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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시라소니 – 한 시대를 풍미한 주먹왕 시라소니 이성순의 극적 회심 이야기
[김두한과 함께 전설적인 조선 주먹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시라소니’. 그가 영락교회 집사였다는 사실 은 그렇게 널리 알려진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집사 이성순’에 대한 얘기도 일반엔 거의 알려지지 않 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였으며, 그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 이의현은 목사가 됐다. 그가 쓴 아버지 이성순의 말년 비화를 소개한다.]
아버지의 생을 크게 양분하자면 그 분기점은 이정재에 의한 집단린치 사건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집단린치를 당한 집적적인 계기는 이북사람들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당시 이북사람들은 월남한지 얼마 안돼 자리를 못 잡아 모두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침 퇴계로에서 미군 물건 장사를 하던 이북 사람들이 그곳이 철거되며 생계가 막막해지자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동대문 시장의 상권을 쥐고 있던 이정재에게 이들을 위해 자리를 내줄 것을 부탁했다.
53년 11월 어느 날. 아버지는 이정재의 방문 요청을 받고 동대문 시장 사무실로 찾아갔다. 단도를 휴대하라는 후배들의 권유를 “설마 정재가 나를 어떻게 하겠어?”라고 뿌리치며 이정재가 자신의 생각을 들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동대문 시장 사무실은 도끼, 절굿공이, 갈퀴로 무장한 이정재의 부하 수십 명이 잠복해 있었다. 수십 명과의 대결은 이미 만주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었지만 좁은 사무실 공간에서는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
‘집단린치 사건’ 이후 복수만 별러
한 시간 동안의 린치. 아버지는 반송장이 되어 버려졌다. 아버지는 이 사건 이후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다. 이정재에 대한 복수심은 하늘에 사무치고도 남았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58년 콩팥과 간에 이상이 생기고 장질부사까지 겹치는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맸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장수 목사의 간절한 기도로 완쾌됐다. 아버지 자신도 벽에 걸린 십자가의 빛이 몸에 닿으면서 병이 치유되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독교에 귀의하라는 어머니와 이 목사의 간절한 청을 끝내 거절했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복수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4.19와 5.16이라는 한국정치사의 격랑을 따라 아버지의 인생유전 또한 극적 전환점을 맞는다. 자나 깨나 복수만을 꿈꾸던 이정재를 격동기의 감옥에서 만나 용서하고 만 사실은 세간에 알려진 그대로다.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자에게는 절대로 주먹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때까지 지켜온 아버지의 신조였다.
복수의 칼을 내려놓은 아버지는 이장수 목사를 찾았다. 그동안 가족도 모르게 지니고 다니던 권총을 꺼내 이 목사에게 내밀었다.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정재를 전도하지 못한 것이 끝내 한이 됩니다.” 복수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쌓아가던 죄의 보따리를 주님 앞에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한때 한국 주먹계의 황제로 불리던 아버지 시라소니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주먹생활을 주님 앞에 묻었다. 아버지는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선 해인 1960년에 막내인 나를 낳았고 영락교회 집사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았다.
‘주먹’의 아들
아버지 시라소니의 생에 영향을 받아 목사가 된 아들(이의현 목사, 성현교회 담임)은 아버지 가 ‘위대한 주먹’ 이었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한 생’ 이었다고 말한다.
식물인간 아버지, 기도 받고 일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1980년도 무렵, 내가 체육대학을 다닐 때였다. 교회를 나가시긴 했지만 아버진 아직도 회개를 모르셨다. 어느 날 친목모임에 다녀오신 후부터 계속 두통을 호소하셨다. 이북 말로 머리 아프다는 것을 “골 쏴, 골 쏴” 하는 데 아버지의 이 호소는 점점 커져갔다. 결국 교회 옆 백병원에 입원하시게 됐다. 6인 병실이었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하도 소리를 질러 대셔서 병실 사람들이 잠도 못자고 피해가 많았다. 그러나 병명은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퇴원을 고집하셨다. 할 수 없이 고덕동 아파트로 모셨다.
