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노동부의 삼성 봐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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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노동부 또 ‘삼성봐주기’

    삼성SDI ‘32살 사원 회식중 사망’ 사건…불법잔업이거나 서류조작 가능성 큰데 노동부는 핵심협의 빼고 수사지휘 요청…검찰은 맹탕조사 “무혐의다” 종결 처리

    한겨레 정광섭 기자

    2004년 30대 초반의 대리가 과로사하면서 불거진 삼성에스디아이의 불법 잔업 및 서류조작 의혹사건이 지난해 말 무혐의로 종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삼성이 엄청난 불법 잔업을 강요했거나 서류를 위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안이어서, 또 ‘삼성 봐주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지청장 김영철, 주임검사 홍승욱)은 3일 천안노동사무소가 지난해 11월 기소 의견으로 수사지휘를 요청한 삼성에스디아이의 허위서류 제출 의혹사건을 불기소 지휘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노동사무소가 11월3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기소 의견으로 수사지휘를 요청했으나, 1차 재수사 지휘 뒤 12월16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지휘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잔업 여부나 삼성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잔업실적표’의 진위는 가리지 않고, 노동사무소가 허류 서류라고 수사지휘를 요청한 삼성의 ‘잔업시간 추가확인 요청서’에 대해서만 판단했다”며 “이 문서는 ‘박 대리가 회사에 남아 공부한 것을 잔업으로 처리해달라’는 의견을 밝힌 것에 불과해 허위서류라고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의 전말=삼성에스디아이에 근무하던 박아무개(당시 32) 대리가 2004년 6월4일 회사 체육대회 뒤 회식 자리에서 쓰러져 숨진 뒤, 회사는 산재 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박 대리가 한 달 평균 100시간씩의 잔업을 한 것으로 돼 있는 ‘3개월 잔업실적표’를 냈다.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 실적표를 입수해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삼성의 살인적인 잔업 강요가 과로사를 불렀다”며 노동부에 특별조사를 촉구했다.

    박 대리가 잔업실적표대로 3~5월 각각 94시간, 96시간, 118시간의 잔업을 했다면 삼성에스디아이는 연장근로시간을 한달 52.8시간 이하로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어긴 것이다. 이는 징역 2년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한다. 더구나 박 대리의 급여명세표에는 그가 연장근로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처벌이 더 심한 잔업수당 미지급 혐의까지 추가됐다.

    하지만 노동부는 같은 해 10월18~30일 삼성에 대해 특별조사를 벌인 뒤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삼성 쪽이 “박 대리가 평소 회사에 남아 공부를 했는데,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를 잔업시간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우 의원은 “잔업실적표를 조작했다면 그 또한 산재보험법 위반”이라며 삼성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이 불거진 뒤 1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우 의원이 삼성 쪽의 불법잔업 실시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이 잔업실적표를 임의로 작성했다는 주장을 입증한다며 특별조사 때 낸 ‘잔업시간 추가확인 요청서’가 실제 잔업실적표가 제출된 시점(6월25일)보다 늦은 7월6일자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서류는 박 대리 상관이 회사 쪽에 “공부시간을 잔업시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맞다면 당연히 잔업실적표 제출에 앞서 작성돼야 하는 것이다.

    우 의원은 “삼성이 연장근로시간 위반이라는 중한 죄를 피하기 위해 관련 서류를 급히 위조하다가 실수한 것”이라며 노동부를 압박했다. 결국 노동부는 이 서류가 조작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난해 11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 지휘를 요청했다.

    ‘봐주기’ 의혹=잔업실적표 내용이 사실이라면 연장근로시간 위반, 아니라면 허위서류 제출이 된다. 근로감독관에게 허위서류를 제출한 것도 처벌 대상이다. 어느 쪽으로든 처벌을 받아야 했던 삼성이 이를 피한 것은 국가기관들의 ‘봐주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선 노동부가 2004년에 벌인 특별조사부터가 의혹투성이다. 노동부는 13일 동안 삼성에 대해 특별조사를 했지만, ‘추가확인 요청서’가 나중에 급조된 것이라는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또 먼저 조사를 한 뒤 시간을 두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관행과 달리, 삼성 조사에서는 조사 종료 시점인 10월30일자로 보고서가 작성됐다. 우 의원은 “노동부 조사 자체가 날림”이라며 “이 사건 과정에서 보여준 노동부의 태도로 볼 때 의도적인 삼성 감싸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동부는 삼성의 여러 혐의 가운데 ‘추가확인 요청서’ 조작 혐의에 대해서만 검찰 지휘를 요청함으로써 삼성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검찰도 허위서류 제출보다 더 중한 연장근로시간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아 소추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했다. 우 의원은 “삼성에 대한 무혐의 처분은 노동부와 검찰의 합작품”이라며 “노동부의 봐주기 의혹 등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정광섭 기자 iguass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