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단성소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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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j 68.***.87.156 2245

    유시민에게 유래깊은 정서적 버릇이 있다면 그것은 비장함입니다.
    “비장함은 나의 힘”이라고 할까요?

    비 장함이란 결과적으로 이르는 감정적 상태이지, 행위을 구성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예는 “비장하게 이웃을 죽였다”고 해서 “무감각하게 이웃을 죽였다”는 것과 객관적으로 특별히 다른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죠. 심지어 “실수로 이웃을 죽였다”는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지요.

    물론 주관적으로는 큰 차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주관과 객관을 혼동하는 부분이 있지요. 유시민은 비장한 BGM을 깔면 자신의 행위가 특별하게 보인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주 비장함의 상태에 이르는 데요, 심지어 궁색한 처지에 몰렸을 때 자신의 비장함을 들어 그 사태를 정당화하려고 하죠. 공사 혼동의 극치지요. 그가 연금법 개정에 실패하면 장관직에 파면된다고 기만 정보전을 펼친 것도 비장함에 너무 자주 의탁하는 그의 버릇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가 썼던 소설, 군대 회상록도 지나치게 한결같이 비장했지요. 극도의 비장한 심리상태는 스스로의 죄를 사하고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비장하다고 해서 그의 죄를 사할 수는 없지요.

    글의 제목은 논리인데 뜬금없는 심리 해석부터 들어가서 죄송합니다. 이제 그나마 논리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최 종편집본이라는 대한민국 개조론에는 서문으로서 단성소 비유가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올려져 있으니 읽어보셔요. 아주 즐겁습니다. 예를 들어 개그 콘서트에 개그맨이 나와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비장하게 호통을 친다고 합시다. “너희들은 왜 웃지를 않느냐! 이것이 얼마나 웃긴지 왜 깨닫지 못하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관객은 이 상황이 참으로 난감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이 호통 개그도 잘 만들어진 개그라구요. 이 단성소 논리는 그래서 아주 읽기가 웃기고 재미있습니다.

    단 성소는 국민에게 올려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민주사회의 왕이기 때문이랍니다. 우리가 왕이니까 우리는 직언을 들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일개 부처의 공무원 조직을 좌지우지한 장관을 지냈고 또한 현재 일인으로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금뺏지를 소유한 유시민이 다시 갑남을녀들에게 직언을 올리고 있는 것이죠. 나라를 똑바로 다스리라구요. 재미있지 않나요? 나는 실실 웃음이 나는데요.

    이 비유가 성립하는 지점을 찾아봅시다.
    우선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왕과 왕족들이듯이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국민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유시민은 헌법 1조1항을 들고 나옵니다. 헌법에 적혀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죠.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런데 헌법에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지, 국민이 행사한다고 되어 있지 않네요. 실제로 우리는 공권력을 행사한 적이 완전히 없습니다. 파병을 결정하면 파병당하고 개방을 결정하면 개방당하고 국민연금법 만들면 연금 내고 로스쿨 만들면 고시공부 접는 게 우리 국민들 입니다. 우리는 주권의 근원일지는 몰라도 주권의 행사자는 아닙니다.

    이 즈음에서 북한의 헌법 4조를 적어보겠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그 렇습니다. 헌법 상으로는 북한의 주권 또한 근로인민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다만 그것을 결정하고 행사하는 주체가 따로 있을 뿐이죠. 그러니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을 비난할 때 북한 근로대중들을 향해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지요. 우리는 주권의 행사자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위임자지요.

    단성소를 쓴 조식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성소는 왕에 대한 직언과 함께 왕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문정왕후와 그 외척을 비난하는 글입니다. 조식은 권력의 근원과 권력의 행사자를 이해하고 이들을 나누어 합당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유시민은 놀랍게도 지난 5년간 공권력을 집행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그 위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위임자에게 책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시 유시민같은 장관과 노무현 같은 대통령에게 주권을 위임한 것이 우리의 과오인가요?

    사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가진 권리란 주권을 위임할 상대를 고르는 권리가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임 권리의 행사에 한해서 책임을 가지는 것이 합당하죠.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대통령의 권력을 위임했었구요. 조식이라면 권력을 위임한 주권자와 권력을 행사한 권력자에게 각가가 합당한 비판을 했겠지요. 하지만 유시민의 단성소는 심하게 비틀어져 있네요.

