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16:50:09#3889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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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는 유학/이민 관련한 커뮤니티가 여기밖에 없어서 글 남깁니다.. 요새 참 정신적으로 힘드네요. 혼자 생각만 하다보니 계속 구덩이로 더 들어가는 것 같아서 다른 분들과 얘기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해외고 출신에 현재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학교에 들어오니 제 생각보다 너무 다르고, 실망도 크고, 미국에 갔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제가 느끼는 서울대 공대는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아니면 살아남기 매우 어려운 곳입니다. 이 친구들은 대학교 1-2학년 과정을 전부 선행학습하고 들어오는데, 수업들이 전부 이 친구들한테 맞춰져있습니다. 저 역시 고딩 때 IB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파이널 점수 45점으로 졸업하고 ap도 5점짜리 몇개 있지만 이 친구들의 선행학습 수준은 IB/AP와 차원이 다릅니다. 애초에 대학교 교재를 보고 “어 이거 가지고 고1때 수업했는데” 할 정도입니다. 교수님들이 수업할 때 “뭐 이 정도는 알겠지”하고 넘어가는게 매우 많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제도도 미비합니다. PPT를 있는 그대로 그냥 읽는 교수님도 많고 대학원생들은 워낙 바빠서 오피스 아워에 질문하는 것도 힘듭니다. 거기다 변별력이 필요하니 수업 내용에서 다루지조차 않은 내용들이 시험문제로 나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한 마디로 수업 열심히 듣는 것과는 별개로 애초에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 절대 잘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뒤 이때 느껴지는 현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농구 수업에서 잘하려고 농구 열심히 했는데 정작 시험은 멀리뛰기 기록으로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비슷한 면도 분명 있겠지만 사실상 그냥 애초에 운동신경 좋은 애가 짱먹는 구조입니다. 물론 대학교 4년 열심히 한다고 영재고 과고 애들 뛰어넘는다면 그 친구들이 중학생부터, 아니 초딩때부터 열심히 한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다고 제가 열심히 안한 건 아니지만..뭐 어쨌든..
반면 미국 명문대들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뽑고 (애초에 영재학교 같은 수준의 선행을 시키는 학교가 미국에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모두가 의지만 있다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제도나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가르치는 내용과 과제, 시험 등이 잘 align되어있는 것 같고요..제가 미국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는데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1학년 수업들이 쉽다는 겁니다 (로드가 적다는 게 아닙니다. 지적인 난이도를 뜻합니다). 사실상 일단 1학년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상인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친구들 말로는 워낙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단 모두 같은 지적 선상에 놓고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MIT 다니는 친구가 말하길 AP미적분조차 잘 모르고 들어오는 학생들도 적지만 있다고 합니다..”얜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거지” 싶은 생각이 들은 경우가 꽤 있었다고 했네요. 당연히 이런 학생들은 한국 대학 기준으론 고려할 가치조차 없이 광탈이겠죠.. 기본 학업/수학 능력에서 기준 미달이니까요. 중요한 건 이런 학생들까지 일단 입학을 시켰으면 4년동안 아주 빡세게 교육을 시켜서 모두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인재들로 육성시켜서 졸업시킨다는 겁니다. “이게 교육이지” 싶었습니다.
서울대는 정반대입니다. 애초에 “똑똑한” 친구들을 뽑아서 “니네가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라. 못 따라오면 어쩔 수 없지 뭐. 여긴 니 길이 아닌거다” 싶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1학년 수학 물리학 강의부터 이렇습니다. 저도 해외고 출신이기 때문에 중고딩 동창들 중에 아이비리그, 스탠퍼드 등 간 친구들이 꽤 있는데 이 친구들 대부분 사실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막 천재적이라기보다는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예술도 잘하고 봉사도 하고.. 흔히 생각하는 육각형 인재, 엄친아 느낌이 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공부뿐만 아니라 전교회장, 오케스트라 단장, 축구부 주장, MUN클럽 회장 등에다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 등 지능이 특출난 건 아니지만 그냥 두루두루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 같은 애는 주변에 한 명도 없었고요. 이런 “머리는 평범하지만 포텐셜이 있는” 친구들을 데려다가 이제 학업적으로 빡세게 교육시켜서 인재로 만드는 곳이 미국 대학교 같습니다. 서울대는 반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한 번도 보지 못한 “진짜 얘 뭐지” 싶은 애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한국에 유난히 수재들이 많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올림피아드 메달 딴 애들 뭐 당연히 많고, 그냥 머리 자체가 좋은 애들이 많습니다. 아 이런 애들이 서울대 공대 다니는 거구나. 난 길을 잘못 찾았나보다. 나는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친구들이 중고딩때 한 선행학습과 소수의 영재들을 위한 서울대의 교육과정 역시 이러한 박탈감에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 명문대에도 이런 천재들이 있겠죠. 다만 제가 느끼기에 미국 명문대는 “탁월함”의 정의와 해석이 서울대보다 훨씬 넓고 다양합니다. 천재도 뽑지만 제 동창들처럼 지능은 일반적이라도 매력적이거나 특이한 삶을 살아온 학생, 또는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이진 않아도 좋은 성과를 보인 학생도 뽑아서 교육시킵니다. 국내 명문대는 광탈했는데 해외에 훨씬 좋은 명문대에는 합격하는 경우 아마 많이 보셨을 겁니다. 서울대는 소수의 천재를 위해 저 같은 다수의 범재가 바닥을 깔아주는 구조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렇기 때문에 의대로 도망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평범하다는 걸 대학 와서 처음 느끼고 힘든 상황에서 학교 분위기조차 이 감정에 일조를 하기 때문에, 이걸 도저히 못 견디고 최소한 꼴찌를 해도 하방은 보장된 의대로 “도망”을 가는 것 같습니다.
