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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B’의 비극과 ‘숨은 좌파’ 노무현의 정체
[비나리의 초록공명] 대한민국 서민은 폭발 일보직전, 盧는 혁명 기획자?우석훈
최근의 산업공학·전산공학·생태학, 그리고 진화경제학은 ‘시스템 분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이런 학문들의 접근은 구조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현실 세계를 이론에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해석된 세계’라는 해석학 전통이 강한 접근들이다.
최 근의 한국 사회경제는 ‘국민경제’와 ‘국민들’로 분석하는 전통적 거시경제 모델보다는 ‘한국 A’와 ‘한국 B’라는 두 시스템을 전제하는 시뮬레이션 모델 편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한국 A는 평생 소비한 부보다 많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한국 B는 자식에게 자신이 소비한 것보다 적게 물려주는 사람이라고 각각 정의하자. 자신이 살아온 삶과 예금통장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자신이 한국 A에 속해 있는지, 한국 B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개인적으로 한국 A에 속할 것이고, 서울시장 경선에서 빚을 졌다는 홍준표 후보는 한국 B에 속할 것이다. 노무현 시대는 한국 A와 한국 B가 ‘공존 모델’에서 ‘분리 모델’로 결정적으로 전환된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두 집단은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중이며, 문화적으로도 별도의 집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박찬호와 박세리는 한국 A의 스타이고, 이종범과 송진우는 한국 B의 스타이다. 노무현은 한국 A의 대통령이었고, 한국 B의 배고픔은 이명박을 낳았다. 골프장 300개, 수도권의 새도시 대량공급, 심지어 오페라 하우스 중심의 문화공간까지 한국 A의 전유지는 증가했으며, 이런 흐름 가운데 ‘신 대연정’이 놓여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놓여 있다.
한국 B는 한국 A가 대부분을 소유한 국토에서 고립되어 외롭다. 내일 밥 걱정은 없는 ‘한국 B1’, 내일 밥이 걱정되는 ‘한국 B2’, 당장 오늘 먹을 밥도 걱정되는 ‘한국 B3’, 이런 식의 분화가 진행 중이고, 오히려 자신들끼리의 경쟁이 격해지는 중이다. 강남은 한국 A에 속하고,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지역마다 이른바 ‘대구의 강남’, ‘부산의 강남’, 심지어는 ‘제주도의 강남’까지 한국 A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한국 A는 한-미 에프티에이의 수혜집단이며, 집값 파동의 수혜집단이고, 로스쿨의 수혜집단이다. 박정희가 한국 B의 대통령이고자 했다면, 노무현은 ‘눈물’ 날 정도로 한국 A의 대통령이고자 했다.
자 본주의 역사상 이렇게 A지구와 B지구가 분리되는 시절에는 빌딩이 높아지는데, 상하이가 그렇고, 두바이가 그렇고, 미국이 그랬고, 1970년대 파리가 그랬다. 타워팰리스는 한국 A만을 위한 공간이며, 한국 B가 너무나 약해져서 서울에 고층빌딩이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한국 B의 비극’은 ‘노무현 눈물의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방의 한국 A에게 ‘선택과 집중’으로 모든 것을 몰아준 토호구조는 해체가 너무 어렵고, 노무현 정부가 협상한 한-미 에프티에이 역시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한국 A와 한국 B가 지금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면 시스템 내에서 혁명 아니면 폭동 두 유형의 ‘이벤트’ 발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공권력의 출현 빈도도 높아진다. 한국 B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한국 A의 대통령이 되었던 노무현 시대의 구조적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 이랜드 농성과 고속철도(KTX) 여승무원의 단식은 한국 B의 최소한의 자위권이다.
비정규직 800만, 신용불량 500만, 350만 농민, 여기에 ‘바다 이야기 피해자’까지 이런 한국 B를 노무현처럼 각개 분리 및 개별 타격하는 전법을 장기간 사용하면 혁명 발현 확률이 90% 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숨은 좌파이고 진정한 혁명의 기획자인 셈이다.
* 본문은 7월 11일자 <한겨레> [야!한국사회]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