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조선로동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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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수사결과

    (發表文)
    1992. 10
    國家安全企劃部

    Ⅰ. 事件의 槪要

    〈事件의 性格〉

    □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이 1995년에 적화통일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대남공작기구를 총동원하여 남한내에 북한공작 현지지도부를 구축하고 남로당 이후 최대규모의 「조선노동당」을 결성한 사실을 규명하였습니다.

    □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북한 권력서열 제22위이며 당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이 최근 10년간 서울에 잠복, 장관급 거물간첩 「임」모 등 북한 직파간첩 10여명을 지휘하여 남한내에 「북한 공작지도부」를 구축하고
    -과거 남로당과 같은 성격의 남한내 「조선노동당」과 그 산하에 그들이 남한에 실존한 것으로 선전해 왔던 「한국민족 민주전선」(이하 「한민전」)을 위장한 「애국동맹」을 결성하였으며
    -「민중당」을 제도권내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정치적 「별동대」로 만들어 대통령 선거때 반민자당 연합전선을 형성, 야당이 집권하면 정치적 지분으로 미군철수, 국보법 철폐, 안기부해체 등을 요구, 적화통일 장애요인을 제거하여 정치적 혼란을 조성한 다음
    -93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들이 각계각층에 침투시킨 합법·비합법 조직을 총동원하여 연공정부를 수립, 1995년에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이룩한다는 전략하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며 대담한 대남적화 공작을 수행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 이번에 적발된 김낙중, 황인오, 손병선 등 3개 남한 조선노동당 간첩망의 조직원이 400여명이고, 그 밖에 현재 실체가 드러나고 있거나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인·영남·호남지역당과 정치권 및 재야, 기업의 생산현장, 학생운동권, 언론, 출판, 종교계 등 각계각층에 구축된 간첩망을 포함하면 가담자가 엄청날 것으로 보여 이 사건은 국기(國基)를 흔드는 공산혁명 지하당 공작임이 판명되었습니다.

    □ 이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는 3개 무전간첩망으로부터 무성권총 3정, 실탄 88발, 무전기 5대, 독약앰플 6개, 난수표 6조 등 공작장비 총 121종 1,554점을 압수하고
    -조직에 가담한 400여명 중 95명을 검거하여 그중 62명을 간첩 또는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달아난 300여명을 계속 추적하는 한편
    -현재 수사중인 정치·노동·학원·재야 등 각분야 침투 간첩망과 조선노동당 지역 조직에 대해서 수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선실의 正體와 行蹟〉

    □ 이선실은 현재 북한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한민전」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중인 자로서
    -북한의 권력서열 23위인 사회단체 담당 비서 김중린, 24위인 대남사업 담당비서 윤기복, 32위인 부총리 김달현보다 더 상위인 권력서열 22위의 최고위급 공작원임이 면밀한 수사 끝에 확인되었습니다.

    □ 이선실은 1966년, 1973년 등 2회에 걸쳐 간첩으로 남파, 활동한 사실이 있으며 1980년 초에 조총련 모국방문을 위장하여 잠입,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합법신분을 얻어 1990년 10월 강화도를 통해 복귀시까지 10여년간 서울을 비롯한 전국 일원과 북한 및 일본을 왕래하면서
    -북한 직파간첩 「임」모, 「최」모, 「이」모 등 10여명과 국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지역별, 부문별 공작원을 거느린 공작지도부를 구축, 대남공작을 총 지휘해 왔음이 드러났습니다.

    □ 또한 이선실은, 『이선화』 『신순녀』라는 가명을 번갈아 사용하며 자신을 『독립운동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 통혁당 사건 관련자』 등으로 소개하면서
    -1990년 초부터 진보정당인 「민중당」 창당에 깊숙이 개입, 「민중당」 창당 발기준비 대회시 단상에 올라가 민중당기를 당대표 이우재에게 전달하였으며, 「민중당」 당보에 『민중시대를 맞는다』 제하의 창당축사를 기고하고 「민중당」 창당자금과 사무용품 등을 제공하였고
    -구속자 가족 모임인 「민가협」을 수시 출입, 장기표의 처 조무하, 황인오의 모 전재순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민가협」과 「민중당」 등을 활동기반으로 삼아 암약해 왔으며
    -또한 1987년경부터 문익환에게 접근, 친교를 나누다가 문익환이 밀입북 하기 전인 1989년 1월경 상당액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문익환의 밀입북 배후혐의가 있어 이점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黃仁五의 勞動黨 中部地域黨 結成 過程〉

