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본 FTA (1)

  • #99221
    카트만 68.***.87.69 2297

    내가 쓴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번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내실있는 것이었다면,
    앞서 말했던 글을 쓰신 분과 달리 신자유주의자이자 미국식 자본주의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반대할 이유가 전혀없다(근데..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게 뭔지나 제대로들 알고 이런 말을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만..).

    많은 FTA 찬성론자들이 황당하게 하는 얘기가운데 하나가,
    FTA 를 찬성하는 건 ‘약간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나라의 경제적 재도약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심지어 ‘창조적 파괴’라는 괴상한 소리도 나왔다),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세계의 경제흐름에 역행하는 민족주의적인 태도거나 반시장적인 태도’라는 식의 무식한 이분법이다.

    물론 일부 FTA 반대론 가운데에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려고 하느냐’ 뭐 이런 식으로 반미정서에만 기초한 주장으로만 가득찬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FTA에 대해 반대하는 건, 기본적으로 이번 FTA가 경제논리로 봐서 거의 건질 게 없는 엉터리 협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 흔히 생각하듯 노무현이 ‘정치적 이득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경제적 논리로 접근’ 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임기중에 치적만들겠다는 일념하에 (이거 아니면 그렇게 협정체결을 서두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돌지 않은 담에야) ‘경제적 논리에서 치밀한 검토를 하지 않고 정치적 성과를 위해 밀어붙인’ 졸속협상이 바로 이번 FTA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건 양극화 현상때문에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지 ‘국가경제’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도 아니고, 주요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해외에서 본 우리 경제의 전망이 지극히 비관적이다”라고 말하는 건 정확한 데이터없이 그저 (한국) 신문에 나온 얘기들로만 세상을 보는 태도일 것이다.

    “일본과 중국사이에서 샌드위치다”, “중국에게 곧 우리나라가 따라잡힐 터이니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100% 거짓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과장된 측면이 많다.
    왜냐구? 중 국이 본격적으로 개방을 시작한 십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과 중국사이에 샌드위치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중국이 우리나라 추격하기 시작한 건 이젠 이미 구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FTA가 이런 우리나라 상황에 돌파구를 만들어줄 거라고 기만하는 건 이제 그만 떠들었으면 좋겠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10여 년 동안 FTA없이 –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FTA의 목표와 상치되는, 어 느 정도 국내산업을 보호육성하는 정책덕분에 우리가 지금 IT 강국이네, 첨단산업의 메인 플레이어이네 하면서 세계 경제 11위권의 위치를 누리는 거지, 미국이 요구하는 시장개방을 100%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우리 IT가 미국기업들에게 개방해서 경쟁에 의한 성장을 했나?

    앞 에서 언급한 글에서, 포브스 500대 기업에 올라온 기업 순위와 규모를 가지고 중국이 금방 한국을 추월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웃기고 (아무리 FTA가 아니라 별의별 걸 가지고 발악을 해도 중국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월등히 큰 이상 한국은 중국에게 추월당할 수 밖에 없다), 비즈니스하는 사람이 우리나라가 ‘시장이 작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웃긴다 (하긴, 이건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이긴 하다).

    이 블로거는 또 주장한다

    “시장이 작은 나라가 자본주의 하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외부로 시장을 확대하던지, 아주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해서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힘든 기술적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높은 GDP를 유지해왔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언제까지 내수 산업을 보호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삼성이 최근 위기론을 펴고 있고 분기 순이익이 곤두박질 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삼성이 기우는데 다른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일 단 백번 양보해서 한국이 시장이 작은 나라라고 하자 (뭐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문제니까). 자국시장규모가 작은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경제성장 전략이 외부로의 시장확대거나 기술적 우위 확보에만 국한된다는 주장도 일단 받아들여보자.
    하지만 시장확대 전략이 FTA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건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얘기다. FTA로 시장확대가 확실하게 된다면, ‘유럽의 작은 나라’들(아마도 네덜란드나 핀란드쯤을 생각하고 한 얘기일텐데)이 왜 미국하고 FTA를 하지 않느냐 말이다. 걔네들은 미국하고의 시장연동이, 엄밀한 사전준비없이는 바보짓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FTA가 시장확대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멍청한 짓임은, 산업별로 미칠 효과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산업별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삼성이 위기론을 편다”며 그게 무슨 큰일날 일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황당하다.
    이 건희는 몇 년의 한번씩 삼성임직원 군기잡듯 그 말을 해왔다. 이번 그의 발언이 이재용에 대한 재산상속에 관한 논란을 물타기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고 정말 좋게 해석하더라도, 삼성 위기론을 떠드는 사람치고 진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뭔지 고민하는 거 별로 못봤다.

