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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흠..이군요.
후진타오정권은 이미「김정일 배제」에 착수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배제한「統一朝鮮 구상」도 준비단계에
SAPIO 2006. 11. 08저널리시트 윌리 람
북한에 대한 안보리의 제재결의는, 동시에 중국에도 들이댄 것이다. 요컨대 문제해결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폭주 끝에 붕괴되는 것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사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韓美日의 버퍼 존(완충지대)으로서나,「경제식민지」로서는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해결책은 한가지 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 중국공산당정권의 내막에 정통한 윌리 람씨의 레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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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10월 1일 건국기념일)의 대형 연휴가 끝난 직후인 10월9일 오전 10시가 지난 후, 나른한 공기가 감돌던 중국 외무성의 분위기가 한통의 전화로, 일시에 긴장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아국은 현재, 핵실험을 실시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곧 실험을 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 외무성으로부터의 핵실험 실시의 일방적인 통고였다.
이 통고는 이미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전해졌으나, 그 통지가 도달하는 시기와, 북한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때와 거의 동시였다. 통고로부터 불과 20분후에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실은 러시아정부에는, 핵실험 2시간 전에는, 북한으로부터의 통지가 도달되어 있었다.
「2시간과 20분이라는 시간차에, 김정일 총비서의 中러 양국에 대한 신뢰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北京의 중국외교소식통이 지적한바와 같이, 그 무렵의 中北관계는 태격태격했다.
그 최대 원인이, 핵무기를 포함한 핵개발중지를 요구하는 중국의 요청을 김정일이 계속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6개국협의에의 참가를 요구하는 중국에 대해서, 김정일은,
「6개국협의에의 참가는 시간낭비다. 전혀 의미가 없다」
며 시종 일축 했다.
중국의 북한전문가는,
「김총비서는 중국을 전혀 신용하지 않는다」
며 입을 모았다.
그 최대의 이유는, 中北국경부근의 평양북도의 용천역에서 일어난 열차폭발사고(04년 4월)다. 그 날, 김정일은 방중을 끝내고, 특별열차로 귀국길에 들어섰다. 사고가 일어난 때는,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통과하고 나서 9시간이 지난 후였다.
실은, 당초의 예정으로는, 김정일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는 중북 국경부근의 북한의 역에서 일단 정지하고, 식사를 하는 등 휴식을 취하고 나서 발차할 예정이어서, 용천역을 통과하는 시간이 폭파사고가 있은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이 사고에서는 역사(驛舍)가 완전히 날라 가고, 폭발장소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외에, 부근 의 주민 등 16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아주 파괴력이 강한 폭발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용천부근을 질주하고 있었더라면, 열차가 탈선하거나, 파괴되는 등, 김저일의 몸에 큰 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일정은 극비이기 때문에, 북한국내로부터 누설되었을 가능성이 낮아, 김정일은,
「중국이 비밀을 누설한 것이 틀림없다」
고 측근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고가 있은 이래, 김정일은 중국편의 측근을 차례로 숙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측근들 가운데에는 방중 했을 당시에 김정일의 행동거지를 중국 지도부에 고한 자도 나오게 되어, 胡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김정일의 언동을 몹시 언짢게 생각하고 있은 것이 틀림없다.
또한, 中北관계의 악화를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7월 상순의 북한의 미사일발사실험이었다.
여기 대해서, 胡주석은,
「김정일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곧, 김정일을 北京으로 데려오라」
고 격노하면서, 김정일 자신의 해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의 보도기관을 중심으로「김정일 訪中」의 억측 기사가 몇 번인가 나왔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게 된 胡주석은, 李○星 외상에게 지시하여,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의장성명에 중국 대표단이 찬성하도록 명했다.
「이제는 북한을 비호만 할 수는 없다. 앞으로, 중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중국은 국제사화와 협조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측의 “변심”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인민해방군 내부에서 그림자를 감춘「북한옹호론」
그러나, 유엔이 북한의 핵실험실시선언에 대한 안보리의장성명을 채택한지 3일후인 10월9일 오전,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했다.
胡 주석은 이날, 자신이 책임자로 되어 있는 中國共産黨外事指導小組(그룹)를 긴급소집해서, 중국의 경고가 완전히 무시되었다면서, 재차 격노했다.
「우리는 김정일에게 배신당했을 뿐이다. 이젠 김정일을 감싸줄 수가 없다」. 한반도를 다시 평화스러운 환경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방법을 구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지도부로서는, 이젠 김정일의 폭거를 무시할 수 없게 되어, 胡주석은 회의 출석자들에게 새로운 대응을 지시했다.
그 가운데서 나온 것이,
「統一 朝鮮」이다. 즉, 김정일을 배제하고, 한국과 북한을 통일하여, 새로운 국가를 창설한다고 하는 원대한 계획이다. 분단국가였던 동서독의 통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중국인은 체면을 중시 한다. 체면을 완전히 구긴 호주석이, 김정일을 매장하려고 마음 먹었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
北京의 중국 소식통에 의하면, 이 統一朝鮮구상의 배경에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발사실험에 의하여, 문제는 胡주석의 체면이 구겨진 것만이 아니고, 북한국경부근의 중국 동북부에서의 경제적 영향 외에,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의「북조선옹호론」의 쇠퇴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금년부터 시작된 제11차 5개년계획(~2010년)에는, 중국정부는 동북부의 개발을 지상과제로 하고 있지만,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요령, 길림, 흑룡강의 3省에서 외국기업의 투자액이 감소하고 있는 외에, 특히 북한으로 통하는 주요 간선도로가 지나는 길림성에는, 중국기업의 공장건설이 중지되는 예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문제는 군사측면으로도 파급되고 있어, 中北국경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 있다.
