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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이런가 온몸이 무겁고 찌뿌드드하니 일하기가 힘들고 살아가기가 벅차다. 내 인생에 역마살이 끼여 머나먼 세계인간 전시장 속에 와서 그야말로 바위틈에 한줌의 흙으로 뿌리를 내리듯 힘들게 사는 게 언제까지 될지 절벽에선 나무등걸에 매달려 바동거리며 사는 것 같다. 엄격한 법치국가 평등한 사회구조에 다양한 문화 속 이방인 틈에 살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 언어가 불편해 손해보는 사람, 그나마 같은 민족끼리 속이고 속는 가운데 있는 종교마저 갈라서고 흩어지는데는 혼돈스럽다. 게다가 모아둔 돈은 없는데 곧 돌아오는‘택스 시즌’이것만은 살아와 보니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빼 먹을 수 없는 평등한 집행이라 느낀다.
오늘도 나는 남의 집 수도파이프와 막힌 하수구를 뚫기 위해 거의 백년이 다되어 가는 낚은 집 환기통을 통하여 마루바닥 밑으로 기어 들어가 거미줄과 숱하게 쌓인 먼지, 온갖 잡동사니 여기저기 언제부터인가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를 뜯어내고 고치고 있다. 열 명에 여덟쯤은 여자손님이다. 까다롭고 깔끔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인마님! 처음에는 돈이고 뭐고 자존심 상해 지금까지 했던 일은 공짜다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뒤돌아 서기도 했고 괜한 트집으로 품삯을 뚝뚝 잘라 먹히는 일도 많았다. 지금은 나의 얼굴에 뱉은 침이 마를 때까지 참을 수 있거나 닦을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을 키웠고 주인들의 비위를 맞출 줄도 알게 됐다.
이 곳에서 나는 예전에 남을 부리고 우습게 여기던 ‘쟁’이가 됐다. 집수리를 하러 다니다 호화주택, 고급 차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성공했을까? 몹시 부러웠고 이민생활에 참 불공평도 많구나하는 열등감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옛날 잘 나갔으면 뭣해, 지금이 좋아야지 이민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땐 다 잘 나갔고 고국에 금송아지 매어놓고 왔다고 한다. 또한 남자는 S대학 여자는 Y대학 출신인 것을 자랑한다. 그래도 한국에서 많이 배우고 잘 나가던 사람들이 이민을 오지 시시한 사람은 오지도 못하는 곳이 아닌가. 시집가기 전 처녀의 과거와 이미 산 부동산 시세는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처해 있고 선택한 직업이 왜 이리 초라한지 이리 저리 궁리를 해 보지만 별 뾰족한 대안이 없다. 구조는 다르지만 공대 건축과 물을 먹은 얄팍한 재주로 밑천 없이 몸으로 때우는 일은 이 일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러움의 대상이던 부자들도 나중에 알고 보니 은행융자로 월 페이먼트를 힘들게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겉의 화려함 속에서 안의 근심을 끌어안고 사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산이 높으면 그림자도 그 만큼 큰 것처럼 전봇대만큼 살아가는 나의 그림자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십이년 전 김포공항을 뒤로하면서 허황되고 폐습된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여 살리라 다짐했던 초심, 집 떠난 탕자처럼 늘 가슴앓이하며 국경일과 명절이 다른 이국에서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늘 기도하며 남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며 그래야 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건강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이 상 태
약 력
순수문학 시, 수필 등단
시집 ‘낙숫물에 그려진 원 감정이 일렁이는 대로’
영랑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