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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이맘때 우리가 만났었나. 대학가 어느 숯불갈비 집에서.
정확히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몇달 후엔가, 당신이 건네준 그 야생장미…너무도 활짝 핀 나머지 못난이가 되어버린 야생장미가 내 가슴에 확 박혀버렸다는 것.
꽃은 너무 못났는데, 그 속에서, 자전거 열심히 타고 달려가 가위로 야생장미를 뚝뚝 잘라선 신문지에 둘둘말아 들고 왔다는 당신 모습, 그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그때문에 못난이 야생장미가 여느 꽃집의 고상하고 앙증맞은 장미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고귀해보였다는 것…
그렇게 당신이 내게 다가왔었다.
아무 근심걱정 없이 맑은 냇물에서 맨발로 뛰어노는 소년 같았던 당신.사람은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고
여러번의 실패뒤에 만난 당신을, 나는 도저히 잡고 싶지만은 않아서
먼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당신에게,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행복하라고, 좋은 추억이 되어줘 고맙다는 내게
말없이 고개만 젓던 당신.
정말 정말 서로 사랑하면 기적이라는 게 생길까?
우리 사랑이 기적이었던 걸까.
떨어진지 4년여의 시간, 장거리 연애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당신같은 사람이라면 고생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어떤 것도 행복할것이란 생각에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한국을 떠났지.
1년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동안,
당신이 내게 물어왔다. 알래스카 가서 사는건 어때.
두차례 여름을 보낸 경험이 있는 당신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지.
그래, 가지 뭐. 우린 젊으니까.
안정적인 직장 관두고 모든 짐들 처분하고,
텐트와 옷가지들 차에 가득 싣고는 그 위엔 당신 애인 카약 얹고 꽁무니엔 자전거 두대 달고서,
캘리포니아 도로 101번 타고 위로위로 올라가며, 한달간 낚시하며 캠핑하며
그렇게 도착한 알래스카 땅에선…
봄은 커녕 아직 겨울도 가시지 않아, 온통 눈밭 얼음밭…
통나무집 하나 빌려 살면서, 4월에 내리는 함박눈을 보면서, 창밖으론 소도 아닌 말도 아닌 이상한 것들이 뛰어다니는걸 보면서, 과연 잘 한걸까? 당신의 지나친 모험심은 아니었나 하는 원망도 살짝 했었고, 그래도 어쨌건 살아야지 싶어, 나도 일을 구하기 시작했고…관광지니까 웨이터리스 하우스키퍼 뭐든 잡히는대로 해내리라 열심히 어플리케이션을 모았었지.
그러다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도전해본 파트타임 소셔 워커… 내가 정말 운은 억수로 좋았나봐. 쓰잘데기없이 심리학을 나왔다고 혀를 찼었드랬는데, 인구 3천명인 작은 관광 마을에서 시즌 잡이 아니라 1년내내 하는 일을 구했으니. 내 이름 걸고 당신까지 건강보험 커버된다는 말에 어깨가 우쭐하기도 했었다. 나도 맹탕은 아니다 그지, 히죽거리며.
그저 인턴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이들에게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 외칠수 있는 대나무 숲으로 자라나고… 인종도 말도 달라서였을까,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편했나부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클라이언트들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그때의 클라이언트들이,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성장시켜준 것만 같다. 지금 이렇게 당신 뒷바라지 하며 아이 둘 키우며 살수 있도록.본격적인 여름 시즌이 시작되고 당신은 배를 타기 시작하면서,
새벽일찍 나가 9시가 넘어서야 생선비린내 풍기며 들어와선, 샤워도 하기 전에
지친 육체 이끌고 정신은 반쯤 나가 스토브 앞에 서서는 닥치는대로 뭐든 한두 숟갈 떠먹는 당신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장시간의 막노동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와 허기는,
아무리 정성스레 싼 도시락으로도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겐가.당신은 그렇게 주6일 미친듯이 일하고,
나역시 매일같이 당신이 사준 슈퍼울트라 자전거 씽씽 달려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그리고 오버타임으로…
우리 둘 참 열심히 살았다. 그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으니 그래서 우린 늘 상을 받나보다.
우리 힘으로 자그마한 집도 사고 첫 아이도 생기고,
어느정도의 안정과 여유를 찾았으니.
둘째가 생기면서 그나마 하던 파트타임도 그만두고, 완전 전업주부로 들어선 나…
젊음 믿고 들어간 알래스카 땅에서, 그곳에서 정착하기엔 깜깜한 겨울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져
알래스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갑자기 닥친 경기침체로 그나마 진행되던 페더럴 직장 마저도 중간에서 멈춰버리고
처음에 그렇게 알래스카로 갔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살림을 처리하고
식구 둘 더 늘어 본토로 들어온게 작년 이맘때구나.
지금의 당신을 바라보며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경기침체로 구직 활동이 길어지면서
혹여나 지쳐서, 자신을 포기하고 그저 희생할 양으로, 아무 직장이나 골라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처자식때문에 떠밀려 들어가듯 그렇게 가는건 아닌가 하고.
함께 살며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우리는
알래스카에서 함께 고생하며 힘든일 기쁜일 행복한일 겪으면서
여전히 서로 아끼고 믿고 사랑하니, 그걸로 된거 아닌가?
좋은 집, 예쁜 옷, 그게 당장 없더라도 우린 매끼니 배부르게 먹고, 밝게 자라나는 두 아이 재롱보며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우린 행복한거 아닌가?임시 직장을 잡고서 살고 있는 지금,
몇몇 직장의 최후 통보를 기다리는 지금 이 시점,
그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다.
시냇물에 뛰어노는 소년 같던 당신이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맘속으론 온갖 고민과 책임감으로 복잡할터인데,
눈가의 자글자글 주름지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
여전히 한결 같은 당신, 혹 내가 걱정할까 모든걸 혼자 품으려 하는 당신,
한번도 불평불만 한적 없고, 늘 내가 최고의 아내 최고의 엄마라 말해주는 당신,
그런 당신이기에 내가 행복한데…
나는 정말이지 행복한데 그걸 알까.내가 당신에게서 정말 원하는 건 말이지,
어떤 직장이건 간에, 당신이 진정 원하고
당신이란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인정받고 당신이 노력한만큼 성취감도 느끼고,
꼭 처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 만족하고 그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혹 많은 돈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 여러번 이야기했듯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
우리 둘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지금처럼만 아기자기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이 좀만 더 크면 나 역시도 일을 시작할 수 있을테고,
지금까지 잘해온것처럼 앞으로도 잘할테니까.
당신이 언젠가 최고의 선택이 나라고 말한것처럼,
내 인생 역시도 최고의 선택은 당신이야.
힘내자 우리.
강태공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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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열심히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애쓰는 세상 모든 가장들과
그들의 아내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