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뒤 다 잘라먹고 지금 심정만 얘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여행 갔다가 알게 된 미국 여자가 있는데요
그 전부터 language exchange 사이트에서 알게 돼
email도 하고 skype 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었다가
같이 한 열흘 정도 한국에서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adventure를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그 여자도 항상
지루한 일상생활을 벗어날 수 있어서 정말 재밌고 잊지 못할
경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이후로 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원하는 그 친구의
기대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구차한 이유를 열거할 낯짝은 없지만, 서로 생활권이 다르고
그 친구는 입양해서 부양중인 딸들이 둘이 있으며,
제 스스로 long-term relationship 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게 5-6년 전인데,
워낙 오지랍 넓고 친절한 성격이라는 칭찬 또는 질책을 받긴 합니다.
잘 생긴 거나 대중적인 매력(외모나 재력 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저에게 호감을 가졌던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사람 바보 만드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이제 나이도 서른 다 돼 가는데
소문 나빠지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번뜩하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우스갯 소리도 잘 하지 않고
개인적인 질문하면 그냥 얼버무리거나 웃어넘기기만 하다 보니
재미없는 사람이 돼 가고 있지만, 차라리 그런 게 남들 구설수에 오르는 것 보단 낫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나니
제 자신이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워 자괴감 마저 듭니다.
이메일이나 전화할 생각만 하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심장이 떨려
잠이 안 올 지경이예요. 학교 공부 집중도 안 되고.
gmail.com 가서 패스워드 입력하고 엔터 치고 로딩되는
몇 초 동안 스팸메일만 잔뜩 뜨면 안도감에 한 숨을 내 쉴 정도예요.그러다 방금 한 3주 만에 이메일이 왔는데
“disappointing” 이라는 단어만 덩그러니 본문에 떠 있습니다.
순간 등골과 머리가죽이 따끔거리고 온몸이 화끈거리더군요.
목근육 주변에 혈압이 오르면서 숨쉬는 게 불편할 정도로
신경을 자극하는데,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그 친구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관계를 끝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참 감정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군요.
차라리 수치심 같은 걸 못 느끼는 파렴치라면 좋겠네.앞으로 여행은 아는 사람하고만 가든가
혼자 가든가 해야겠어요.
‘having fun’은 항상 그 댓가가 따른다는 것
잊혀질 만 하니 또 경험합니다.asshole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