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와 심형래에대한 어떤 평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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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면대로만 보자.

    ‘파워 킹’, ‘드래곤 투카’, ‘용가리’는 성공적인 영화가 아니다. 비평적, 상업적으로 모두 실패한 영화들이다. 이들의 실패 요인은 먼 데 있지 않다. 각본 구성력, 영상 연출력, 연기 통제력 등 영화연출의 기본요소가 낙제점이다. 아이디어 자체도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이다.

    따라서 한국형 SF 팬터지가 미진한 반응을 보일 때 등장하는 고질적 변명, 즉 기술적 한계나 자본의 문제 등은 위 영화들 실패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의 실패는 전적으로 연출력이 부족한 감독, 안목과 시장 흐름 파악이 부족한 제작자 책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영화들의 감독 겸 제작자 심형래의 신작 ‘디워’는 엄청난 기대를 안고 등장했다. 미디어와 대중 양편이 모두 열광했다. 일반적으로 한 작가의 신작 기대도가 그 전작 평가에 기댄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는 꽤나 예외적 현상에 속했다.

    흥미로운 것은, ‘디워’에 대한 기대감이 그 흔한 제작사발 하이프에 기인하는 것조차 아니었다는 데 있다. 물론 ‘디워’ 관계자 측이 수없이 책임 못질 하이프를 터뜨린 건 맞다. 그러나 몇 번씩이나 말이 번복되고, 과장과 허풍이 지적돼도 대중은 꿈쩍도 안 했다. 대중은 꾸준히 심형래를 지지했고, 그 신작이 심형래 본인의 호언장담처럼 ‘할리우드의 콧대를 뭉개줄’ 영화가 되길 바랐다. 실제 대중 반응을 가리키는 ‘버즈’였던 것이다.

    사실 심형래가 가려는 방향은 심형래만의 것은 아니다. SF 팬터지 장르 선택, 특수효과 기술 확충, 해외시장 진출 등을 꾀하는 이는 많다. 오히려 더 섬세하고 치밀한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과 심형래는 다르다. ‘디워’에 대한 기대는 심형래의 발상과 계획, 방향성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심형래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기대다. 그가 보여준 ‘실체’라곤 과거 실패작들 뿐인데도 말이다. ‘인물’이 ‘실체’를 넘어서 대중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것.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버즈다. 소위 ‘인물론’ 버즈가 대중문화산업에 침투한 최초의 경우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 인물론 버즈는 대중문화산업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타 분야의 예는 있다. 정치 분야에서의 노무현, 과학 분야에서의 황우석이 그 예다. 이들과 심형래의 지지도 확보 양상은 거의 일치한다. 이들 모두 딱히 능력이나 업적을 평가하긴 힘든 이들이었다.

    노무현은 능력 자체가 검증이 안 됐고, 황우석은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거짓으로 판명 났다. 심형래는 그 뒤에 실패작들이 늘어 서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검증된 능력보다 순수하고 애국적인 뜻과 소탈한 인성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냈다. 물리적 실체보다 가치와 됨됨이가 우선시된 경우다.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황우석은 구명 촛불시위까지 일으켰다. 심형래의 ‘디워’는 개봉 3일째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사실 흥미로운 부분은 양상보다도 원인이다. 인물론의 근거는 당연히 인물형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들의 어떤 위치적·인성적 공통요소가 대중심리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실제 성과와 업적, 능력을 뛰어넘어 맹목적 지지 심리를 일으켰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세 인물의 ‘인물형’ 첫 번째 공통점은, ‘전문성·권위 콤플렉스’를 지녔다는 점이다. 황우석은 의대가 아닌 수의대 교수이자 유학파 아닌 토종 과학자였다. 심형래는 체계적 영화교육을 받지 않은 개그맨 출신이다. 노무현은 ‘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등의 전력으로 외교 및 각종 전문영역에 있어 수행능력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전문성과 권위의 결여 내지 폄하는 오히려 대중 지지도 면에서 득이 됐다. 전문성과 권위는 기성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쉽게 비화된다. 이들의 분투 및 설움 토로가 기성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자극, 동질감을 형성시켰을 수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국가·민족적 콤플렉스 극복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노무현은 꾸준히 미국의 정치적 지배에서 벗어나겠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황우석 박사는 서구 선진국의 기술지배에서 벗어나겠다는 언급을 동원했다. 심형래는 할리우드 영화 극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외세 속 질곡의 역사를 통해 한국 대중에게 자리 잡은 ‘약소국의 설움’ 피해의식을 효과적으로 자극해낸 셈이다.

    경제적 분노의 해소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는 점도 같다.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가 목이 터져라 외친 것은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한국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외친 것은 재벌 및 기성 경제기득권층의 돈을 빼앗겠다는 것이다. 장기 경제불황에 시달려 지치고 화난 한국 대중에게 정확히 들어맞은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모두 대중성이 강하다. 인간적 매력과 위트, 자기연출 능력을 갖췄다. 언변도 좋다. 21세기 대중주의 시대에는 우직한 정치인, 연구실에 틀어박힌 과학자, 예술가연하는 콧대 높은 아티스트보다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 더 큰 호응을 얻어낸다. 버즈의 기본요소는 다름 아닌 ‘친근감’이다.

    인물론 버즈 수혜자들이 보여주는 이 같은 공통 속성은, 사실 경제불황기 대중정서의 특징적 요소들에 속한다. 반기성적 인물에 대한 열광, 민족주의·반외세주의 대두, 엘리트주의 반대편에 선 대중주의적 인물상 추구 등은 모두 경제불황기의 대표적 특성이다.

