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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20주년: 여전한 착각
TV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6.10 항쟁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20대의 청년들은 한결 같이 잘 모른다고 한다.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방송 진행자는 안타까워한다. 뭔가 꼭 기억해야할 것들이 잊혀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TV는 흑백화면처럼 아련한 80년대 시위 현장을 보여준다. 전두환씨의 호헌 선언 장면도 나온다.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절대 다수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6.10항쟁 20주년’이 아니라 ‘취업’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성경 말씀을 좀 차분하게 생각해본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도 없다. 사람은 밥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떡으로만’이라는 뉘앙스에서 느낄 수 있듯, 주된 생존의 기반은 ‘떡’ 즉,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도 먹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은 분명 ‘밥’도 먹어야한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제 40~50대가 된 그들)은 그 당연한 사실에 어두웠다. 마치 민주주의만 하면 언 땅이 녹고 새 세상이 올 것처럼 믿고 최루탄 연기 속에서 ‘투쟁’을 했다. 왜냐하면 80년대는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먹고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떡’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요즘 대학생들이 직면한 실업난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 그저 자기들은 사회에 대해 고민했고 요즘 학생들은 아무 생각없는 철 없는 세대인양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 같다.
이분법적 시대구분은 더 확실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 vs <민주주의의 밝은 시대>.
이런 시대구분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관념적이다.
반면,
<대학 때 수업 거의 안듣고 데모만 해도 졸업할 수 있고 심지어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데에 거의 지장이 없었던 80년대>
vs
<대학 때 수업 다 듣고 각종 자격증에 봉사활동 인턴쉽 영어시험 별별 짓을 다 해도 취업이 어려운 요즘>
..같은 ‘생활’에 근거한 시대구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솔직히 요즘 대학생들이 80년대 대학생들처럼 공부 안해도 되었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안다면 정말 분노하지 않을까?
6.10 항쟁의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고귀했고, 분명히 중요한 가치를 추구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생의 현실’과 무관한 절대적 가치인양 착각했었고 여전히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꼭 지적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거리의 투사들만이 이룬 업적이 아니라, 경제 현장에서 땀 흘린 사람들의 공헌도 컸고, 심지어 민주 투사들이 그렇게 미워했던 반민주의 상징 군인들의 공헌도 있었다(정치 군인 말고 나라를 지킨 군인들).
이제는 20년전 투쟁의 추억에서 벗어나 차분히 뒤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과연 1987년 ‘항쟁’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군인’을 몰아내고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뽑은 결과, 주인인 국민에게 ‘군사독재시대’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
아니면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시대를 만들어놓고도 하늘 저 높이 보이지도 않는 가치를 찾았다며 아직도 취해있는가?
소수의 친위대 정치로 21세기형 세련된 독재정치를 하면서도 단지 군사독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퍽이나 민주적인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