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구원은 행위로서가 아닌 믿음으로만 가능한가?

  • #100859
    알버트 192.***.75.29 2677

    저번주 일요일에 간만에 한인교회를 방문해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비신자들은 믿음이 아닌 구도나 수행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에 다다를수 있다는 헛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며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음으로서만이 구원에 다다랄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이 이야기는 제게 혼돈을 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카톨릭이나 성공회에서는 굳이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하지 않고 바른 행실(정의로움, 성화됨) 로서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갈수있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여러번 들었는데 유독 개신교의 입장은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죽기 몇초전에 믿기만 해도 바로 구원이 이루어 지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는 바로는 작년에 전세계 기독교(카톨릭, 개신교,성공회) 지도자 대표 9인이 한자리에 모여 기독교의 이론적 신앙적 화합을 이룰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고 그 결과로 믿음과 거기에 걸맞는 행위를 통해 구원에 다다른다고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고 대표 3인이 서명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자리에는 김수한 추기경도 계셨다고 하더군요.

    어떤 미국 교수가 자신은 기독교가 아주 매력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종교들 과는 달리 단지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것이 그 이유라고 하는군요. 저는 아직 이 믿음만으로 라는 말이 손안대고 코풀겠다는 말로밖에 안들리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점프 128.***.230.80

      저는 교인이지만 기독교가 “설명” 되기에는 너무 자기모순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거시/님은 그 모순들이 해결이 되시는지요? 예를 들면 선택/예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행위/믿음이 차이가 있다 생각하시는지요. (웨스트민스터 문답에 보면 신자들 중 스스로 믿는다 생각하고 죽어도 선택받지 못한 자는 구원을 못받는다는 내용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딴지 걸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들 하시는지 알고 싶네요.

    • roundone 69.***.54.246

      안녕들 하셨습니까? 오랫만에 들르니 좋은 이슈들이 많이 있군요.

      본훼퍼라는 신학자의 제자들이 이런질문을 했다지요? 선생님 구원이란 무었입니까… 본훼퍼 선생님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지요. 어떤 구원?

    • tracer 198.***.38.59

      어떤 도그마가 맞는지 논쟁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 통일교들도 다 제각각 구원에 대한 주장이 있을텐데 어느 것이 맞을까요? 결국은 다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전혀 없이 개인의 사유나 혹은 소위 ‘신의 계시’에 바탕한 주장들일 뿐이지요.

      저의 유일한 해결책은 종교 바깥으로 나가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 bread 74.***.17.156

      그거시님이 참 좋은 의견을 내 주셨네요. 바른 말씀입니다. :)

    • ohho 24.***.40.106

      Belief is all they need from you. Once they make you to ‘believe’, you become their slave and do whatever they tell you to do.
      If you ‘believe’, you will give them your money, time or even your wife!!!
      They don’t need you to pray. They don’t need you to come to church, they don’t need you to live a innocent life. They give no xxcking shit on what you do as long as you are a believer.
      If you can make someone to believe you, you can make him to do whatever you want because he believes you. That’s the whole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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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undone 69.***.60.196

      Tracer 님:
      저는 님과 같이 종교밖으로 나가보니 내자신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것 같던 내가 다시 그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물론 예전에 내가 아닌 변한모습이지요. 아니 새롭게 정립했다 해야될것 같군요. 그러나 오늘도 치열하게, 힘들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면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얻는답니다.

      그거시님:
      동감가는 부분이 많아 기쁘네요. 끝없이 의심하고, 끝없이 사고하는 자세가 있는곳에 건전한 신학과 성찰의 신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프님:
      저는 점프님과 같은 자세가 바로 종교를 가져야하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경우는 내가 이제껏 진리라고 믿었던 진리들은 내것이 아니었고 바로 남이 나에게 건네준 관념임을 깨닫고 부터는 나만의 진리를 하나씩 찾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이들의 진리와 공통분모를 찾는 중입니다.

    • tracer 198.***.38.59

      roundone님/
      예 저도 언젠가 어떤 계기로 다시 종교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항상 open mind를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 엔지니어 68.***.182.42

      구원 그리고 믿음 그리고 행위
      모두다 말로 쉽게 설명하게 어려운 개념들이네요.
      혹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모를까.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해에 따르면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함은 믿음 없이도 이루어 진다고 봅니다. 30년 이상 교회에서 봉사를 하시던 어느분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행함에는 믿음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목사님께서 이부분을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행함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으로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행함은 믿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셨고 구원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전제 조건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 구원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행함으로는 절대 이루어질수 없는게 구원이라고 봅니다.

