기사람을 두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인정을 더욱 유보시키고 자신의 인정투쟁을 더 장기적이고 더 고차원적인 것으로 승화시킨다. 이것이 그저 인정투쟁이 아니라, 인정투쟁 강박이 가지는 진정한 묘미다. 지금 노무현의 정치적인 지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이것도 아닌데, 반대파도 아니고, 나는 또 다른 것인데, 니 생각과는 다르고, 이 부분은 이렇고 저 부분은 저렇다고 하며 상대로 하여금 더더욱 곤란한 선택의 순간에 처하도록 만든다. 타인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협상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복종적 존중으로 몰아가는 방법이다.

    그는 실제로 자기를 인정하고 따르는 한에서는 어떤 사람도 버리지 않았다. 삼성 로비스트로 분한 노무현의 오른팔의 얘기는 유명하다. 반명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어떤 사람과도 공존하지 않았다. 반드시 따라가서 뒷머리에 짱돌을 찍었다. 고건사태가 대표적이다. 브레인들이 다 잠적한 지금 소위 노빠들의 수준은 거의 문자 해독자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데 노무현은 이 이미지 나쁜 멍청이들을 앞으로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의 보람이기 때문이다.

    노 무현은 자신에 따르면 좌파이기도 하고 또한 시장주의자이기도 한데, 이는 자유방임 시장경제를 둘러싼 현 단계의 좌우파 대립을 염두에 둔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러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노무현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인정받는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좌파이면서 우파일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어느 우파보다도 급진적이고 소신있는 우파일 것이고, 어떤 좌파보다도 급진적이고 소신있는 좌파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차별되게 나서지 않으면 상대의 인정을 갱신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이것이 그의 많은 급진적인 선택의 동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혁신한다. 중요한 문제보다는 상대가 불편해하는 문제를 찾아서 그 부분을 혁신한다. 그는 보안법을 철폐하지 않았고, 공무원을 혁신하지 않았고, 양극화를 방치했고, 부동산 문제를 조기 진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언론과 끝없이 말싸움했지만, 정작 언론의 탈세 세금을 추징하지 않았고, 한나라당을 비난했지만, 단한번도 무시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강남을 비난했지만, 강남 아파트에 대한 자본적 특혜를 인정하고 강화했다.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대면하지 않으려는 그의 모순적인 처신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상대에게 인정받고자하는 노예적인 욕망임을 반증한다.

    강박적 행동은 자신에게도 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자신에게 항상적인 욕구불만 상태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은 모든 연설에서 “자신의 인기없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그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유도한 그 상황을 저주하는 것. 그것이 노무현의 삶의 방식이다.

    결론으로 돌아가서 이와 같은 리더를 움직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로서, 리더의 유능함을 인정만 해주면 된다. 그의 유능함을 인정하는 순간, 특히 반복적으로 인정하면 할수록 그의 내적인 모순은 그 순간에 한하여 궁극적으로 해소되어 그는 순한 양과 같이 협조적이 된다. 조만간 다시 인정이 필요한 상황을 다시 조성하여 자신의 불안을 투영하겠지만 말이다.

    몇가지 쉬운 것만 핵심적으로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완곡하게 가르쳐주면 이러한 리더는 온갖 상관없는 잡다구리한 얘기들을 주구장창 떠들게 되어 있다. 우선 은폐된 교육을 통해 살짝 나의 유능함을 강조하면 바로 낚여들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부하가 자신을 무시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대부분 스스로 자초했을 그 상황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강박적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통수권자가 부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구차하게 떠드는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행위 자체가 그가 목적하는 권위를 훼손하게 된다. 다시 부연하지만 인정투쟁 강박은 훼손된 형식으로 권위를 취해야만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이 즈음에 그가 떠든 장광설 중 그나마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아주 식견이 높으십니다.”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전혀 내 의견과 반대 얘기를 하면 다시 접어야 된다. 반대했다간 박살나니까. 인정투쟁 강박 환자들과의 토론은 전혀 일반적인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이다. 노무현의 토론에서 가장 많이 발언하는 것은 항상 노무현이며 그래야만 정당한 것이 노무현의 토론이다. 그러므로 반대해선 안된다. 낚아야 한다. 이 의견에 동의해야만 당신은 더 진정한 지성의 반열에 오리는 것이라고 해외 석학이나 하여간 더 그럴듯한 권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낚여지면 아까와 같은 시나리오, “참으로 탁월한 고견이십니다.” “저는 일찌기 이렇게 빨리 핵심을 지적하는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 제 뜻을 알아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리더들은 학벌의 후광에 눈이 부셔 이성을 잃는 경향도 있다.