제 고등학교 동창 중에 라이스대학교 공대 다니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제가 수석이었고 (valedictorian) 이 친구는 전교 15등 정도 했습니다. 물론 고딩때도 상당히 잘했던 친구지만 솔직히 막 수재라고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대학 들어가고 우연히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더군요. 우선 저보다 공학 관련 지식이나 이해도가 훨씬 높더라고요. 학점도 저보다 높고, 실력도 저보다 나은 것 같았어요. 저는 전공 교수님 수업을 정말 도저히 못 들어주겠어서 혼자 공부하고 밤새 찾아보고 하다 현타에 짜증에 스트레스에 이것저것 다 합쳐져서 “아 시X 몰라 짜증나”하고 수업도 던지고 했는데, 이 친구는 그런 적 한 번도 없다고 하고요.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만족한다고 말하는게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저는 지난 몇달 동안 행복한 적이 있었는지 싶네요 (만성 우울증인가..). 수업 들으면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요.. 아 그리고 라이스대학교가 그냥 어떤 학부든 stem쪽이든 서울대 압살하더라고요ㅋㅋㅋ위상이나 인프라나 랭킹이나.. 전 뭘 위해서 고딩때 그렇게 열심히 한 걸까요 하하. 그리고 제가 부정적이라서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걸수도 있는데, 제 친구들 중에 미국 대학 간 친구들은 그래도 대체로 자기 학교와 생활에 만족하는데, 제가 서울대에서 만난 친구들은 보통 학교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넋두리가 길어서 죄송합니다.. 평소에 혼자서만 하던 생각을 쏟아냈네요. 물론 미국이라고 무슨 천국은 아니겠지만.. 학교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이니까 너무 힘드네요. 진짜 지금이라도 자퇴하고 미국대학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배운것도 별로 없고.. Hypsmc 이런 곳들은 꿈도 안 꾸구요, 카네기멜론 듀크 존홉 노스웨스턴 라이스 이런 곳들도 기대도 안합니다. 일단 집에서 학비를 감당해줄 수가 없어서 갈거면 재정보조나 장학금을 받아야하는데, 사실상 t20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아래도 매우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애초에 나이도 많고, 아시아계에 딱히 특출난 것 없는 애를 돈까지 주고 데려갈 이유가 없겠죠. 그나마 도전해보고 싶은 곳들이 있다면 리버럴아츠 칼리지나, 로체스터 대학교, 드렉셀 대학교, 브랜다이스 대학교 같은 사립대학교들인데.. stem쪽으로 재정보조까지 받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방법은 어쨌든 꾸역꾸역 서울대 졸업하고 나중에 석사를 하러 나가는건데, 학점도 안 좋은 저를 석사로 나중에라도 뽑아줄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대학원 생각해본적이 없긴 한데.. 석사가 그나마 제일 현실적일까요? 한 번 뿐인 인생 미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살고 계신 분, 또는 미국에서 대학교/대학원 다니셨던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그냥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사실 그보다 그냥 그만 좀 불안하고 싶고 좀 편안해지고 싶네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미국 가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고, 과거에 대한 후회 등등이 합쳐져서 정신적으로 너무 지칩니다. 고등학교 수석 졸업하고, IB 만점에 서울대 합격에.. 그때 당시에는 세상이 제 것인 줄 알았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을거고, 나는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오고 1년도 안돼서 박살이 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