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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학와서 받았던 가장 큰 충격중 하나는 역시 영어라는 언어에 있었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최적화를 연구주제로 공부를 하고 또 성격도 굉장히 정확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그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큰 충격이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어쩔때에는 아주 기초적인 표현도 미국사람들 특유의 빨리 옹알거리는 듯한 어투에 못알아 듣고 당황하고 방황했던 일은 얼마나 많았었는지…
지금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화끈해질 만한 실수는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화중 하나.
제 전공분야에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실용화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교수의 수업을 들었었습니다.
문제는 이분도 젊은시절에 유럽에서 유학을 온 분이라 영어는 완벽하게 구사하지만 액센트가 좀 강해서 유난히 저는 그 분의 수업을 쫓아가기 힘들었습니다.
사실 영어보다는 그 분의 수업이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항상 영어라는 컴플렉스가 있어서 인지 무의식 중에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보다는 교수의 영어때문이라는 책임회피성 마음이 있었습니다.기말고사 성적표를 본 저는….교수를 찾아가 따지리라는(?) 순진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이미 저의 관심과는 멀었고 오직 열심히 공부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없다는 그 자존심 상함에 따른 오기였는지…
물론 유명한 교수라고 학생의 면담은 거절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분도 더 저의 의견을 겸손히 들어주려 노력했습니다.
문제는…대화중에 그만 저의 무의식의 불만이(?) 입술로 나와 버렸습니다.
노교수는 잔잔히 웃으면서 다 들어줬고 이런 이런 이유로 성적을 올리기는 곤란하다(워낙 성적에 짠 분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만 수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표현을 썼고 이는 교수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누구도 그런 말을 교수에게 한 적이 없었을테니…그러자 “과연 그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말에 저는 두 눈 똑바로 보며 당당히 “당신의 영어 즉 당신의 액센트에…”
희한한 것은 그 교수의 얼굴과 저의 얼굴이 모두 새빨갛게 달아오랐고 한참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오기와 자존심의 폭발은 아니었는지…
어떻게 그 상황에서 벗어났는지 기억은 안납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유명한 노교수도 컴플렉스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이 교훈을 토대로 자신감이 생겼고 그 이후로 정말 치열하게 영어를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른새벽 영어연설클럽에 가입해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수년간 짤리지 않고 (미국사람들의 응근한 압박이 많았지만) 끈덕지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습니다.
이제는 Senior Manager로 Government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제는 영어문서 등을 작성했을때 다른 사람들로 부터, 서류오류나 표현의 문제 등을 지적받는 일은 거의 사라졌고 그럴때마다 뒤로 돌아 찡한 가슴을 쓸어내릴때가 많아졌습니다. (사실 너무 기초적인 부분입니다만 저같이 유난히 영어에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것도 감동이 되나 봅니다.)
요즘 젊은 학생들 정말 영어 잘 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남들하는 기초(!)를 쫓아가면서 감격해 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동안 영어로 인해 받았던 그 수많은 낯뜨거운 상황들, 난감한 사건들, 미팅에서 주눅든 나를 발견하고 괴로워하던 순간들…이제 겨우 기초적인 수준에 달했는데도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항상 저의 뇌리에 한국사람, 동양사람들이 없는 환경에서“나는 한국을 대표한다”라는 마지막 자존심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지난 수 많은 시간이 이제는 아주 조금이나마 결실로 나타난다는 그 보람 때문이 아닐런지요.
아직도 가끔 그 노교수의 새빨개진 얼굴과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서 혼자 싱겁게 하지만 행복하게 미소짓곤 합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때에 나의 컴플렉스를 깰 수 있었던, 주눅들지 않았던 그 한 순간의 당당했던 용기(?)가 결국은, 나를 오랬동안 쥐고 틀고 있던 깊은 우물에서 밖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한국인이라는 자존심과 연결하여 사고하는 것을 보면…결국 나는 이민 1세대라는 그 사실을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