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편집위원장 강기석
2차 공판에서 한신건영 한 아무개 사장의 양심선언에 혼비백산했던 검사들이 부랴부랴 불러 모았던 인물들이 바로 1월 11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증인대에 선 박 아무개씨와 두 명의 김 아무개씨들이었다.
당시 검찰은 이들을 법정밖에 대기시켜 놓은 채 “진실이 바로 저 문밖에 있다”면서 당장 한만호 사장 증인과 대질 신문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한 사장이 “돈을 준 것은 한명숙 총리 쪽이 아니라 이들 3인이었다”고 지목했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당장 대질신문을 시키지 않으면 진실이 땅에 묻히기라도 할 것처럼 펄펄 뛰었지만 공판절차를 어긴 그러한 무리한 요구는 재판장에 의해 결국 거부됐다. 3차 공판에서도 검사들이 한 사장의 편지와 접견기록을 중심으로 한 사장을 신문하는데 골몰하는 바람에 이들에 대한 신문은 또 미뤄졌다.
‘검찰측 증인’ 3명의 엇갈린 진술
이들은 수사 초기부터 검사들에게 적극 협조해온 ‘검찰측 증인들’이다. 이번 사건 재판과정에서 검사들의 요청, 혹은 지시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이들은 또 집단적으로 한 사장과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건설 브로커, 한 사람은 교회 장로, 또 한 사람은 한 사장의 전 운전기사 겸 비서실장이었으나 지금은 한신건영 관련사의 대표가 된, 직업과 신분은 각각 다르지만 한 사장 주변에서 한때 공동이익을 도모했다가 지금은 갈라선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 핵심적인 관계는, 한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중 두 사람은 일산지역의 모 교회 신축공사를 따내기 위해 같이 움직였으며 그 작업에 소요되는 5억원 상당의 돈을 한 사장으로부터 한자리에서 현금, 또는 달러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면 이들은 큰일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장과 이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줬다, 안 받았다, 서로 주장만 할 뿐 그것을 입증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돈을 받았다 해도 그 돈을 자기들이 착복했는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검찰이 이 사람들의 계좌를 한명숙 총리 주변인들의 계좌 추적했듯이 추적하는 등 이들의 엇갈린 주장을 한 번 철저히 수사해 보면 진상이 밝혀질지도 모르지만 검사들이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들 증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라며 한 사장을 꾸짖는 태도와 어법에는 거침이 없다. 한 사장은 이들 중 한 사람에게 “검찰에서 간덩이가 부어왔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들의 증언은 한 사장의 증언과 엇갈릴 뿐 아니라 제 입에서 나온 말들조차도 서로 엉킨다. 건설브로커인 박 아무개 증인은 자신이 ‘로비’라는 단어 자체도 모른다고 했다가 금방 “건설업계에서 로비를 하지 않으면 아무 공사도 따올 수가 없다”고 말을 바꾼다. 오래간만에 법정에 웃음꽃이 피었다. 한신건영의 부사장 겸 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면서 한 사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아 활동비로 썼다는 것까지는 인정한 이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한신건영이 공사를 수주할 가능성이 제일 컸다”고 했다.
그런데 500억원에 이르는 교회 건물 신축추진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김 아무개 장로는 “한신건영이 공사를 딸 확률은 10%도 안 됐다”고 증언했다. 한 사장이 이날 공판에서 “입찰 과정에서 후보자가 압축되면서 4월 말에 한 번, 4개사가 남았는데 제일 유력하다고 해서 8월 말에 또 한 번, 모두 두 번 로비자금으로 돈을 전달한 것”이라고 폭로한 것을 부정하기 위한 진술로 보였다.
그러나 이 사람 역시 지난해 초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저는 내부적으로 협조하고 있고 외적으로는 한 총리가 신경을 쓰고 있어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 앞에서는 마치 한 총리가 공사수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진술했던 사람이 궁지에 몰리자 딴소리를 한 것이다. 이 사람은 한 사장과 밀착됐다는 것이 밝혀져 이듬해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파문 비슷한 것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금융적색 거래자였다고도 한다.
새벽 3시가 넘어 끝난 공판… 인권의 실종
어쩌면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 인물들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한 사장의 돈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 돈이 한 총리 쪽으로 흘러간 것이라고 바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옛날에 배운 영어 단어 한마디가 불쑥 떠올랐다.
‘Irrelevent’. 이것과 저것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한명숙 총리님께 돈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한 총리님은 지금 누명을 쓰고 계신 겁니다!”라는, 돌아온 죄인의 심정으로 절규처럼 내쏟은 후 온갖 불이익을 각오하고 온갖 위협을 감내하면서 꿋꿋이 일관되게 지키고 있는 한 사장의 양심선언이 유효한 한, 어떤 증언이나 증거도 이 재판의 본질과 ‘irrelevent’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3차 공판에서는 한 사장이 한 총리와 수시로 통화했다는 검찰조서의 핵심사항이 날조된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까지 된 터다.
여기에 한 사장이 대포 폰을 썼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검찰은 ‘그럴 수도 있는 것’ 가지고 기소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을 충분히 수사해서 ‘그렇다’고 확정해야 비로소 기소가 가능하고 그것을 법정에서 증명해야 한다.
검찰에게는 이제 남은 밑천이 없다. 4차 공판에서도 검찰이 ‘진실이 이들에게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증인들이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을 강변하거나 오락가락하는 모습만 연출했다. 그러면서도 사안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오로지 한 총리 흠집내기 의도로 보이는 증언들을 틈틈이 비수처럼 날린다. 한 총리가 누구누구와 식사를 했네, 누구누구를 소개해줬네 등등 정치인으로서의 당연한 행동들을 마치 큰 비리와 연관이라도 있는 듯 색칠한다. 바로 그 짓을 계속하기 위해 검찰은 재판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차 공판에서도 검찰이 ‘유력한 증거’라며 온갖 쓰레기들을 내쏟을 태세를 보이자 한 총리는 발언권을 얻어 “피고인으로 이 자리에 서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이 재판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재판을 하면서도 수사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언론을 상대로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건 아니다. 피고의 인권을 고려해서 재판을 정도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한 총리는 이날 4차 공판에서도 아침 10시부터 새벽 3시 넘어서까지 자신에게 들씌워진 혐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irrelevent) 재판을 지켜봐야만 했다. 검찰에게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인에게만 인권이 있을 뿐, 피고인 한 총리의 인권은 없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위한 휴정 때 법정 밖으로 걸어 나오던 한 총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 사장의 건강이 걱정된다. 저렇게 시달려서야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고 했다. 자신도 쓰러질 듯 피곤하면서도 남을 더 걱정하는 인물, 한 총리는 그런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