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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사상이 좌파인 이유 요약
이명박의 좌파 사상에 대한 6가지 정체성 분석6.3 동지회는 이재오-이명박-손학규가 3인방으로 잡고 있다. 6.3 동지회는 반 박정희 동지회이며, 지금도 이들은 6.3 동지회 활동을 통해 박정희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뉴스타운
이명박의 정체를 간단하게 요약해 달라는 주문들이 있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이명박의 사상적 정체성은 6곳에 드러나 있다.
1) 이명박은 박정희를 증오하는 모임인 6.3동지회 지휘
2) 김정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조례 제정하여 대북지원비 200억 마련한 후 김정일측과 협상
3) 청계천을 ‘박정희에 항거한 좌익-노동세력의 로고’인 전태일에 바친 사실
4) 좌익들의 이념침략을 비호하는 발언들
5) 좌익 친구들
6) 좌익 운동권 출신 정태근을 핵심 동반자로 데리고 다닌 사실 들이다.1. 이명박은 박정희를 증오하는 모임인 6.3 동지회 지휘
이명박은 1941년생, 고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한 때 박대통령을 괴롭힌 운동권이었다.
북한 대남공작단은 한일협정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켜 학생들을 선동했다. 그 결과 1964년 6월3일, 1만에 이르는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4.19와 같은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박정희 정권을 무너트리고, 남침을 유도하려 했던 국가전복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태의 배후에는 북한의 전문 공작단과 이에 동조하는 소수의 좌익들이 있었고, 이들이 학생들을 포섭하여 전면으로 내세우는 방법으로 소요의 불을 지폈다.
도예종(당시 41세ㆍ74년 2차 인혁당사건으로 사형) 및 김정강(金正剛ㆍ서울대 정치학과 3년)은 국가보안법위반, 내란소요 등의 혐의로 각각 현상금 10만원씩 전국에 수배됐고, 김중태, 현승일, 김도현 등 이른바 ‘데모 3인방’에 대한 현상금도 1만원씩 내걸렸다.
이런 공산주의 집단에 이재오와 함께 적극 가담한 이명박은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지금도 300명 정도로 규합된 6.3동지회가 결성돼 있고, 회장은 이재오가 맡고 있다.
지휘부는 소위 6.3 동지회 3인방으로, 이재오-이명박-손학규가 잡고 있다. 6.3동지회는 반 박정희 동지회이며, 지금도 이들은 6.3 동지회 활동을 통해 박정희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은 고대 4학년, 상대 학생회장으로 6.3사태에 적극 가담하여 현상금이 붙어 있었으며, 손학규는 경기고 3학년으로 6.3사태에 적극 가담했다,
2. 김정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조례 제정제정하여 대북지원비 200억 마련한 후 김정일측과 협상
2005년 5~6월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엄청난 군사력을 한반도에 배치했던 시기였다. 우리 국민의 함성에서는 방독면을 사고, 제독약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긴장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 이명박은 8~9월에 평양에 가서 ‘낡은 평양시내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주는 대가로, 김정일을 만나게 해 달라고 뜻을 전달했다. 평양에 선물을 주기 위해 벌써 200억원도 만들었다고 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기사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27일 ‘시청 실무팀이 평양 시내 리모델링과 경평축구대회 부활 등에 대한 협정을 맺기 위해 금강산과 평양을 2차례 방문해 협상을 벌였다’면서 ‘북한 측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북한측은 서울시가 낡은 평양시내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서울시는 이시장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들어갈 것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미 경평축구대회 부활과 관련해 2004년 5월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했으며 200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노컷뉴스, 2005.5.27)
3.청계천을 박정희에 항거한 좌익-노동세력의 로고인 전태일에 바친 사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청계천을 과대 포장하여 이명박의 경영능력을 띄워 올렸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캠페인을 조선ᐨ동아가 벌인 것이다. 조선-동아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말들이 많다.
5.8㎞ 청계천의 하이라이트는 ‘전태일 거리’다. 알맹이에 해당하는 평화시장 요부에 전태일 동상이 서고, ‘전태일 브리지’도 조형돼 있다. 동판으로 만든 블럭이 깔린다는 700m의 거리가 바로 ‘전태일 거리’인 것이다.
또한, 이명박은 하고 많은 날들 중에서 하필 10월1일 국군의 날에 오픈 하여 국군의 날 행사가 묻혀 버렸다.
전태일은 누구인가?
민노총이 만들어 낸 ‘가공된 영웅’이요 반 박정희 노동운동의 상징적 로고다.