      믿음이 충만하여 그의 생활속에서 행함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상태. “아~ 남을 도와주는 일은 좋은 일이야” 하는 판단에 근거한 도움이 아니라 당연히 도와주는게 그의 삶인 상태가 바로 믿음과 행함이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봉사하고 섬기고 하는 것을 마치 프로젝트를 끝내듯이 성과를 내듯이 하는 것은 믿음때문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좋아 하실것 같아서 하는 행함. 이런 행함은 하나님도 원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자연스러운 행함을 이끄는 믿음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겠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혹시 행함이 없다면 그것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나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임동동 76.***.160.110

      1000원을 건다는 것은 자기 말에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으며 ‘아님 말구’식의 별로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건가요?

      저는 이 글이 한글로 쓰여지지 않았다에 1000원 걸겠습니다.
      당연히 한글로 쓰여졌으니 1000원만 내놓으면 되는건가요?

    • 지나가다 68.***.182.42

      1000원의 가치는 본인만 압니다.어떤 사람에게 1000원은 목숨보다 큰 돈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글속에 글쓴이의 뜻을 읽어낸다면 1000원이란 단어는 그리 중요한 단어가 아닐수도 있겠네요.

    • 점프 128.***.229.144

      설명이 믿음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믿음을 객관화하고 전승하는데는 이해가 쉽든 어렵든 말이 필요하고, 그것을 압축한 것이 교리가 아닐까요.

      “기독교가 … 단지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것”은 동전의 한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68번입니다.

      ==============================================
      – Question 68: Are the elect only effectually called?

      – Answer: All the elect, and they only, are effectually called; although others may be, and often are, outwardly called by the ministry of the Word, and have some common operations of the Spirit; who, for their wilful neglect and contempt of the grace offered to them, being justly left in their unbelief, do never truly come to Jesus Christ.

      –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말씀의 사역에 의해 외적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고 가끔 부름을 받으며 성령의 상당한 일반작용을 누릴 수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제시된 은혜를 고의로 등한시하고 경멸함으로서 공의롭게도 불신앙에 남겨져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실로 나아오지 못한다.
      ===============================================

      말이 어렵습니다만. 교인도 이럴진대, 믿지 않다가, 죽기전에 믿겠다 하고 죽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느냐…

      궤변이나 오해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듣는 것을 filtering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짧은 글에 함축하신 그 filter에 대해 많이 공감을 하지만, 이미 일반적인 교회, 특히 한인교회들의 입장과는 다르시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짧은 글에서 하는 판단이라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리고 모든 사람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건… 최소한 장로교의 이름을 걸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니지 않은가요?

      글을 몇번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모든 모순을 해결하려는 건 아니지만, 다른 분들 생각을 듣는게 도움이 많이 되는군요.

    • 알버트 192.***.75.30

      점프님 글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아마 수많은 선대 기독교 성자들은 이미 맘깊은 곳에서 그러한 이치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지고지순한 이치가 제대로 설파되지 못하고 변질된건 정치적, 기득권적 영향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어떤 종교나 수행이든 이러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본질만을 깨우치게 된다면 저는 누구든 하나님이 계신 그자리에 다다를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roundone 69.***.49.161

      한국 감리교신학교에서 변선환학장, 홍정수교수 뒤를 이어 영광 (?) 의 쫒겨남을 당한 김준우 박사는 역사적예수연구에 몇 안되는 권위자로 알려지고 있지요. 그분의 말씀으로는, 현재의 기독교가 취해야하는 입장은 두개의 갈림길일진데 하나는 예수에 대한 고백을 계승하느냐, 아니면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촛점을 두느냐 하는것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잊고, 아니면 모르고 살아왔던 제게 새로이 깨우쳐주는 말이지요. 그말이 그말 아니냐 라고 기독교에서 주장을 하겠지만, 확연히 다름을 조금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 교회를 안가는 이유 74.***.72.143

      미국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상관없이 교회를 갑니다.
      하지만 전 못갑니다.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허황된 말장난을 해야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고
      믿음이 있다고 하기에는 내 행동과 이성이 거기에 못따르니 행동이 따르지 못하니 거짓이됩니다.
      믿음이 있다면 어찌 행동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구원을 주는 지 행위가 구원을 주는지가 문제가 아니고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 믿음이 믿음일까요?
      입으로는 믿는다 하면서 예수가 명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접어두고 도리어 빼았기만 한다면 그건 믿지 않는 이만도 못하여 지옥불에 던져져야할
      쭉정이가 아닌가요?