    그는 유능해 보이는 부하의 존경에 만족하고 바로 그 방향이 옳은 정책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의 강박적 심리 상태에 잠시 위안을 주는 방향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정책 방향이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심리적으로 유약한 나르시스트에게 자신의 사정과 세계의 사정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고통스러운 일이며, 그러므로 이들은 공과 사를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확신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르고 옳은 길이다. 나는 이 선택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투쟁해 왔다.”

    (바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기 위해 명분을 따르다 탄압받는 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적인 욕구 불만에 기반한 투쟁이 곧 명분과 일치되도록 보이는 효과를 취하고 있다. 그 극한에서 심지어 노무현은 국가 통수권자임에도 모종의 기득권자에게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권력과 계급적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공정하게 탄압받는다고 발언해 왔다. “내가 굴러들어온 오리알이냐” 따위의)

    내 짐작에 그렇게 한미 FTA는 추진되었다. 주연은 노무현과 김현종이 아닐까 싶다. 김현종은 사실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잠재적으로 근미래의 대한민국 법치의 결정자이자 입안자이다. 조선으로 치면 정도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텔레비에 나오는 김종훈 대표는 그저 대외 담당 얼굴마담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현종 이 사람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자라서 미국에서 활동한 미국인. 법적으로 국적이야 어떻게되던 이 사람은 미국에서 자란 한국말도 어눌한 미국인이다. 난 김현종이 어떻게 노무현을 낚았을까 그 상황이 상상이 된다. 결국 김현종은 국보급 클라이언트의 대형 비지니스를 낚은 미국인 변호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 비지니스의 대상은 그 국보급 클라이언트의 재산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 인민의 재산인 것이다.

    이번 한미FTA의 백미는 이것으로 부여받게 될 우리 경제의 가혹한 앞날이 아니다. 인정투쟁 강박증 환자로서 노무현에게 이번 한미 FTA의 백미는 (한국어를 제외한) 몇 개국어에 유창한 미국 출신 엘리뜨가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결제를 받으려 긴장한 얼굴로 매우 중요하다는 서류를 내미는 부분이다. 무관심한 사람들, 정적들, 난다긴다하는 지식인들, 그 모두가 자신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그의 결정을 숨죽여 기다린다. 정말 보람찬 일이 아니겠는가?

    • 빨간펜 68.***.87.69

      혓바닥/
      1. 부곽이 아니라 부각
      2. 본 글에는 FTA 결과에 대한 미래 예측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3. 왠만하면 입 다물고 있는게 노빠들 멍청하다는 인상을 줄일수 있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사료된다.

    • 68.***.66.124

      혓바닥 개 새애 끼
      빨간펜님 한 판 승

    • 타고난혀 24.***.114.121

      말참.. 아름답게 하시네요.. 이 아름다운 ㅅ ㄲ 님들아..

    • 타고난혀 24.***.114.121

      아름다운 tR님들 때문에, 글 삭제 합니다, 하튼 이 아름다룽 tR님들 행복하세요..

    • 지나가다 68.***.80.169

      빨간펜님 – 3번은 논리의 비약과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그나저나 말씀 한 번 점잖게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