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은 좌익 용어인가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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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은 좌익 용어인가 ?
    용어 선택은 문화전쟁(Culture War)의 출발점
    이상돈 교수, sdlee51@hotmail.com

    최근에 시스템 클럽을 이끌고 있는 지만원 박사가 손학규 씨 등 몇몇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시대정신’이 좌익계 용어인데, 보수 논객마저 이 용어를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 씨는 지난 4일 개헌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헌법을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도록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월5일자, A4쪽)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시대정신’이란 용어가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용어는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 정신적 자세’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원래 ‘시대정신’(Zeitgeist)은 독일 관념철학에서 나온 용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나는 지 박사의 문제제기가 경청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정신’(Zeitgeist)라는 용어는 요한 헤르데르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헤겔 철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공유(共有)된 정신”을 의미할 것이다. 또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시대를 뛰어 넘는 에토스”를 ‘시대정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유래가 어떻게 됐든 간에, ‘시대정신’은 이제 진보 내測?좌파 성향 용어로 자리잡은 것 같다. 또한 반문화(反文化: counter-culture) 및 무신론(無神論)을 상징하는 단어가 된 것으로도 보인다.

    無神論과 反文化를 상징하는 용어 ?

    미국의 진보좌파 웹진인 슬레이트닷컴(Slate.com)에 ‘자이트가이스트 체크리스트’라는 칼럼이 있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를 써서 유명해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무신론자(無神論者)인 리차드 도킨(Richard Dawkin)은 최근에 나온 ‘신(神)은 환상이다’(The God Delusion)이란 책에서, 종교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진화하는 도덕적 시대정신(moral zeitgeist)이 종교보다 훨씬 도덕적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실생활에서 ‘시대정신’이란 용어가 ‘반문화’(反文化 : 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것도 눈 여겨 볼 점이다. 보스턴의 ‘자이트가이스트 스테이지’(Zeitgeist Stage Company)라는 극단은 주로 반문화(反文化) 성향의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에는 ‘자이트가이스트’라는 바(bar)가 있는데, 반문화 반체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술집이다. 이런 극단이나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일 것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는 세속적 문화(secular culture)가 지배하는 진보성향 도시이다.

    ‘시대정신’이란 잡지

    잘 알다시피 안병직 교수가 이끄는 뉴라이트 재단이 발행하는 계간 잡지의 이름이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은 김영환 등 주사파 출신들이 만든 잡지인데, 경영이 어려워서 안병직 교수 등을 영입해서 재창간한 것이다.

    내가 ‘시대정신’이란 계간지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초여름에 어렵게 잡지를 발행해 오던 한기홍 씨가 나한테 원고를 부탁하면서부터이다. 나는 보도를 통해 주사파에서 전향한 그룹이 북한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잡지가 있는 지는 몰랐다.

    잡지의 명칭이 헤겔의 용어인 ‘시대정신’인 것에 대해, 나는 한기홍 씨 등이 과거에 좌파였다가 이제는 전향했기 때문에(헤겔 식으로 말한다면, 한바퀴 돌아서 진화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단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북한민주화 운동이 바로 이 시대의 사명임으로, 그런 독특한 경력을 갖은 사람들이 발행하는 잡지의 명칭으로는 충분히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안병직 교수는 ‘시대정신’ 인수를 계기로 중요 신문과 연이어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그 인터뷰에는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 결과 나와 ‘시대정신’과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나는 한 씨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시대정신’으로 이어진 고리 ?

    그렇다면 과연 지만원 박사가 말하는 대로 ‘시대정신’이란 잡지 명칭도 좌익임을 나타내는 것일까 ? 손학규 씨와 이명박 씨가 이 용어를 즐겨 쓰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 ‘시대정신’이란 잡지 명칭에 ‘숨은 코드’가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그런 용어를 자주 올리는 것은 과거에 좌파에 빠졌었다는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폴리젠이란 웹사이트가 뉴라이트닷컴과 합병을 한 것도 묘한 뉘앙스를 갖는다. 다시 말해 ‘시대정신’이란 용어가 뉴라이트 네트워크 집단과 이명박-손학규 씨 진영(陣營)과의 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용어 선택도 문화전쟁이다

    이와 더불어서 용어 선택도 일종의 문화전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느 보수단체 모임에 갔었는데, “우리 우익은 –”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대체로 이야기해서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은 상대방을 나쁘게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리 우익은 –”라고 말하기보다는 “우리 보수 진영은 – -” 라고 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용어도 그러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주의자들을 나쁘게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인사가 “나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곤란하다.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는 자신들이 ‘보수주의자’(conservative)이고 ‘자유주의자’(libertarian)라고 생각했다. 반면 레이건과 대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위대한 지도자들을 ‘우익’이며,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러 비하(卑下)한다. 용어 선택은 문화전쟁(Culture War)의 출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