    나아가, 인물론 버즈의 대두 자체가 경제불황기 특성에 기댄다. 사회가 마비되어 대중이 정서적 불안과 혼란을 겪으면, 인간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감상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선호하게 된다. 차갑고 냉정한 가치 평가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기능적 평가에서마저 능력보다 인성이 앞서게 된다. 결국 심형래, 노무현, 황우석이 스타로 떠오른다.

    물론, 인물론 버즈 수혜자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온다. 어차피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가능성 장사’다. 실체가 아니라 말이다. 이 ‘가능성’을 실제로 실체화시킨 ‘진정한 스타’가 등장하면 이들의 역할은 끝난다. 그리고, 이들의 지지세력이 가열화 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맹목적으로 성과를 과대포장하고 약점을 감추려는 열성적 지지층의 행태는 일반대중의 기본 이성을 건드린다. 이쯤 되면 대중도 의심과 중도 심리를 회복한다.

    마지막으로, 대중이 이들에게 실제 피해를 입었다 여기면 끝이다. 최대의 인물론 스타 노무현도 여러 불발 정책과 혼란 상황 야기로 국민생활에 실질적 피해가 오자 바로 레임덕에 들어갔다.

    그런 점에서 ‘디워’는 심형래에게 분수령이다. 심형래 인물론 버즈는 상당부분 그의 영화에 실제 돈과 시간을 투자한 일이 없는 이들을 발판으로 번져나갈 수 있었다. ‘디워’는 그의 어떤 영화보다 널리 홍보되고, 더 많은 관객이 관람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개인 여가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은, 콘텐츠 만족도가 낮으면 곧바로 ‘실제 피해’를 느낀다.

    물론 한 두 번은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지지를 얻는다. 콘텐츠 완성도가 떨어져도 대중은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 준다. 그러나 그 이후엔 대중도 가능성만으론 만족 못한다. 특수효과만 더 화려해진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 진정한 콘텐츠 완성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대중도 실망과 염증을 느끼게 된다.

    ‘디워’는 어떻게 봐도 ‘가능성 장사’ 이상의 콘텐츠는 못된다. 심형래로선 마지막 가능성 장사가 된다. 그리고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대중이 열광하게 된 것은, 시대를 잘 만난 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디워’는 결국 시대의 표상으로 남게 될 영화다. 십수년이 지난 뒤, 왜 이런 영화에 대중이 열광했는가를 돌이켜보며, 영화 자체가 아닌 시대를 되짚어보게 하는 콘텐츠 말이다. 그리고, 인물론 버즈를 떠올리고, 노무현과 황우석을 떠올리고, 지치고 힘든 경제불황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를 증명해주는 영화는 날카로운 사회파 영화들이 아니라 ‘디워’와 ‘디워’가 일으킨 대중반응이 되리라 짐작해볼 수도 있다.

    <관련사진 있음>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 빠다왕자 69.***.65.164

      평론가들은 이렇게 해서 돈 버나보네요. 정말 말을 만든다는 느낌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 ㅉㅉ 64.***.193.17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떻게 되는건데? 그냥 저질 신문 인터넷뉴스에 글 몇개 올리고 대충 그럴싸하게 이름만 갖다 붙이면 다 평론가 되는가 보구나 요즘은. ㅉㅉㅉ. 대한민국 요즘 왜 이러냐? 뭐 뻑하면 안티냐? 얼마나 좔난 싸람만 쪼꼬만 땅떵어리에 다들 모여주셨는지…남 잘 되는 꼴을 못보고 누구 칭찬해주는 일엔 절대 인색하고..ㅉㅉ 그래서 니 자식들이 뭘 보고 배우겠니? 대한민국은 전국민적으로 반성해야한다. 무조건 남들 깔아뭉개고 보는 거지근성. 오케이?

    • superid 24.***.6.62

      어차피 영화는 관객이 평가하는 것이다. 개봉 4일만에 돌파한 2백만 그리고 앞으로 천만이 될지 모르는 관객들이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만 못해서 디워라는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대중관객들이 그저 언론플레이에만 혹해서 또는 그저 호기심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수준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휘황찬란한 마케팅으로 포장했다하더라도 영화자체가 기대에 미치지못한다면 지금같은 관객몰이는 기대하기 힘들다. 실력도 안되는 글쟁이가 기타 정치적 논리를 곁들여가며 억지상황을 풀어가려니 상당히 힘에겨워하는것 같아 안쓰럽다.

      개인적으로 무슨 대중문화 평론가입네 하는 사람들은 왠지 신임이 안간다. 이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대중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고 평가한다는 것인지 알수없다. 어차피 지들도 같은 물에 발담그고 앉아서는, 창작자가 산고의 고통을 치르며 짜아낸 생산물에 어쩌니 저쩌니 쓸데없는 횟칠질에만 전념하는 군상들…
      악어새보다 못한 직업군이다.

    • 68.***.170.105

      어이구 하이에나 같은넘…
      교주님 까는 소리에 그냥 튀어나오는구나.

      실력? 신임? 웃기고 있네…
      노방불패 교주님 빠돌이들외에 니가 신임하는넘 있냐?

      산고의 고통? 횟칠질?
      이런 말 하는 넘들이 또 문희준이는 열심히 까더라구…:)

    • ………. 85.***.242.26

      같은 빠안에서도 한쪽은 심형래를 까고,, 한쪽은 심형래를 응원하고…

      지조도 없는 놈들~~~~~

      기준이 뭐냐…이 빠돌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