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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국가 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실시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복권과 훈장, 6.25 전쟁 유공자에 대한 훈장 수여 등 국가적인 포상을 실시한 것은 박정희가 최초였다.
정부 수립으로부터 15년,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이나 지나서 겨우 제대로 된 보상 조치가 실시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년: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김구 등),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년: 이봉창),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유관순)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박정희는 김구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 금서로 분류된 백범일지를 해금하였고, 김구의 업적을 크게 칭송하였다. 또한 이승만 정권에서 비하된 임시정부에 대한 역할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분명 박정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굴과 굴종의 역사라 평가하였던 것은 사실이다.[1]그러나 그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굴하고 관심을 받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순신에 비해 국민들에게 인식이 낮았던 육전의 영웅 권율 장군에 대한 재조명을 시작하였고, 행주 산성에 권율 동상과 행주 산성 산적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이승만 정부 당시 철저하게 왜곡 당한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해서 격찬하면서, 사후 위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박정희는 김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온갖 조치를 다했고 이는 범국민적인 역사 교과서에 반영되도록 지시했다.
박정희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그들에 대한 훈장 수여에 노력을 다했다. 앞서 말한 김구뿐만 아니라, 안중근, 이봉창 등의 대부분의 가능한한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민국장을 수여했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