한국 노동운동은 1964년 목사 집단인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강원용 목사 계통)로부터 출발했다. 1964년 3월, 혁신계 교회 목사 300명이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 약칭 ‘도산’을 구성하여 도시산업 근로자에 대한 선교를 한다는 구실로 성경 교리를 소위 ‘해방신학’,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근로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선동하여 노사분규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위의 도시산업선교 사업이 탄압을 받게 되자 1976년 11월에 영등포에서 결성된 ‘사회선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제조업체들에 은밀한 방법으로 지하조직을 심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1년 말, 경기지역에 비밀 지하교육기관인 ‘다락원’을 설치하여 4개월 코스로 합숙훈련을 시키면서 소위 ‘도산이론’을 무장시켜 주었다. 1개 기에 30~40명, 1982년 말까지 1년간 배출된 200여명의 전문세포들은 구로, 인천, 부천, 성남 지역의 문제가 많은 기업체로 ‘위장취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을 민주화가 꽃피는 시대, ‘혁명’을 실천할 결정적인 시기라고 판단하여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전력화하였다. 근로조건 향상, 인금인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노조를 어용노조로 매도하면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사장실 점거ᐨ협박ᐨ린치ᐨ파괴ᐨ방화ᐨ분신 등 온갖 불법투쟁을 연출해 냈다. 이런 위장취업자 제1기생 중에 바로 손학규가 있고, 그 뒤로 김문수가 있다.
학생을 선봉대로 노동자 및 농민을 주력군으로 하는 연대투쟁을 통해 수많은 기업을 무너뜨렸지만, 당시 국민들은 이를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쓰러지게 했던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1979년8월11일에 발생한 YH 사건이었고, 그 현장에 영등포 도산의 총무였던 인명진이 있었다.
‘민주노조’의 목표는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같은 것이 아니라 자본가를 몰아내고 노동자에 의한 기업지배를 목표로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통일노동’을 내세워 반미ᐨ친북 노선을 선포하면서 전교조, 전공노, 386 정치세력과 연대하여 기업전복ᐨ대한민국 전복을 기도해 왔다. ‘민주화’의 부대마크를 단 ‘386세포’들의 투쟁목표는 대한민국 전복이었다. 이것이 현 민주노총의 정체요 노선인 것이다. 구호들의 일부를 정리해 본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공존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다.”
“사용자를 폭력으로 타도하고, 계급해방(노동해방)을 이룩하자.”
“사용자는 쓸어버려야 할 한줌의 적이다.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자.”
“구걸하여 얻느니 싸워서 빼앗자.”처음부터 자본론, 계급투쟁론, 민중운동사 같이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이고 정열적인 20대의 노동자이면 누구든지 공감하는 쉬운 내용을 가지고 입맛을 들이게 했다. 현장 근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수집ᐨ정리하고 기업주와 기존의 순수한 노조집행부의 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공분을 갖도록 했다.
이들은 1970년 11월 13일,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한 가난한 노동자 전태일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신케 한 후, 그의 죽음을 극도로 활용했다. ‘전태일 수기’를 제작하여 전태일을 노동계의 영웅으로 미화시킨 후,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일반 국민에게는 박정희 군부독재에 대한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활용했다.
이들은 가장 못 배우고 가장 가난하고 순진한 노동자를 골라 불에 태워 죽였다. 이것이 인간 불화살이었다. “너는 군중이 많이 모인 가운데에서 비장한 분위기만 연출하면 된다” 이렇게 속이면서 불에 태워 죽인다. 풍물패를 동원하거나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등의 기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몸에 신나나 휘발유를 뿌리고 칼을 높이 들게 하여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후, “개, 돼지로 사느니 차라리 죽자.” “내 한몸 불살라 천만 노동형제를 해방시키자.” 등 끔찍한 구호를 외치게 했다.
그리고 쓰리꾼들이 하듯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한 후 누군가가 성냥불을 그어 던졌다, 1970ᐨ80년대에 발생한 인간 불화살이 된 노동자는 17명, 그 중 전태일이 제1호다. 이 17명의 불화살 중에는 위장취업한 대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모두가 위장취업한 대학생들이 점찍은 가난하고 순진한 노동자들이었다. 결국 분신한 노동자들은 꼬임에 빠진 희생양들이 됐고, 이런 불화살을 만들어 낸 위장취업자는 그들의 세계에서 승진했다. 이런 첫 케이스가 바로 전태일이다.
청계천에는 전태일 동상이 서있다. 이승만의 동상도 아니고 박정희의 동상도 아니다. 박정희 정부를 무너트린 붉은 무리들에게 바친 것이다.