    □ 이선실은 소위 혁명의 기본계급인 노동자 출신으로 3형제 모두가 좌익전과자 일뿐 아니라
    -북한이 최초의 남한내 민중무장 폭동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1980년 4월 사북탄광 소요사태의 주동자인 황인오를 포섭한 뒤
    01990년 10월17일 직접 황인오를 대동 입북, 평양교회 초대소에 수용, 간첩교육을 시킨 후 북한 노동당에 입당시킨 다음 그를 책임비서로 임명,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하라는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 황인오는 1990년 10월23일 국내 복귀 즉시
    -서울대 주사파 지하조직인 『구국학생연맹』 핵심으로 활동한 바 있는 동생 황인욱을 포섭, 북한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켜 『대둔산 21호』라는 당원부호를 받게 한 뒤 북한의 『A-3』 난수지령 방송수신 및 해독,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규약·맹세문 초안 등의 임무를 부여하는 한편

    □ 전 「민중당」 성남을 지구당 노동위원장 최호경(35세)이
    -1995년 적화통일 실현에 대비, 학원·노동 운동권 등 각 분야·주사파 핵심 241명을 규합, 「1995년 위원회」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한 사실을 알고 접근, 포섭하여 노동당에 입당시킨 후 「대둔산 13호」라는 노동당원 부호를 부여하였고
    -최호경을 통해 「1995년 위원회」를 중부지역당 조직 산하에 흡수시키고 1986년 건국대 「애학투련」사건 주동자였던 은재형, 은행원 정경수 등 김일성주의 추종자 12명을 포섭, 개별적 입당식을 거행한 뒤 1991년 7월말 이들과 함께 강원도 삼척소재 호산 해수욕장 부근 여관에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결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입당식에서 노동당기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걸어 놓고 『수령님께 바치는 충성의 노래』를 제창하고 『영광스런 수령님 앞에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투쟁해 나갈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내용의 충성 맹세문을 낭독케 한 후 당원후보를 부여하였습니다.

    □ 황인오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자신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책임비서로 하고 최호경, 은재형, 정경수를 당 중앙위원으로 임명한 후 그 산하에 「강원도당위원회」, 「충남도당위원회」, 「대중선전선동부」와 각 시·군 지역책 및 분야별 조직책을 두고
    -최호경은 당 검열책 겸 강원도당 지도책으로, 은재형은 당 선전책 겸 충북도당 지도책으로, 정경수는 당 조직책 겸 충남도당 지도책으로, 황인욱은 당 중앙위 편집국장으로 각자의 직책과 역할을 분담한 다음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 표시로 각자가 광목천에 혈서로 『반미구국·조국통일 대를 이어 충성하자』라고 쓴 후 이를 「중부지역당」 결성사실과 함께 북한에 보고하였습니다.

    〈韓民戰 組織인 愛國同盟 結成過程〉

    □ 한편 황인오는 북한으로부터 『「1995년 위원회」 조직을 정간화·간결화·비밀화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5년 위원회」를 「애국동맹」으로 재편한 뒤 동 조직을 북한이 그동안 남한내에서 「구국의 소리」 방송을 하는 자생조직이라고 허위 선전해온 「한민전」의 실체화를 꾀해 왔으며

    □ 또한 「애국동맹」 산하의 전위투쟁 조직으로 「5·1 노동동맹」, 「8·28 학생동맹」, 「11·11 농민동맹」 등을 결성하여
    -구로공단 등 공장 밀집지역에 중점을 두고 침투시켜, 현재 현대자동차·해태제과·대우자동차·대우중공업·선경·럭키개발·동양시멘트·삼익악기·신화섬유·씨그네틱스 등 17개 기업 생산 현장에 그들의 세포조직을 결성, 노사분규 조장 등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월간지 『말』지 등 언론 및 대학, 농민, 문화, 예술, 재야 등 각분야에도 침투망을 급속히 확대해 갔으며
    -그 외에도 북한에서 공산 항일무장투쟁 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자들의 이름을 딴 『김창준 돌격소조』 『박경학 돌격소조』 『최인걸 돌격소조』 『오중화 돌격소조』 등을 두어 공장·광산 등이 밀집해 있거나 학생·농민운동이 활발한 구로·성남·인천·춘천·태백·원주 등지에 침투시켜 1995년 적화통일 실현을 위한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여 혁명의 선봉대로 양성중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北韓의 指令 및 對北報告〉

    □ 간첩 황인오는 동생 황인욱과 함께 북한으로부터 총 41회에 걸쳐 북한 『A-3 방송』을 수신하고, 무전기 및 은서를 통해 26회에 걸쳐 대북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는 바
    -북한의 주요 지령 내용은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교양을 요해하여 핵무기·미군철수·국보법 철폐를 제기하고 민주세력 탄압중지, 공안통치 종식투쟁과 반전반핵 운동을 부각시켜 통일운동과 밀착시켜 나갈 것
    ·북남합의서 관철되면 대남방송 지시가 중단될 수 있으므로 북남 래왕이 가능한 모 일간신문사 기자를 쟁취하여 합법 연락원으로 준비시킬 것
    ·이번 대선에서 「반민자당 련합전선」을 형성하여 민주당 후보를 적극 밀어줄 것이며 대선투쟁을 통해 통일 민주력량을 확대 강화해야 함.
    ·합법단체와 언론계를 내세워 통일 민주세력 탄압에 대해 폭로, 선전할 것 등입니다.