    그리고 순이익이 곤두박질친 게 삼성이 당장 망할 조짐인 듯 얘기하는 것도 우습다.
    삼성 순이익 곤두박질의 근인은 주수익원 가운데 하나인 플래쉬 메모리의 지나친 저가정책 – 특히 애플과의 – 때문이기도 하고, 삼성말고도 순이익 곤두박질친 세계적 대기업이 많은데 (예컨대 모토롤라), 그것때문에 FTA 해야한다고 말하는 미국사람 없다.

    삼성의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건 알지만, 사실 그게 우리 경제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작 해야할 일은 FTA가 아니라 경제구조 개선이다 (이 부분에서 안철수의 매우 훌륭한 언급이 있다. 진짜 우리 경제 성장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진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텐데, 쩝..).

    이 번 FTA가 잘못되었다는 건, 그래서 체결해서는 안되는 멍청한 짓이었다고 주장하는 건… 내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장’을 외국기업에게 내주어서는 안된다는 국수주의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번 FTA가 우리가 얻을 게 거의 없는 껍데기에 가까운 졸속이라는 점 때문이다. 많은 FTA 찬성론자들은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며 꼭 FTA가 기회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진짜 FTA 협상이 잘 되어서 우리 경제에 어느 정도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면, 나부터도 찬성하지 반대 안한다 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어떤 협상도 완전히 내 주장만을 관철시킬 수 없다”며 이번 협상이 최선이었음을 강조하는 소극적 찬성론(?)자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협상의 기본을 노무현과 그 수하들이 제대로 관철했다면, 이번 FTA는 체결되지 않았어야 했다고. 세상에 시한 정해놓고, 시한 안에 ‘체결되어야 함’을 전제로 해놓고, ‘최선의 결과를 얻는’ 협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FTA는 미국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이라는 게, 글로벌 마켓의 현장에서 밥벌어먹고 사는 나와 내 동료들의 거의 일치된 시각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사실 이익이긴 하다, 한국에서 돈 벌어올 일이 더 많아진 셈이니까)
    그것이 바로 미국 언론에서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산업별 단체에서 일부 반대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업체(또는 업종)이 받아낼 걸 더 못 받아냈다는 측면의 반대이지, 자신의 시장이 위협받아서 생기는 반대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봐라)

    다 시 한 번 간략히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쟁없이 지낼 수 없고, 개방없이 지낼 수 없다. 그건 상식이다. 문제는 이번 FTA가 세계경제 흐름을 타는 대결단인 것처럼 포장된, 사실은 경제적으로 손실이 훨씬 더 큰 부실한 협정이라는 점이다.
    FTA 찬성론을 내가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얘기했던 건, 바로 장사꾼인 나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경제적으로 절대 우리나라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협정을 졸속으로 체결한 걸 보고 ‘구국의 결단’인 것처럼 비장하게 ‘이젠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고 헛소리하는 게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노무현의 이런 헛짓거리를 칭송하기 바쁘다.

    이번 FTA 결과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별로 안되는, 말 그대로 엉터리 결말이다.
    FTA가 필요한지조차도 불분병한 상황에서, 판단력도 흐려지고 옹고집만 피우는 노무현 정권에서 헛짓거리 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내용을 채워서 하더라도 진짜로 적절한 시점에 해라.
    그나마 IMF 이후 나름대로 방향을 잘 잡아 온 우리 경제의 기둥뿌리 뽑는 우매한 짓은 하지 않았음 좋겠다.
    미국에서 먹고 사는 나야 상관없다지만, 한국에 있는 내 친지들, 친구들, 지인들이 고생하는 건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 빠다왕자 69.***.138.67

      별다른 내용없이 그냥 비판하시고 싶으시거나 아니면 막연하게 좋다고 칭송(?) 하는걸 경계하시고 싶으신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