    • 엔지니어 68.***.182.42

      공교롭게도 믿음은 우리들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겠다고 하면 믿음이 생기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있다고 봅니다. 믿음이 있다면 행위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위를 보며 믿음이 있는가 의심하기보다 행위를 보면 믿음이 있음을 생각해 주는게 어떨까 합니다. 믿음이 행함을 이끈다지만 어떤때는 행함이 믿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놀부가 흥부따라 제비 다리를 고의로 부러뜨렸다가 붙여주고 나중에 착한 사람이 되는것처럼 사람의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니 행함이 믿음으로 또 구원으로 이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던 행함이 있던 있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 View 69.***.63.172

      행위의 정의중에는 올바른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원하는 행위만이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위적인 해석에 의한 행위는 믿음을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도덕적인 행위가 곧 하나님이 원하는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일부 상호적인 것도 있지만,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그 행위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믿음은 생겼지만, 그것을 지키고 키우는 것은 행위입니다. 매일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행위들중에서 가장 큰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은 쉽게 시험을 당하겠지요. 또다른 행위는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에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사랑하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이세상에서 하신 그길을 우리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행위와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즉, 행위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믿음만 가지고서는 그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 tracer 68.***.184.134

      view님/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위에 말씀하신 내용이 확실하고 보편적인 진실인지 어떻게 아십니까?
      위에 말씀하신 내용이 본인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지는 어떻게 아시는지요?

    • 임동동 76.***.160.110

      지나가다
      68.20.182.x 1000원의 가치는 본인만 압니다.어떤 사람에게 1000원은 목숨보다 큰 돈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글속에 글쓴이의 뜻을 읽어낸다면 1000원이란 단어는 그리 중요한 단어가 아닐수도 있겠네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돈의 가치가 사람에 따라서 상대적일 수는 있지만 과연 1000원이 목숨보다 큰 가치가 있을까요? 세상에 1000원과 목숨을 바꾸라고 한다면 바꿀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돈의 가치가 상대적인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려 목숨보다 큰 돈이라고 하는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봅니다. 또한 글쓴이 입장에서 보더라도 1000원이 목숨을 걸 정도로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제 글에 대한 반론을 하려고 과장된 비유를 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 아니라 정말로 1000원이라는 액수가 어떤 사람에게 목숨보다 크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산하아빠 75.***.176.27

      고등학교 때 마음에 든 여자친구 아니 훨씬 전에 교회에서 과자주고 선물주어서 교회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있었읍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 솔직히 열 받는 말입니다. 말 그 자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독교인들의 세상 즉 교회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수 많은 사악한 행위들과 이를 햇던 자 들이 이 말을 방패 삼고 있다는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이런 생각합니다. 물, 의료등 민영화에 대한 한국민들의 관심과 반대가 상당한 걸로 알고 있읍니다. 미국생활을 10년 정도 하면서 비록 제가 이곳에서 경영학을 배웠고 석사 학위를 갖고 있지만 민영화를 해서는 반드시 안될 것이 있다는 확실히 느꼈읍니다. 지난 10년 정부가 그나마 이전 정권과는 다르게 했던 그 절차적 민주주의에 반하는 아니 완전히 무시하는 현 정권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 많은 걱정과 반대에 기독교 장로인 그 사람은 아마도 이 말을 위안 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행함이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

      10년 전의 일입니다. 외환위기 닥쳐왔던 1998년 미국와서 교회에 조금 다녔읍니다. 지금도 그 교회의 장로를 생각하면 욕이 나옵니다. 조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고 그래서 어제 저녁 한 숨도 못 잤다면서 눈물로 신도들 앞에서 기도했던 그래서 일순간 모두를 숙연하게 했던 그 장로님이 일주일 뒤에 일본자동차를 자기 딸을 위해 사더군요. 그런데 그 집에 차가 총 4대인데 다 일본차인 것을 알고는 정말이지…. 제가 살고 있는 도시 한인 인구 3천명 정도이고 교회는 12개입니다. 12명 목사들 중에 한국차 갖고 있는 사람 단 한명도 없읍니다.

      소위 믿는다는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교회나 목사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대화하다 보면 논리의 비약, 사고의 전환등이 어찌도 저리도 쉬울 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어쩌다 반론이라도 하면 믿음이 없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미국영화 중에 인디펜던스 데이라는 영화가 있읍니다. 가끔은 상상을 해 봅니다. 내가 만약 그 영화에서 그 외계인의 우주선을 조종하는 우두머리라면 어떻게 할 까? 먼저 저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 지구상에서 싹 지워버리고 싶읍니다. 아울러 한국에 있는 몇몇 교회들-부자세습한 교회, 타락한 교회등-을 없애 버려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주고 싶었읍니다.