    □ 황인오는 또 19회의 대북 무전보고와 함께 남한내 북한 공작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1991년 2월~1992년 6월 사이에 7회에 걸쳐 조직원 마윤종, 허난정, 김현찬 등 3명을 도일시켜 은서로 작성한 보고문건 등을 재일 북한공작 거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케 하고, 지령과 공작금을 수령하는 등 남한-북한-일본을 연결하는 3각 공작망을 활용하여 왔습니다.

    □ 특히 이들은 정계 및 군부 등에 침투한 조직원들을 통해 국방부 산하 특수부대인 속칭 777부대의 위치, 기능, 임무, 기무사령부의 『대간첩 수사요령 및 수사지침』 등 중대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민주당 김대중 공동대표 비서 겸 국방위 입법보조원인 이근희 등으로부터 1992년도 국방예산의 규모·세목별 예산 개요·전체 병력수·장비관리비·연구개발비·예비군 운영비·군용시설 이전계획 등이 수록되어 국군의 방어태세·전력·전술을 알 수 있게 하는 고도의 기밀인 『1992년도 국방예산 내용명세』를 수집·보고하였습니다.

    □ 또한 이들은 김일성부자 찬양활동과 「한민전」의 투쟁 노선을 각계에 전파, 소위 『김일성 전사』를 양성키 위해
    -북한의 「한민전」 방송·「평양방송」 등을 매일 청취, 김일성 주체사상 강좌와 투쟁지침을 당 정치 신문격인 『백두산』 『새날의 주인』 제하 유인물로 제작하여 전대협, 각 대학 총학생회 및 노동현장, 그리고 일반주민들에게도 은밀히 배포하였고
    -1991년 11월 『전대협 진군가』, 『전대협 찬가』, 『한민전 찬가』, 『범민련 진군가』, 『반미출정가』 등 현재 운동권에서 집회시마다 부르고 있는 이들 가요 작곡가인 「애국동맹」의 문화, 예술담당 세포책 윤정환에게 지시하여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라는 제목의 김일성 찬양가를 제작한 후 조직원 허난정을 도일시켜 일본 공작거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등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앞잡이 역할을 계속해 왔습니다.

    〈孫炳善 包攝, 「民衆黨」 地下指導部 構築 企圖〉

    □ 또한 이선실은 「민중당」을 『남한 제도정치권에 진출한 북한의 정치적 별동대』로 만들기 위해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과는 별도로
    -「4월 혁명연구소」 운영위원장겸 「반핵평화운동연합」 공동대표로 북한의 주의주장에 입각한 비핵군축 이념을 전파해온 전 「민중당」 조국평화 통일위원장이며 서초을 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손병선을 포섭한 후
    -북한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켜 「비봉 11호」라는 당원 부호를 부여하고
    -또 다른 남파간첩 김동식을 통해 무전기 사용방법, 난수조립 및 해독방법 등을 교육시킨 뒤 무성권총, 실탄, 무전기, 난수표 등 공작장비를 지급하고
    -『민중당 소장파 핵심당원 2~3명을 포섭, 민중당 내에 비밀 지하지도부를 조직하라』고 지령하였습니다.

    □ 특히 북한은 비밀약정한 「드보크」를 이용하여 손병선에게 내려보낸 『민중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방향에 대하여』 등 대 민중당 공작과 관련한 2건의 지령문건과 47회에 걸친 대남방송 통신 지령을 통해
    -『「민중당」 이념은 제도권 내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변혁운동 세력의 정치적 별동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반미 자주·계급적 민주·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민중주체 민주주의」로 할 것』
    -『강령 및 기본정책은 연방제 통일, 안기부 해체, 국보법 철폐, 미군철수, 핵무기 철거, 비동맹 외교 등으로 할 것』
    -『「국민련합」에 상설 지휘기구를 설치, 활용하여 모든 운동단체를 결집하며, 반민자당·민주련합 정권수립·연방제 통일구호를 제기할 것』
    -『대선시 민주당 후보를 밀어주며, 민주세력 독자후보론은 바람직하지 못함. 각종 악법 철폐, 양심수 석방, 비핵군축 등을 지지 카드로 리용해야 함』
    등을 지령하였습니다.

