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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군 헌병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자랑스러운 모습(퍼온사진과 글)
1944년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사관후보생으로 입대.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워 의원뱃지를 달았던 최병렬 단식때 위문가고 친일 수구골통 한나라당, 조중동과 초록은 동색인 개인적 이유, 친일 기독교 전통이라는 공적 이유도….
박근혜와 만나 국가보안법 철폐 반대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진.학병시절 일본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옆에 앉은 이는 전석재 신부. 일제하 친일의 길을 걸은 기독교 전통대로 조중동 한나라당과 함께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있는 김수환이다.
자신은 사관후보생으로 “징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관후보생은 일제에 충성심을 보인 골수 친일파 중에서 자원해 들어가는 일본제국군대를 지휘하는 간부양성학교다.그는 자신에 대해 평범한 늙은이로 보아달라 한 바 있다. 한국의 평범한 수구보수로 봐달라는 얘기. 알고 보면 그것도 물타기다.
이런 자가 한 종교의 수장이고 추기경이다. 그동안 그가 군부독재 시절이라는 민중의 갈증에 편승해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존경받은 것은 구중궁궐의 제왕처럼 인의 장막으로 둘러싸여져 그의 실상이 겹겹이 그를 보좌하는 조직의 측근들에 의해 수없이 좋은 면만 여과되어 왜곡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늙으막에 조직밖으로 나와 그를 둘러싼 조직의 울타리가 없어지니 그의 실상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민족정기 정립의 필요성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김수환은 44년에 사관후보생으로 ‘징집’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관생도 제도는 장교로 키우기 위한 제도이므로 당연히 사상무장 정도가 검증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또한 장교로 복무하게 되면 일본군 사병들을 지휘할 수도 있는 자리다.
그런 사관생도 자리에 사상성에서 항상 의심의 대상이 되었던 조선인이 ‘강제징집’ 되었다고 주장하는 건 무척 이상한 이야기다. 사관학교 말아먹으려고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야 독립투사를 꿈꾸었던 김수환을 강제징집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사상무장 정도를 검증받은 후 자진지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관생도를 ‘징집’ 했다는 얘기는 김수환에게서 처음 접하는 얘기다.
그리고 김수환이 44년부터 45년까지 사관후보생으로서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참고로, 천주교계는 일제 36년 동안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가 없다. 오히려 일제에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군용기 헌납에 앞장 섰던 것은 물론이고 일제 말기로 갈수록 징용과 징집을 독려하는 등 친일에 매진하는 철저히 반민족적 행태를 보였다.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던 김수환의 행적과 직접적 상관성은 없겠으나 당시의 정황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할 수는 있겠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김수환이 한 일은 그저 회색지대에 머물면서 이미지 관리나 한 게 전부다. 실질적인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에 매진했던 사람들은 함세웅 신부 같은 젊은 신부들과 문익환 목사 같은 분들이었다.
김수환이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알쏭달쏭한 꼴통질은 어쩌면 뿌리가 깊은 것일 수 있다는 정황증거들이 이제 드러나고 있다.
“1941 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 해 4월에는 일본 동경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사실 그 무렵 김수환은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 투쟁에 더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1944년에 들어 모든 상황이 일변하게 되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되어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아야만 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 홈페이지 ‘김수환 추기경 발자취’ 중에서 –
독립투쟁을 꿈꾸다가 일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는다는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다. 물론 강압으로 징집되었다는 토가 달려 있긴 하지만. 너무 앞뒤가 안 맞는 얘기인지라 보통사람들의 이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대목이다.
남들 고해성사는 무자게 많이 받았을 텐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고해성사하기 싫었나 보다
오늘 아침 뉴스를 검색하다 아직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서 같이 올려 봅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나
역사에 있어 진실은 하나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으로 두루뭉실
덮어 갈 수 없는 부분이 받듯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기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 가는 것은 우리자신의 역사를 잘 모르고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프리토크에 올려야 하나 거기엔 사진을 올릴 수 없었기에 여기에 올려 봅니다.
커플님들에게 죄송하나 이해 바랍니다.오늘 아침 뉴스
“나는 바보야”…평생 ‘아래’에서 살다간 선지자<김수환 추기경의 일생>
http://media.paran.com/sdiscuss/newsview2.php?dirnews=459633&year=2009&key=hit&link=newshitlist.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