4. 좌익세력의 국가전복 행위 가려주는 이명박의 발언들
2005년 12월 20일 오전, 이명박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이 청년층과의 교류 확대를 위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마련한 ‘대학생아카데미’ 행사에 첫 번째 강연자로 초청됐다. 사립학교법과 관련하여 박근혜가 주도하는 이념 논란 즉 “우리 아이들을 전교조에 맡길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비판했다.
“정치권에서 국가정체성이 어떻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정체성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에 누가 국가정체성을 가지고 그러느냐.”
“국가정체성에 대한 승부는 이미 갈렸다. 그 승부가 끝났는데도 대한민국은 그 문제를 가지고 지금도 왈가왈부한다.”
국보법 폐지 등 4대 악법과 관련하여 그는 “되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국민의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조선ᐨ동아를 포함한 애국자들은 4대법안을 4대악법이라 불렀지만, 이명박은 열우당 편에 서서 가결되면 기분이 좋다고 한 것이다.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할 생각은 없느냐”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20년간 CEO를 하며 재산을 모았지만 현재 대기업 CEO의 1년치 연봉보다 적다. 내가 일궈낸 재산에 대해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거짓말일 것이다.
2006년 7월 5일, 당대표 경선 때, 이규택 후보는 이재오 후보에 대한 사상검증 주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이 골수보수로 가자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명박이 사상검증을 꼴보수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방해한 것이다.
2006년 6월 30일, 이명박은 또 “한나라당이 골수보수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개혁이 되지 않아 골수보수가 아닌 개혁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했다. 김진홍의 말과 일치하는 것이다.
2005년 10월 24일(내일신문), 박근혜는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는 현 정권이 국가정체성을 뒤흔든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구국운동도 불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학규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도 문제지만 강정구 교수 발언을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했고, 이명박은 아예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작통권 문제에 대해 그는 기억에 남을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기자가 묻는 말에 수동적으로 “작통권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다뤄야 한다”는 견해만 피력했다.
5. 이명박의 절친한 친구들이 좌익
이명박과 절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 김진홍, 이재오, 손학규가 있다. 이들은 모두 좌익전력으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친북-반미 발언들을 하고 있으며 좌익세력의 폭력시위, 국가파괴, 전교조의 이념전파 행위를 감싸주는 발언들을 해온 사람들이다.
이재오, 김진홍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소위 킹메이커들이다.
6. 좌익 운동권 출신 정태근을 핵심 동반자로 데리고 다닌 사실
▲ (좌)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우) 이명박 전 서울시장
정태근은 이명박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을 때, 이명박 캠프에서 그를 도왔고, 시장일 때에는 부시장이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서 이명박을 보호하는 핵심측근이었으며, 지금은 공개적으로 이명박 캠프에서 핵심 참모로 일하고 있다. 그의 프로필을 보면 이명박의 색깔을 알 수 있다.
이명박의 1급 참모인 정태근은 간첩들과 친구이고, 반미 친북 운동으로 감옥에 갔고, 친구들이 좌익 운동권이고, 지금도 반미-친북 단체들에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전형적인 골수 좌익이다.
이명박은 김진홍-인명진-손학규-이재오-정태근과 시스템적으로 연계된 골수 좌익이다.
1. 정태근은 고진화, 김민석, 허인회(부여간첩접선)와 함께 삼민투 운동전개
2. 미문화원 점거(3년징역)
3. 박종철 고문사건과 연루, 수사대상에 올라
4. 이번 일심회 간첩 손정목과 함께 운동했고
5. 친북단체인 민가협의 간사
6. 그 외 수개의 친북 단체에 관여
7.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자료에 의하면 정태근은 이번 386간첩단의 수괴인 장민호와도
죽마고우라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단언할 단계는 아니다.2000년 총선 당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사상이 불순한 386 3인을 영입했다.
원희룡(서울대 82학번)
고진화(성균관대 총학생회장 82학번, 삼민투위원장)
정태근(연세대 총학생회장 82학번,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
신문 보도 내용
[한겨레 2005-09-05 18:57]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정태근씨
[한겨레] 서울시는 5일 이춘식 정무부시장 후임으로 정태근(41) 한나라당 성북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임명했다.
신임 정 부시장은 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허인회 고려대 총학생회장 과 김민석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전국학생연합을 결성하였고 삼민투를 조직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으로 3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대표적 386세대이다.
2000년 한나라당 성북갑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지냈다.