      너무 심했을 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너무 아쉽네요. 기독교가 저래서는 안되는 데.. 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안에서 싹트고 형성되었던 이 믿음을 실천하고 자 글을 올렸읍니다. 모쪼록 제 글에 가슴 상한 분 있다면 사과 미리 드립니다.

    • View 69.***.63.172

      tracer님/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과의 오랫동안 교류속에서 얻는 수 있는 결과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한번 이야기 하고 바로 믿지 못하듯이 하나님과의 교류를 몇번하고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는 목사님에게서 들었던 설교보다는 성경을 읽고 기도로서 그런 진리를 알게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 지의 기로에 설때마다 제게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어떤 분을 만나게 하던지 혹은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떨때는 우연히 읽었던 신문기사등에서 내가 가야할 길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속에 나와 있는 선지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에 기초를 둔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제가 힘들때나 고민을 할때마다 그런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 해석을 하고 판단을 했다라고 보기보다는 이미 예정속에서 어떨때는 이미 오래전 부터 준비를 저를 위해서 준비를 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을 더 첨부하자면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곧 믿음이 확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중에서도 어떤 말씀에 의해서 믿음이 생길 수도 있고, 기도로서 생길 수도 있고 그리고, 다른 분들의 말씀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떤 말씀을 들을 때 이말씀은 믿음에 크게 더 힘을 주는 말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을 했을때 어떤 세상적인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믿음을 가지기 전에는 오지에서 선교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그분들의 기쁨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은 세상적인 어떤 기쁨에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분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기도를 할때 그분들과 같은 믿음과 기회을 가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저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분들처럼 저를 값지게 쓸때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 대답이 님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주말을 보내십시요.

    • 점프 128.***.230.7

      믿음과 관계 없이 구도나 수행의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구원이라면 이미 하나님과 관계 없이, 교회가 얘기하는 구원과는 다른 내용의 구원이겠지요.

      내가 선하고 선을 행하면 보상을 반드시 받는다라는 당위성에서 나오는 거라면, 그 보상은 선함의 기준을 정하 는 쪽에서 정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보상이 반드시 있다고, 아니면 그게 어떤 종류의 보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얘기하는 구원을 바란다면 교회가 무엇을 말하는가 알아야겠지요.

      제가 이런 문제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말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근거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 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자꾸 따져보는 이유이고, 일상적인 말로 하는 설교 뒤에 복잡한 논쟁이 숨어 있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알버트/님이 인용하신 설교에 “이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며”라는 얘기가 정말 있었다면 저는 그 목사 님의 설교가 개인철학인지 성경말씀인지 계속 의심하며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목사님이 알버트/님이 얘기하신 종교간 화해나 교회일치 같은 운동에 관심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요… 개신교든 천주교든 “이것은 불가능하며”가 맞는 것 아닌가 합니다.

      서양은 이미 기독교가 발아한지 2000년이 되었고, 피를 흘려가며 신정일치 시대도 거쳐 보았고, 거기서 오는 부패와 반발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천주교와 유럽의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면을 본 노인의 지혜같은게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알버트/님 말씀하신 내용이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을 얘기하시는 거라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신의 주권을 더 강조한 것 뿐이지 인간의 행동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에의 복종이 더 철저한 것 뿐. 말씀 대로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므로, 그 판단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닌 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판단은 인간들 개인이 하는 것보다 더 공정하고 칼같지 않을까요? 제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 tracer 68.***.184.134

      view님/
      본인의 영적인 경험(personal revealation)에 의해 진리를 깨우쳤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view님처럼 개인의 영적인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우쳤다고 생각하지만, 그 진리의 이해가 view님과 서로 상충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view님의 진리에 대한 이해와 깨우침이 맞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신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본인이 느꼈던 그러한 영적인 경험들을 통해 내린 결론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두고 계신가요?