    □ 또한 북한은 동 문건과 대남 지령방송을 통해 「민중당」이 해체되어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할 경우에는
    -『민중당을 재야 정치단체인 「민중정치회의」로 전환하고 전국연합 및 민주당내 혁신세력과 연합하라』는 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방안까지 지령하였으며
    -손병선은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으로 미화 15만불, 한화 3,000만원을 수수하고 처 성순희, 딸 손민영을 포섭, 그들과 함께 북한 A-3방송을 수신하고 10회에 걸쳐 활동상황을 대북보고하였습니다.

    Ⅱ. 事件의 特徵과 敎訓

    □ 이번 사건의 주요특징과 교훈을 살펴보면
    -첫째:북한이 대남공작 사상 최고위급 공작원을 직접 남파시키고 거액의 공작금을 투입, 1995년 적화통일을 목표로 지하당 및 간첩조직을 확산시키는데 전력을 쏟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남한내의 재야운동권중 북한의 직접적인 지령·사주를 받고 있음이 밝혀짐으로써
    「남한내의 자생적 공산주의자」로 위장해온 이들이 실은 김일성 집단의 조종을 받는 국가 전복세력임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북한은 이번 대통령 선거를 대남적화 동조세력을 확산시키는 호기로 활용하고 있으며, 압수한 무성권총이 세 자루, 실탄이 88발에 이르는 점으로 미루어 그외 각계에 침투 암약 중인 간첩망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가 수십 정에 달할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들이 이 기간에 정국혼란을 노린 테러살상을 자행할 수단을 이미 확보해놓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북한의 거물급 남파간첩 10여명이 서울에 아지트를 확보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일원에 활보하는가 하면 「민중당」 「민가협」 등에 접근, 수많은 재야 인사들을 접촉하며 북한에서 밀파된 사실을 노출시키고 당원 포섭시 노동당원 임을 과시하며, 그 징표로 권총, 무전기를 보여주고 북한이 신임의 표시로 보낸 『담보방송』 지령을 확인하도록 하였는데도 이들을 신고하기는 커녕 민족해방 투사로 존경하며 쉽게 포섭되거나 신변을 보호해 주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오염이 우려할 수준에 달했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또한 금번 김낙중·황인오·손병선 사건 등에서 나타난 최근 북한의 공작전술상 특징은
    -김낙중·손병선 간첩사건은 북한이 우리 체제내에 「조선노동당」의 직접 조종하에 그들의 적화혁명 노선을 철저히 수행할 합법적인 전위정당 창당공작으로서 제도 정치권에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합법적인 연공 정치투쟁과 각 문제권과의 통일전선 형성공작을 위한 거점을 마련키 위한 고도의 정치공작인 반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황인오 간첩 사건은 북한의 가장 기본적이며 원칙적인 비합법 공작 전술하에 혁명의 기본계급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학원, 문화, 언론, 재야 등 각 분야의 좌익 전과자와 주체사상 신봉자들을 포섭하여 소위 남한혁명의 주력군과 동맹세력을 광범위하게 구축한 공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Ⅲ. 맺는말

    □ 북한 노동당은 이번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모든 정책과 자원의 최우선순위를 대남공작에 두고 있으며 대북 경계심이 해이해진 우리 사회에 김일성주의 추종세력의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 북한은 지금까지 이중적 대남전략을 구사하여 왔는바, 6·25남침, 1960년대 청와대 기습, 1970년대 대통령 저격사건과 1983년 버마 아웅산 사건 및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등 그동안 평화공세 후에는 반드시 대형도발 사건을 자행해 왔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남북고위급 회담이 진전되어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 시점에서도 북한은 대남공작기구를 총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대남적화공작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사회의 일각에 상당수의 김일성주의자들이 이러한 북한의 공작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회혼란을 계속 조장하고 있는 엄청난 현실에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번 사건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 모든 수사력을 가동하여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수사에 이어 실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인·영남·호남 지역당 조직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들 조직을 뿌리뽑을 것을 약속드리며
    -아울러 우리의 대공방어 태세를 재정비, 강화하여 국민 여러분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실 수 있도록 국가안전의 기틀을 다지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 그리고 북한에 포섭된 조직원 및 간첩과 도피중인 관련자들이 자수할 경우에는 법이 정한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 것임을 약속합니다.

    □ 끝으로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적극적인 대공 신고정신을 되살려 주심으로써 저희들이 책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대공 수사관들에게도 많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