아버지는 점점 건강이 나빠지셨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녔고 유명한 목사님을 모셔다가 예배도 드렸지만 아무 차도가 없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셨다.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구나…’ 하고 포기했는데 어머니만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삼각산에 가서 기도도 많이 하셨고 기도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러다 신설동 쪽 어느 교회 목사님이 모 기도원 원장이고 능력이 많아서 병자가 일어나고 귀신도 쫓아내니 그리로 한번 가보라는 권유를 듣고 주일날 그 교회를 찾아가셨다.
예배 후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목사님께 다가선 어머니는 “제 남편이 시라소니라는 사람인데 저희 집에 가셔서 기도 좀 해주세요.” 부탁을 드렸다. 원래 말투가 투박했던 목사님은 “이 여자가 주일날 어디를 간단 말이야?” 하시더니 어머니의 양손을 덥석 잡고 “살아계신 하나님, 이 여인에게 능력을 주셔서 기도할 때 남편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주시고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셨다. 그런데 교인 중 한 분이 “3시에 우리교회에서 은사집회를 하는 데 인도하시는 강도사님이 은혜가 많으시니까 참석해 보세요.” 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3시 은사집회에 참석하셨다.
집회에서 박수 치는 장면, 소리 높여 기도하는 장면을 처음 본 어머니는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그런데 집회를 인도하시는 강도사님이 “이 자리에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세요.” 라고 하셨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하다 보니 어느 새 두려움이 사라졌다. 집회 후 강도사님께 아버지의 상태를 얘기하자 “남편은 귀신이 역사하고 있으니까 댁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기도 잘 하고 은혜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그러면 정체가 드러날 겁니다. 못 당할 것 같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내 방으로 모시고 가깝게 지냈던 순복음교회 전도사님 내외와 영락교회 청년 한 분에게 도움을 청하셨다. 밤 10시 무렵 아버지를 가운데 두고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됐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느뇨…”
나는 장로교회 신자였다. 박수 치는 것, 눈물 흘리는 것, 소리 질러 기도하는 것은 구경도 못해본 ‘거룩한’ 신자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단이라고 하던 때였다. 전도사님은 어정쩡한 내 모습을 보고 적극적으로 찬양할 것을 권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마음속에 의구심이 솟아났지만 아버지를 위한 일이이므로 나도 분위기에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이내 부흥성회 같은 찬송과 기도가 시작됐다. 그런데 아무리 길어야 30분 정도 예상했던 찬송은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갑자기 “누구야, 누구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전도사님과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손을 얹고 “나가! 나가!” 그러는 것이었다. 귀신을 쫓는 순간이었다. 처음 보는 축사장면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머니도 잘못되고 전도사도 잘못된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인데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찬송을 하는 데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거 뭐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귀신 쫓던 전도사님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어이쿠…” 신음소리 쪽을 보니 식물인간이 됐던 아버지가 “개xx!” 하면서 휘두른 주먹에 나가떨어진 전도사님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아버지는 식물인간인데 말도 하고 주먹도 쓰시네?’ 갑자기 나의 머리카락이 일자로 쭈뼛 서는 것이 느껴졌다. ‘야, 하나님의 말씀은 참말이구나!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귀신이 정말 있구나! 하나님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이구나!“ 내키지 않았던 찬송이 저절로 달라졌다. 기도도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귀신은 당장 물러가라!” 신이 나서 막 기도하는데 어느 정도 지나자 아버지는 “나간다! 나간다!” 하고 벌떡 일어나 흔들흔들 마루로 나가시더니 ‘꽝!’ 하고 넘어지셨다. 그렇게 나간 줄 알았던 귀신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날부터 매일 밤 찬송과 기도와 축사가 되풀이 됐다. “이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계속 싸우다가 어머니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안 되니까 신설동 강도사님한테 모시고 가자”고 하셨다. 새벽예배시간에 맞추어 버티는 아버지를 끌다시피 택시에 태워 교회로 모시고 갔다.
