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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의 동성애 행위가 밝혀져 지난 달 사임한 테드 해거드목사는 “나는 결코 동성애자가 아니다. 다만 악마의 유혹에 빠졌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를 돕기위해 형성된 목회자 멘토그룹은 현실을 직시 악마가 아닌 자신의 동성애 성향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치료방법을 놓고 서로 갈등을 겪고 있다. 행위에 대한 책임소재를 ‘내 탓’에 둘 것이냐 아니면 ‘악마의 탓’으로 돌릴 것이냐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해거드 목사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백인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전미 복음주의연합'(NAE) 회장으로 콜로라도주의 1만4000명 신도를 가진 뉴 라이프 처치의 창립자다.
그의 신앙관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전통적 복음주의다. 동시에 “아기가 태어날 때 악마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할 정도로 죄를 악마의 지배로 본다. 따라서 인간적 노력보다는 하나님 구원만으로 곧 ‘눈처럼 희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동성애 문제도 기도만하면 정상회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를 치료하는 멘토그룹은 기도도 중요하지만 종교보다는 현실적 접근방법으로 동성애 성향을 인정하고 이것이 왜 어떻게 형성됐는지 분석할 수 있어야 교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 해거드 목사가 계속 내가 아닌 악마 때문이라 주장해 치료에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선과 악이 왜 발생하는지 속시원히 규명하길 원한다. 그래서 성선설이니 성악설도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해거드 목사처럼 악마로 인해 악행을 한 것이라면 상황을 뒤집으면 선행은 나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악마와 하나님의 로봇일 뿐이다.
성경을 보면 창조주는 인간을 만든 후 ‘바라보니 참 좋았다’고 거듭 감탄했다. 과연 로봇을 보고 좋다고 하셨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피조물 중에서 유독 인간을 그토록 보기 좋다고 한 것은 인간이 ‘당신 모상을 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주는 계속해서 인간이 창조주를 닮아 가길 원한다.
그래서 준 것이 바로 자유의지다. 외부의 힘이나 자신의 본능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로봇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독립체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것은 책임 역시 전적으로 ‘내 탓’임을 뜻한다.
흔히 인간이 선악과를 유혹에 빠져 따먹을 줄 알면서 왜 그같은 환경에 처하게 했냐고 논쟁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환경 역시 ‘자유의지’로 선택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뱀이 다가와 말을 걸며 유혹을 시작했을 때 그 내용이 ‘하나님과 반대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다른 데로 가버리거나 대꾸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사람은 “술버릇을 고쳐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술취할 환경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하는 것이 바른 기도다.
결국 우리는 외부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유로운 독립체로서 내 의지에 따라 매순간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선택에 대한 책임소재는 전적으로 악마가 아닌 ‘내탓’인 것이다.
악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함정을 파놓는 것이다. 그 로봇이 되느냐 아니냐는 순전한 내 선택이다.
(김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