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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닭공장 한인들, 영주권 어떡하나 발 ‘동동’
영주권 문호 후퇴…영주권 받으려면 6년 기다려야
미디어다음 / 윤준호 프리랜서 기자
“그동안 일이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자고 버텨왔는데 지금은 끝이 안 보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할 뿐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육류 가공 공장에 10개월째 다니고 있는 박 모씨(42). 그는 미국 이민국이 최근 비전문직 취업이민의 문호를 6년이나 후퇴시킨 뒤 한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미국 이민국은 최근 닭공장 취업 등에 적용되는 비전문직 취업 이민의 영주권 문호를 지난달보다 무려 6년이 뒤로 밀린 ‘1999년 1월 1일 이전 신청자’로 발표했다. 닭공장 취업을 통해서 영주권을 얻으려면 1999년 이전에 취업해 영주권을 신청해야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즉 영주권 문호가 지난달처럼 ‘2005년 1월 1일 이전 신청자’라면 2004년에 이주한 한 사람은 올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즉 1년 정도만 닭공장에서 일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준이 ‘1999년 1월 1일 이전 신청자’로 후퇴하면서 2004년에 이주한 사람은 5년을 더 기다려야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문호가 일 년마다 앞당겨진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고 이번처럼 문호가 뒤로 후퇴하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닭공장 취업이민이 한인들에게 인기를 끈 이유는 비록 막노동을 하더라도 매우 짧은 기간에 미국 이민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닭공장 이민의 장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박씨는 한국에서 대기업 중간 간부로 일했었다. 그는 미국 이민을 위해 10개월 전 이민알선 업체를 통해 이곳 공장에 취직했다.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시간당 7달러(약 7000원)의 저임금 노동자로 일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막노동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1~2년이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 버텨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민국의 최근 발표로 그의 희망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박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은 약 30여 명. 이들 모두가 이번 발표로 박씨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이민국은 신청자 급증으로 비전문직 취업이민 대기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발표해 닭공장 취업 한인들의 막막함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작다.
결국 현재 닭공장에 취업중인 한인들은 영주권 취득을 위해 6년 이상 닭공장에서 막노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이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번 조치가 발표되자 미국 내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과 이민 인력공급 업체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앨라배마주 생선 가공업체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는 LA의 한 인력공급 업체는 “닭공장 취업 한인들과 취업 희망자들로부터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답변하고 있지만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미국 내 닭공장 등 육류가공업체에 비전문직 노동자로 취업중인 한인은 적어도 수 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치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닭공장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미국 이민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이민 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들이 이민에 성공할 가능성은 작다.
닭공장 취업자들은 미국 이민을 위해 한국의 직장이나 사업 등 생활 터전을 이미 정리한 경우가 많아 이민을 포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막막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번 이민국의 발표로 수 천명의 닭공장 노동자들과 그 가족 등 수만 명의 한인들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