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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나는 개나리꽃이 한닷새 마을의 봄을 앞당기는
산란초 뿌리 풀리는 조그만 시골에서
시나 쓰는 가난한 서생이 되어 살려고 생각했다.
고급 장교가 되어 있는 국민학교 동창과
개인회사 중역이 되어있는 어릴적 친구들이 모두 마을을 떠날 때
나는 혼자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와 탱자나무 울타리를 손질하는
초부(樵夫)가 되어 살려고 생각했다.
눈 속에서 지난해 지워진 쓴냉이 잎새가 새로 돋고
물레방앗간 뒤쪽에 비비새가 와서 울면
간호원을 하러 독일로 떠난 여자친구의 항공엽서나 기다리며
느린 하학종(下學鍾)을 울리는 낙엽송 교정에서
잠처럼 조용한 풍경소리를 듣는 이급(二級) 정교사가 되어 살려고 생각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고
놀 속에 묻히는 봄보리들의 침묵이 나를 무섭게 위협했을 때
관습의 신발 속에 맨발을 꽂으며 나는
눈에 익은 수많은 돌멩이들의 정분(情分)을 거역하기 시작했다.
염소들 불러모으는 비음(鼻音)의 말들과
부피가 작은 몇권의 국정교과서를 거역했다.
뒷산에 홀로 누운 조부(祖父)의 산소를 한번만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뛰는 버스에 올라 도시 속의 먼지가 되었다.
봄이 오면 아직도 그 골의 물소리와 아이들의 자치기 소리가
도시의 옆구리에 잠든 나의 꿈 속에
배달되지 않는 엽신(葉信)으로 녹아 문지방을 울리며 흐르고 있다.– 이기철 ‘이향 (離鄕)’
해마다 봄이오면 생각나는, 제가 제일 좋아하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시인의 시입니다.
미국에 와서 조그만 있으면 한국에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미국에 있은지 5년이 넘었군요…
과열된 분위기 이 시 감상하시고, 조그만 식히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