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능력 평균만 됐어도 국민 실망 안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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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범국민 대행진’ 행사가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화꽃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청 앞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숭례문을 지나 명동성당 앞까지 6월항쟁 당시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사진=박종근 기자]

    ■보수 진영 학자들”6월 항쟁 진정 계승하려면 남 탓하는 문화부터 바꿔야”

    보수 진영 학자들은 이번 기념사에서 대선을 앞둔 집권세력의 위기의식을 짚어 냈다. 제성호(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사를 “대선을 앞두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사회를 양극화해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이 사회를 민주.반민주 식의 선악으로 가르고 자신은 절대 선을 차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교수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민의 가장 큰 열망인 시점에 이들을 만족시킬 카드가 없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과거 얘기를 꺼내기로 방향을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6월항쟁의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두 기념사 모두 6월항쟁을 순수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다”며 “사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항쟁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 정부’이래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신 대표는 “6월의 의미를 되살리기보다 자신의 업적을 치하하는 데 집중한 기념사”라며 “6월항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면 남 탓하는 문화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현(서울대 철학과) 교수도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6월항쟁을 국민적 통합의 계기로 삼으려는 지도자로서의 태도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민주화 세력 무능론은 중상모략’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무능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집권 초기 국민이 힘을 실어줬는데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격할 대상만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정권의 국정 운영 능력이 평균만 됐어도 새로운 시대를 열망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이 속한 조직조차도 산산조각 내는 사람이 반대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의 ABC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수구언론의 반대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 제성호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 언론이 정권에 박수를 치느냐”며 “2등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조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민주주의.민주화의 개념 또한 왜곡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세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 대통령은 각 분야의 권위를 계속 깨서 밑으로 이동시키는 것만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평하며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법률.헌법을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으면서 민주화를 자신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대통령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민주화에 기여한 요소는 중산층의 성장, 당시 집권 세력의 수긍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노 대통령이 혼자 민주화를 다 한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자기 세력을 결집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영(건국대 인문학부) 교수 또한 “민주화를 제멋대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며 “6월항쟁 기념사에서 대통령 단임제, 선거법 개정 등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김호정 기자

    ■진보 진영 학자들비판세력 반발 감안하며 개혁하는 게 지도자 능력”

    진보 진영 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0항쟁 20주년 관련 발언에 대해 한편으론 신중하면서또 다른 한편으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민주화세력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는 경향도 보였다.

    안병욱(가톨릭대 국사학) 교수는 “민주세력 전체를 무능하다고 해선 안 된다”면서 “노무현 정부의 경우 경제적인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뿐 외환위기 후 파탄 지경이었던 것을 지난 2년간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고 평가해 민주세력 전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안 교수는 “민주화 세력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이만큼 발전시킨 것은 세계사적 업적”이라고까지 말했다.

    정현백(성균관대 서양사학)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무능할 수도 있지만, 이 정부와 민주화 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런 일반화는 우리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상환(경상대 경제학) 교수는 “무능론은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집권 후 개혁과 분배 구상을 실현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면에서 능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이다.

    ‘잃어버린 10년’ 발언에 대해 홍성태(상지대 사회학) 교수는 “기득권 세력에만 그렇고 민주세력에는 재벌독재의 유산으로 터진 외환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10년'”으로 평가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경제적인 문제는 별개”라며 “광복 이후 60년 동안 이룩하지 못했던 정치적 변화를 지난 10년간 겪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상환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권위주의를 없앴지만 사회 양극화와 부동산 투기를 촉발했고 지역주의를 부추겼다”며 “그런 면에서 잃어버린 10년이 맞다”고 상이한 주장을 펼쳤다.

    개혁 실패에 대해선 많은 학자가 “기득권은 언제나 개혁에 비판적”이라며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집권자가 그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병욱 교수는 “기득권 세력과 언론은 늘 비판적”이라며 “이런 상수를 감안하고 개혁해 나가는 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라며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이유를 대는 것은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은 “국민이 소수당을 압도적 다수당으로까지 만들어 줬는데도 (개혁을 못 해 놓고서)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반성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정현백 교수는 “(기득권과 언론 외에도) 6월항쟁 후 얻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법치주의나 절차적 민주주의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자들은 대통령 단임제, 선거법상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등에 관해 “(할 수 있는 얘기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고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안병욱 교수는 “그런 생각이 있으면 진작 했어야 한다”며 “법률가인 대통령이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이제 와 그 얘길 하는 것은 생색만 내고 하지 않겠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