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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중도 사퇴를 우려하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노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이 좌절될 경우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때, 혹은 국회 표결 직전에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알고 하야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도 제안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사임할지 모른다는 가능성 자체가 큰 무기다. 대통령은 그 카드를 버리지 않고 활용할 것이다”며 “설사 사임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은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대통령의 다음 카드는 중대선거구제가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도 통과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은 “개헌 관철 여부와 관계없이 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내년 2월까지 보장된 헌법상 임기를 단 1초도 단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중도 사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중도 사퇴할 경우의 정치일정에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가 예고한 대로 2월 안에 개헌안을 발의하면 늦어도 4월 말 이전에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회 부결 후 노 대통령이 ‘진짜’ 사퇴하는 사태가 오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므로 5, 6월경 대선을 치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에서 임기 단축 얘기가 나오는 것은 노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재신임, 임기 단축 얘기를 수차례 한 바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에는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등 비리 의혹 사건이 터지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며 국면 돌파를 시도했다. 2005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는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면 검토하겠다”,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할 수 있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개헌안 좌절 시 임기 단축’은 없다고 단언했다.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개헌안이 관철되지 않았을 경우의 프로그램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대통령이 자주 거론한 드골은…
국민투표로 위기 돌파, 개헌안 부결되자 사임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소추 때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이란 책을 읽은 뒤 저자인 외교통상부 이주흠(현 외교안보연구원장) 심의관을 ‘대통령리더십비서관’ 자리를 만들어 청와대로 불러들인 일이 있다.
노 대통령과 프랑스 샤를 드골(사진)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승부수를 던져 반전을 모색하고 의회보다는 국민과의 직접 의사소통을 선호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드골 대통령은 대통령제 직선 전환(1962년) 등 중요한 사안을 자신의 신임과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쳤고 정치적 승리를 거뒀으나 1969년 상원 개혁에 관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즉각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