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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 빨갱이 부대 공격에 조선인들의 싸움질 일어 났다.
알레이 소장과 조이 소장과 오오쿠보장관의 대화에 따르면
“가능한 일본의 모든 소해정을 모아 주시오.
그래서 우리 미군과 함께 조선반도의 동해 원산과, 서해의 인천 앞 바다 진입로,
그리고 항구에 있는 수뢰를 제거해 주시오.
이것은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할 극비사항입니다.”
오오쿠보장관은 즉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 수상을 만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일본정부의 정책은 유엔군의 군대에 협조를 하는 것이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을 서둘러 준비하여 협조하라.”
대일본 제국은 6.25 조선전쟁을 위해 즉시 요구사항인
일본제군 2,100여명 재일한국인지원병 725명 소해부대(掃海部隊) 종군간호부 63명
점령군노동자병원(占領軍勞動者兵員) 물자운송 4,000명 전격 투입해서 승리를 이끈 것이다
일본정부는 조약에 의하여 20척의 소해정, 1척의 기니피크와 4척의 기타 일본해역 안전선(Maritime Safety vessel)을
최대한 신속하게 모지에 집합시킬 것을 요청에 따르는 명령이 내렸다.
6.25 조선전쟁 이후 일본의 군수 지원 물품은 또다른 한국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발판이 된것이다.
▶◀북한 빨갱이들에게 희생된 대일본제국 국군 장병들의 영광스런 죽음에 한국인의 대표 국민으로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