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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또 한 말씀을 하시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가 공격을 받았습니다만, 참아 왔는데,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할 생각”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할 일도 열심히 하고 할 말도 다 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민생 현안을 챙기는 일만으로도 빠듯할 듯싶은 나라의 국무회의에서 이게 할말인가 하는 이야기는 이제 하도 식상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노무현의 이같은 발언에서 나는 도무지 반성을 모르는 확신범의 한 전형을 보는 듯만싶어 적잖은 걱정이 앞선다.
지난한 세월을 거쳐 그나마 확보한 민주 개혁 세력의 진지를 노 대통령이 점점 더 벗어날 수 없는 진흙탕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게 아닌가싶어서 더.
“어제의 발언을 보면 ‘극우보수 세력’에 쿠사리 먹어서 한이 맺힌듯 말하든제 참 기가 막힐일이다.그들에게 힘을 부여해준것이 누군가? 노통본인 아닌가? 다죽어가던 딴나라당과 조중동을 예전보다 몇배나 강성하게 만든것이 노통 본인이듯 말이다..자기스스로 키워놓고 키운존재에게 억눌린다????? 또 그런 발언을 ‘아주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뽕에취한 광태를 보이는 작자들이라니..”
얼마 전 황당무계님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황당무계님은 이 글의 댓글에서 “제말을 먼뜻인지 이해하는 노빠가 한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가 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패착지점은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기득권에 무한 비판의 동기와 명분을 제공한 데 있다. 노무현은 이른바 조중동에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제 그들에게 거리낄 게 뭐가 있겠는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전쟁이 무엇인가? 전쟁이란 다른 잡다한 이설에 앞서 살아남는 것이 최후의 목적이다. 거기서 수단 방법은 아무래도 무방하다. 더티한 플레이를 하건 ‘별 쌩쑈’를 다 하건 오직 싸워 이기는 것만이 지선이다.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피아간에는 정면 승부만이 남는다. 적에게 신사적인 플레이를 요청할 수도 없고 적이 신사적인 플레이에 응할 필요도 없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말 그대로 죽거나 아니면 죽이거나의 싸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요지의 언설을 늘어놓은 바 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할 ‘꼴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답답할 노릇이다. 노무현 식이라면 지금도 전화가 끊이지 않는 레바논 사태나 이라크 사태는 대체 뭐라는 말인가? 노무현 식이라면 일본 제국주의 시절 만주 벌판에서 독립투쟁을 한 이들은 꼴통 가운데서도 으뜸 가는 꼴통으로 불려 마땅할 것이다.
0.00000001%의 가능성만 있어도 거기에 목숨 걸 수 있는 게 전쟁이다. 그리고 일단 전쟁을 선언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일 때 나는 전쟁을 시작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길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목숨 걸고 하는 것이 혁명이고 전쟁’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전쟁은 어떤가?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적을 향해 왜 신사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느냐고 투정 부리는 게 고작일 뿐이다. 도대체 전쟁을 선포한 당사자가 상대에게 신사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더 웃기잡는 것은 정작 전쟁을 선포한 이들에게서 도무지 적과 싸워 이길 전략도 전술도 자신감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승리는 고사하고 천하의 조롱거리가 되기 딱 십상이다.
게다가 이들은 도대체 무능하기까지 하다. 그 무능으로 인해 사사건건이 비판 꺼리를 쏟아내놓고 있다. 그 결과가 언필칭 조중동의 ‘비판언론’ 자임론이다. 얼마나 무능했으면 황당무계님 말마따나 ‘다 죽어가던 조중동’에 이같은 ‘비판언론’의 명분까지 부여하여 더 큰 힘을 갖게 해주었을까?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노무현(과 그 아류들)은 틈만 나면 언론이 문제라면서 문제의 본질을 남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작정한 적으로부터 이들은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말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 이보다 더 만만한 상대는 없는 노릇이다. 시쳇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환호작약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일 터다. 아닌가?
전략도 전술도 자질도 역량도 자신감도 없는 ‘키치’ 그 자체인 아해들이 제멋대로 내뱉어놓은 이 ‘전쟁’이 남긴 상처는 깊고 크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앞으로 싸워야 할 민주 개혁 세력의 몫이자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들은 오히려 당당하기만 하다. 전쟁에 패했다면 그 원인을 자신으로부터 찾는 것이 마땅할 터임에도 그 책임을 생뚱맞게도 ‘적의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한발 더 나아가 ‘무식한 국민 탓’으로 돌리는 짓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투고, 자신들 외에는 사람이 없는 천상천하 무인지경인 행태다. 어쩌겠는가?.
노무현의, 노무현에 의한, 노무현을 위한 이 ‘한심한 전쟁’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