예배가 끝나고 5분쯤 지났을까? 목사님이 나가시자마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셨다. 귀신의 역사임을 알아챈 나는 순간 몸을 날려서 아버지를 꽉 잡았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버지가 몸을 휘두르는데 아버지에게 매달린 내가 팔랑개비처럼 휘둘려지는 게 아닌가? 아직 남아있던 교회 청년들이 함께 달려들었다. 사투 끝에 겨우 아버지를 제압하자 강도사님이 들어오셨다.
귀신과의 능력대결
강도사님은 아버지를 쳐다보고, 밑에서 우리들에게 제압당한 채 아버지는 그 강도사님을 무섭게 노려보셨다. 불꽃 튀는 눈싸움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그 강도사님도 한 때 주먹을 좀 쓰시던 분이었는데 ‘시라소니’란 말을 하자 자기 할아버지뻘 된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눈싸움하던 아버지는 “이 xx, 할아버지한테 까불어?” 라고 일갈하셨다.
강도사님은 층계에 내려와서 아버지 앞에 서더니 “이 분은 할아버지뻘 되지만 귀신 너는 아니야!” 하시면서 성경책으로 머리를 톡 쳤는데 쓰러진 아버지의 머리가 마루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강도사님은 “여기 방언하는 사람들은 빨리 모이세요. 신설동 일대에 군대마귀가 몰려왔습니다.”라고 하셨다. 한동안 뜨거운 방언기도가 이어졌다.
기도가 끝나고 강도사님이 아버지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아버지는 쓰러져 잠이 드셨는데 무려 8시간을 주무셨다. 그런데 밤 열두시가 되자 아버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나간다, 나간다, 나간다…” 그러면서 현관 쪽으로 걸어가셨다. 아버지를 잡고 다시 철야가 시작됐다. 지루하고 끈질긴 기도가 이어졌다. 50일만에 드디어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성경 다니엘서 10장의 기록처럼 바사국 군이 천사를 막아 늦어졌지만 다니엘의 금식기도가 계속되자 천사장 미가엘의 도움으로 기도가 응답됐다는 얘기가 실감났다.
49일 지났을 때였다. 비가 오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깐 졸다가 ‘우- 우-’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늑대 울음 같은 그 소리는 어느새 여자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집 식구들을 깨워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현관에서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앞집 아주머니였다. “아버님 돌아 가셨지요?” 아주머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요, 안돌아가셨는데요”, “으응? 안돌아가셨다고요? 그래요? 허참 이상하다…”
아주머니는 간밤에 잠이 안와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안자고 있는데 우리 집 쪽에서 여자들이 울면서 “나는 어떻게 할까, 흑흑… 우-” 그런 울음소리를 내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층계로 내려가는데 한 여섯 명 정도가 내려가는 것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옆집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딸들이 슬퍼 저렇게 우나 보다…’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밤 피곤해서 또 깜빡 조는데 “쾅, 콰광!” 하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머리 위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가슴 속을 뒤흔들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기도하고 찬송을 했는데 어머님이 꿈 이야기를 하셨다.
3층짜리 건물 안이었는데 주변엔 온통 귀신들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귀신들이 사는 집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 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목사 가운을 입은 목사님이 ‘어떻게 오셨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오늘 멸망 받을 곳인데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빨리 나가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가려 하자 귀신들이 잡으려고 쫓아왔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귀신들을 막아주셨는데 그 등이 집채 같아서 귀신들은 손도 내밀지 못했다. 그 틈에 급히 집밖으로 나와 그 집을 돌아보는 순간, 벼락이 떨어져 3층집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요란한 그 천둥 번개 소리에 아버지의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맑은 정신으로 “번개가 왜 이렇게 치나?” 그러시면서 “이 번개 때문에 이 근방에 벼락 맞은 곳이 있고 큰일이 일어났을 것 같다” 는 말을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일을 경험한 아버지는 이후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 83년 소천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부르실 때에 얼굴이 천사와 같이 황금빛 광채가 나는 것 같고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하관예배를 드리고 올 때 아버지가 흰옷을 입고 양쪽에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손을 끼고 모셔 가는 환상을 보셨다고 했다. 나는 보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기억이 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실하다.”
☞ 글 : 아들 이의현 목사(성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