北京의 군사소식통에 의하면, 中北국경방위에 책임을 지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심양 군구는 미사일발사 실험 후인 7월 하순, 국경을 연하여 약 2000명의 기계화 부대를 증원하여, 합계 7000명의 부대를 배치했다. 이 외에, 「일단 유사시」가 되면, 그 후방에 주둔하고 있는 약 4만 명의 해방군부대가, 하시라도 출동 가능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
도한, 북한의 핵실험이 실시된 10월 9일, 심양군구는 즉시 군인들의 휴가를 취소하고, 제1급 경계태세를 내린 외에, 황해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하고 있는 山東省을 거점으로 하는 제남(濟南)軍區의 보병부대가, 10월12일부터 18일까지, 河南省 確山의 연습장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실시했다.
참가한 부대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응하는 약 1만8천명의 부대로, 군구의 연습으로서는 최대 규모였다. 실탄사격훈련이라든가 헬리콥터로부터의 미사일 발사 훈련, 다른 연습장으로의 신속하게 이동하여 타 부대에 합류하는 연습도 실시하여, 한반도에서의 유사시에 대응한 군사훈련이라는 것이 명백했다.
동 소식통은 중국지도부 내부에서, 7월의 미사일 발사실험 후, 북한정책의 재검토의 필요성이 진지하게 논의되어, 미군에 의한 북한 공격 등으로「김정일 체제 붕괴」라는「최악의 시나리오도 상정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중국의 인민해방군도 유사시에 대비한다는 의미로, 中北국경의 군비증강에 의한 경계태세의 강화로 나서게 된 사유다.
「한국군이 압록강의 남측까지 오는 것에는 간섭하지 않겠지만,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오는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아군(해방군)도 즉각 압록강을 넘을 수밖에 없다」
해방군 간부는 이렇게 밝힘과 동시에, 한반도 유사시가 현실로 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지난 한국전쟁(1950~53년) 과 동일하게, 美中 양군에 의한 군사대결이 현실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對美강경론자가 많은 해방군 내부에서도, 지금까지의 전통적인「북한옹호」론이 그림자를 감추어 왔다. 이는, 軍內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에는 한국전쟁에 의하여「피로 다져진 우의」라든가「순치(脣齒)관계」로 양국의 밀접한 관계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軍內에서는 강했지만, 이제는 한국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늘어나,「어떻게 하면 중국을 지킬 수 있는가」하는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군 간부가 많아졌다.
괴뢰정권 수립도 염두에 두기 시작한 중국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이 같은 경제적인 영향이라든가 군내의 변화가, 胡주석에 의한 統一朝鮮구상 추진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統一朝鮮구상이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3단계로 나뉘어 있다. 먼저 ① 김정일 배제, ②중국의 괴뢰정권수립, ③한국 측에 대한 공작에 의한 통일이다.
우선 가장 어려워 보이는 것이, 김정일의 배제다. 그러나 胡주석은 이미, 제1단계에 착수했다. 김정일이 앞으로, 중국의 지시에 응하지 않을 경우, ① 식량과 에너지 등의 경제지원의 정지, ② 1961년에 체결한 中朝相互友好援助條約의 재검토, ③ 韓美日과의 밀접한 연휴관계구축, ④국제사회와 공동으로의 對北압력의 강화-등의 4가지 점에 대해서, 胡주석은 김정일에 통고했다. 중국이 이 같은 4가지 점의 실시에 의하여 조만간, 김정일이 사죄하러 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 경우, 김정일에게「引退 권고」를 내밀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더욱 준엄한 내용의 압박 대책을 취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배제가 성공하게 되면, 중국편의 후계자를 옹립. 동시에, 중국은 북한영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해서, 국경경비를 강화할 방침이다.
그래서, 북한이 완전히 중국화 된 뒤에, 최종단계인 남북통일을 실현시킨다. 중국은 남북한의 교섭의 교량역으로서, 주도적으로 움직여, 親中的인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렇게 되면, 胡주석은 국제적으로도「平和의 使者」로서, 큰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어서, 체면도 서기 때문이다.
또, 얼마간 친중 정권이라 하여, 북한 홀로 남겨두면, 언제 또 美北간의 분쟁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統一朝鮮에 의하여, 그 어금니를 뽑아내고 싶다는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
이미, 구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10월13일 北京에서 이루어진 노무현 한국대통령과의 韓中수뇌회담에서, 胡주석은「統一朝鮮」구상을 제기했다.
그 가운데서, 胡주석은 통일정권탄생의 최저조건으로서,「미군을 북한영내에 一步라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노 대통령에게 진언했다.
이는, 胡주석이 얼마나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영향력강화에 높은 경계심을 품고 있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胡주석으로서는, 통일조선구상은 한국과의 밀접한 연휴아래서 추진하지만, 일본과의 관계강화도 감안하고 있다. 남북통일에 따라, 방대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베신조 신 수상의 방중도 실현되어, 日中은 관계개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중국 주도로, 北東아시아의 3대국이 손을 잡으면, 統一朝鮮구상의 실현도 꿈이 아닐 것이다」
胡주석은 구상의 실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확정되지 못한 요인이 이러한 사태에 관여할 수 없는 美國의 대응이다.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美國이 가만히 있을 까닭이 없어, 胡주석의 統一朝鮮구상의 실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를 胡주석이 어떻게 중재 할 것인가. 아시아의 패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胡錦濤 외교가 크게 시험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