[중앙일보] 2006년 10월 30일(월)
‘일심회’ 주축은 ‘삼민투’ 출신
[중앙일보 이철재] 고정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장민호(44)씨가 결성했다는 ‘일심회’에는 과거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 멤버들이 포함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84년 총학생회가 부활되면서 조직화 양상을 띠게 됐다. 85년 출범한 대중조직인 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과 전학련의 전위조직 성격인 삼민투가 대표적이다. 삼민투는 85년 5월 23일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며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장씨에게 포섭된 이정훈(43.사진) 전 민노당 중앙위원은 85년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내면서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 적극 참여했다. 이정훈씨를 장씨에게 소개해 준 것으로 알려진 허인회(42) 전 열린우리당 전국청년위원장은 85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전국 삼민투 위원장을 맡았다.
이씨(사학과)와 허씨(정치외교학과)는 고려대 82학번 동기이며 둘 다 미 문화원 사건으로 구속됐다. 삼민투는 내부 노선대립으로 86년 민족해방을 내세운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NL계열)와 민중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민민투(반제 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PD계열)로 갈라졌다.
PD계열이 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세력을 잃었지만 NL계열은 민족.통일 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학생운동 진영을 이끌어왔다.
특히 NL계열이 80년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90년대 이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 대중 조직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NL계열 중에서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가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구속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은 전대협 사무국장 출신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 삼민투 = 1985년 학생회 연대조직으로 발족한 전국학생총연맹(전학련)의 전위 투쟁조직.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위원회’의 약칭으로 미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해 핵심 지도부가 대거 검거됐다.
정태근은 누구인가?
2006년4월 중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황제테니스라는 스캔들에 휩싸여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정태근 정무부시장이었던 정태근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을 적극 비호하면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우상호 대변인, 안민석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정태근은 이명박 사람이었고, 지금도 이명박 캠프의 핵심 인물이다.
정태근은 1964년생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으며 그의 부인 역시 이대 총학생회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5년5.23일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의 주역으로 김민석(서울대), 허인회(고려대), 고진화(성균관대 삼민투위원장)와 함께 감옥에 간 바 있다. 또한 정태근은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고진화와 함께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던 지독한 운동권이었다.
이런 그가 2006년11월 말에 간첩으로 몰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인터넷신문 기자에게 기사 삭제를 요구하며 욕설과 협박을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인터넷신문 CNB뉴스는 11.18일 “정씨가 CNB뉴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야 XXX야, 너 죽고 싶어, 죽여버릴거야’라고 폭언과 협박을 가했다”며 “CNB뉴스 측이 이를 거부하자 대학동문 등을 동원, 회유를 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발단은 전날 “대선후보 진영에 북 첩보원 침투 활동 중”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한다. 기사내용에는 “J”라는 가명으로 처리됐으나, 정씨가 거론된 이름이 자신이라며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와 함께 협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해당 기사와 관련해 CNB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하는 한편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중재를 신청했으며, 이 신문 김원섭 편집국장이 지난 24일 서울경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국장은 조사과정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것을 자기라고 주장, 민·형사상으로 CNB뉴스에 오히려 피해를 끼친 정씨는 정치인의 도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진술했다며, CNB 측도 명예훼손 및 기자폭언·협박으로 정씨를 고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J라는 이니셜로 표기해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정씨를 지목한 것이 아닌데도 문제를 삼는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대선후보 최측근이라는 사람이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하듯이 기사 삭제를 요구한 것은 인간성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인터넷언론협회 강승규 회장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인터넷언론사 편집국장에게 욕을 하며 기사 삭제를 요구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품위를 잃은 처사”라며 “인터넷신문사가 모여 만든 우리 협회는 정치인들의 인터넷언론을 비하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으며, 차제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작’ 논란의 대상이 된 정태근 서울시 전 부시장은 최근 이른바 ‘386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검거된 손정목씨 등과 함께 활동했던 386 운동권 출신이다. 손씨는 정씨가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낼 당시 학술부장을 지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친한 교우라고 밝힌 고진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비롯,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 허인회 열린우리당 전국청년위원장 등과 함께 ‘삼민투’ 활동을 하다가 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과 관련해 3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손정목 씨와 함께 이번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이정훈 전 민노당 중앙위원도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로 활동했다. 민가협은 현재 대표적 친북단체인 통일연대 소속 단체이다.
이와 함께 2001년 6.15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청년 200여명의 방북을 추진했던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청년교류 추진위원회(추진위)’에 참여한 단체인 ‘한국의미래 제3의힘’ 운영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소속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도 ‘추진위’에 함께 참여한 단체이다. 정씨는 현재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고 있다.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2006-12-17 오후 9: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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