    우리의 권리의 행사범위를 분명히 한다면 유시민의 단성소의 의도도 분명해 집니다. 유시민은 왜 자신과 같은 친노세력에게 다시 권리를 위임하지 않느냐며 단성소를 올리고 있는 것이죠. 잔뜩 추켜주었지만 결국 뽑아달라는 건데요. 3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피선거권의 행사를 목숨을 건 권력자를 향한 상소에 비유하는 이 뚱단지 논리는 유시민 특유의 느와르 주인공 취향이 아니고서여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왕과 외척에게 목숨을 걸고 상소하는 것과 선거철에 국민들에게 대통령 후보로서 책하나 펴내는 것이 왜 비슷하다는 것일까요?

    그 는 자신이 참된 신하의 도리를 지킨다고까지 합니다만, 우리는 위임 권력의 대상을 선정할 뿐 그 대상 밖의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위임 권력의 대상인 대통령과 내각에게 필요에 충분한 자금과 권리, 그리고 봉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우리의 세금으로요. 국민인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유시민은 목숨걸고 16세기에 살고 있나 봅니다.

    장 담컨데 지난 4년간 우리 국민은 정부의 통치행위에 방해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이 주권의 근원자를 무색하게 했지요. 대단히 비민주적이고 반참여적인 정부는 대연정을 제안해서 집권 여당과 지지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개헌 정국을 주도해서 국회의 권리를 넘보고, 선거에 개입하여 국민 주권의 영역을 넘보고, 통상 협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여 국민 경제 주권을 임의대로 처리했습니다. 뭐 하고 싶은 거 다했죠. 그들은 수시로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검찰이 반대하고 언론이 말을 안 듣는다고 징징댔지만, 국민들의 반대 때문에 정책이 좌절한다고 징징댄 적은 없습니다. 국민들이 무식하고 멍청해서 자신들의 뜻을 못 알아준다고는 했죠. 노무현 정권에게 있어서 주권의 소유자인 국민들이란 구경꾼에 불과했죠. 이 부분이 민주주의의 마비라고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는 정권이라고 최장집이 실컷 비판했었지요.

    이제 선거철이 오자, 별안간 실컷 요리당하던 구경꾼들은 직언과 상소를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네요. 이거 참 난감합니다. 그럼 그 내용을 들여다볼까요? 싫군요. 돈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죠.

    여 기서 또 하나의 실존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왜 주권자인 우리가 상소문을 돈 주고 사야하는 겁니까? 유시민 지지 사이트에 가면 이런 문구가 있네요. “최단기간 베스트셀러를 향하여” 유시민 본인도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선거철에 쓰인 책을 돈주고 사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에 왕을 상대로 상소문을 돈 주고 파는 신하가 어디있답니까? 그것이야말로 죽을 죄지요.

    중 간정리를 합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유시민은 주권자를 두번 농락했습니다. 우선 권력 행사자가 져야할 책임을 배제하고 고스란히 주권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서 사태를 왜곡했다는 것이 그 하나죠. 주권자의 동의를 구하고 그들을 설득할 책임도 권력 행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나가는 대통령을 이해 못하는 죄까지 뒤집어 써버린 셈입니다. 둘째로는 주권자에게 마땅히 알려야 할 신하된 도리를 행한다면서 실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죠. 그가 그나마 양심에 털이 덜 났다면 문제의 책의 전문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이것이 정녕 주권자인 국민들이 반드시 알리고픈 단성소라면 당연히 웹사이트에 공짜로 올려서 읽도록 해야 겠지요. 그것이 바른 신하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건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요. 공짜로 뿌리면 사전 선거운동에 걸리는 것이니까요. 공직이라는 것이 그만큼 이문이 남으니까 금지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러니 국민에게 상소를 올리려거든 선거와 무관하게 순수한 읍소자의 입장에서 서야겠지요. 그러나 그의 의도는 또 한번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비장하게 실패라도 해서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니 상소문으로 잇속을 챙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조식은 자신에게 주는 관직을 거절하고 목숨을 걸고 상소를 ㅆㅓㅅ지요. 그런데 유시민은 자신에게 다시 권력을 달라면서 돈받고 상소문을 팝니다. 이게 뭐가 비슷합니까? 제 눈에는 정반대로 보이는 데요.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세번째 농락이 나오겠지요. 물론 전 내용을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목이 개조론이니까요. 진화론이랬나 뭐 어쨋건 간에.