      저는 님의 글(혹은 다른 종교인들의 말과 글)에서 느껴지는 그러한 absolute certainty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평신도 68.***.178.254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것
      그렇다고 보면 우리가 보고 믿는 행위나 믿음은 100% 구원의 잣대로 보기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원=하나님의 은혜

    • View 69.***.63.172

      tracer님/

      확실한 믿음은 단순히 누구와 토론을 하거나 학교에서 누구에게 수업을 받는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을 가지게 된 다른 분들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믿음을 정해진 과정은 아닙니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삶의 과정이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는 과정또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질문중에서 믿음은 영적인 경험들을 통해 내린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저와의 교류에 인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저에게 확실한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예수님을 저의 주님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제 모든것을 주님에게 드렸는데 어떻게 그분을 부정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조금이라도 부정, 혹은 가능성이라도 열어둔다면 그것은 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 tracer 68.***.184.134

      View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님의 확실한 믿음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아닌 사탄의 선물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리고, 님의 믿음과 다른 내용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본인이 교통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시느냐는 것이 제 포인트입니다.

    • View 69.***.63.172

      tracer님/

      님깨서 계속 저에게 하시는 질문의 포인트는 결국, 제 믿음을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냐, 무슨 근거나 이유로 그렇게 확신하냐라는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에 제가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드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님께서 완전하게 이해하는데 힘든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데로 제가 가진 믿음은 단순히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교회를 가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보다는 오랜 기도와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 의해서 얻어진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과연, 제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혹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옳은지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에 어느날 하나님이 저에게 어떤 고귀한 분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신앙적으로 세상적으로 방황을 많이 하던 시기였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서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세와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아주 유명한 목사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인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분이 아닙니다. 아주 우연히 그분과 만나는 자리에서 신앙적인 고백과 앞으로 일들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믿음이 마구 제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느낌은 일종의 어떤 기쁨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세상적인 기쁨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그분 말씀이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 가슴속에 너무나도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하는지 선명하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과의 대화이후에 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는 많은 변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신앙인으로서의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그길을 우리도 따라 가야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목표이지만 그 목표가 확실한 저의 미래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생긴 이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즉, 물질적, 혹은 세상적인 목표가 나에게 부질없는 목표가 된 것입니다.
      즉, 이 현실 세상적인 것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tracer님이 이해하시기 다소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저는 이미 하나님께서 즉 성령이 저하고 같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제가 기도를 할때나 제가 힘들때 혹은 고민이 있을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옳은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의 오랜 기도와 간절히 원함을 들어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tracer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만약에 tracer님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원하신다면 한번 간절히 원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당시 기도를 할때는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 기댈 곳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가진 온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론, 어떤 분처렴 기도 중에 성령이 온 체험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 응답으로 그분을 저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대답을 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대답으로 인하여 저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니까 세상적인 고난이나 힘든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경험이 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 tracer 198.***.38.59

      view님/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던 중에 우연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어떤 소중한 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확신한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님의 경험이 아무리 놀라운 사실이라 생각해도 그것이 우연일 수도 있고, 본인의 간절함 자체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시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우연일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난 그래도 믿는다”라고 하시면 납득이 조금은 가겠습니다만.. absolutely certain하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view님과 저의 본능적인, 동물적인 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View 69.***.63.172

      tracer님/

      제가 말했던 우연은 어느 정도의 우연일까요.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그분은 이미 미국에 30년전에 이민을 오신 분입니다. 그분을 만난 것은 제가 미국에 오고 몇년지나지 않아서 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희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 아니라, 다른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를 가게 된 것도 제가 그날 제 교회를 갈 수 없어서 그 교회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그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이 제 옆자리에 아니 교회가 끝난 뒤에 모두들 떠나는 그자리에서 그분과 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그분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넓은 세상에서 바로 이시간에 그분을 만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이 우연일까요. 그렇다면 제가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난 것도 우연일까요?

      물론, 님이 어떻게 제 글을 이해하시는지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꼈던 그때 그 느낌은 아직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에는 기쁨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어떨때는 두려움까지 느끼는 그런 느낌입니다.

      저로서는 님과 좋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서 저의 신앙에 대해서 돌아 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 tracer 198.***.38.59

      view님/
      같은 일을 보고도 엄청난 운명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우연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유전자에 담겨져 있는 차이라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카드게임을 할 때, 카드 다섯 장이 royal straight flush를 가지게 될 확률과, 3,5,Q,A,7의 패를 가지게 될 확률이 어떻게 다를까요? 실제로 확률은 같지만, 단지 우리가 수억개의 조합 중에 10,J,Q,K,A를 하나 임의로 뽑아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view님이 그 분이나 부인을 만나게 된 사실에 이미 임의의 스페셜한 의미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저에게도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분들과는 달리 저의 집요한(?) 질문에 끝까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답변해 주신 view님께 감사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