    국 민은 권리를 위임함에 있어서 정책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나라가 여기로 가야하는 지 저기로 가야하는 지 아주 골치아프게 판단을 내리지 않지요. 왜냐구요? 아주 당연하고 현명한 일인데, 실제로 그것을 안다고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권리를 위임하고 그 결과만을 살피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지난 4년의 결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죠. 우선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것과 되는 거 하나도 없이 무척 시끄러웠다는 면에서요.

    그런데 그는 우리를 설득합니다. 이것이 옳지 않으냐라구요. 주권자로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시시비비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바른 진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전문적인 영역이죠.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도 최소한 잘먹고 잘 살수 있는, 경쟁력 있는 자가 없는 자의 시체를 ㅂㅏㅀ고 가지 않는, 금모으기해서 몰아준 만큼 구조조정에서 다친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사회가 도와주는 평화롭고 따듯한 세상을 만들어 줄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어떠한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의 논증과 시나리오는 부차적인 것이예요. 그러한 전문적인 부분은 일차적으로 위임자들의 역량과 판단의 몫이죠. 그리고 결과에 비추어 심판하는 것이 주권자인 우리의 몫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참여 정부는 어려운 정책판단은 주권자에게 맡기고 가장 쉬운 권력 행사는 자신이 전부 하더군요. 참으로 개념을 물말아먹은 정부였지요.

    유시민은 권력의 행사자로서 평가받아야 결과 성적표를 시시비비의 문제로 전환시켜 버리고 있죠. 차라리 노무현처럼 주식이 올랐으니 너네는 살기 좋다는 식의 결과적 발언이 훨씬 핵심적이지요. 유시민의 책의 내용이 우리나라 장기 비젼으로서 설령 옳다고 한들 그에게 권력을 다시 위임할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그가 그것을 이룰 정치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그는 국민의 선택을 구걸할 자격이 없지요. 이 부분을 또한 의도적인 왜곡으로 보입니다. 선거라는 민주적 권력 위임의 장을 자신의 장기인 논리 말싸움 경연장으로 바꾸어 버리는 거지요.

    유시민은 언론 비판과 지식인 비판을 잊지 않는데요, 역시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국민의 낮은 지지도는 노무현 정권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거침없이 자기 무덤을 팠으니까요. 노무현식 소신 정치에서 국민 주권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는 계몽당해야 하는 걸까요?

    유시민의 숨은 의도는 여기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데요. 그는 국민이 현실 권력의 피해자이자 구경꾼을 넘어 열렬한 지지자로서 존재하길 원하는 것이죠. 놀라운 일입니다. 왜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걸까요? 왜 주권자인 내가 신하의 책을 내돈 털어 사서 읽고, 실패한 신하의 실패한 비젼을 분석하고 공감하고 칭찬하며, 실패한 정치인에게 재차 나의 주권를 위임하고, 그를 응원하기까지 해야하는 겁니까? 유시민씨, 주권자인 내가 호구로 보입니까? 호구로 보이는 사람 앞에서 음흉한 자들은 사기를 치게 마련이죠. 이미 저는 유시민이 주권자에게 행한 세가지 농락을 지적했구요.

    단성소 비유는 참으로 논리적이고 명문입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적으로 파탄시켰는지, 민주사회를 파시즘사회로 만들고자 시도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죠. 더구나 자기 중심적 인격 파탄이 얼마나 논리와 비유를 왜곡시키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구요. 부디 이 최종본 그내로 출판되어 후세의 심리분석과 역사 사료로 널리 이용되기를 바랍니다. 일찌기 유래없었던 가장 비굴하고 염치없는 상소문으로 오래도록 칭송될 것 같아요.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