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박근혜 대표의 성대 강연이 훨씬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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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ybe 66.***.225.151 2313

    (성균관대 자연대 총여학생회 대상)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부터 IMF때 억장이 무너져 나라를 바로 고쳐야겠다는 것과 최근의 론스타 사기에 대한 여러 의견들…


    이렇게 많은 대학생 여러분 만날 때마다 제가 과거 대학 시절로 간 듯한 활력과 기쁨 느낀다.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성대의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문근영씨가 신입생으로 와 인기가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저를 환영해주시니 제가 문근영씨가 된 것 같다.(웃음)

    작년에 자연과학캠퍼스 총여학생회에서 절 초청해주셨는데 제가 초청에 응하지 못해 마음속으로 미안했다. 성대 캠퍼스가 명륜동에 인문, 수원에 자연과학 캠퍼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특강 소식 듣고 수원에서도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 계세요? 반갑습니다.

    언론이나 사회에서 좋은 평가 받고 있는 대학이 성대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600년의 전통, 공자님 같은 전통적인 것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변화하고 발전하는 느낌 받게 된다. 대부분의 국민이 그런 생각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변화 주도하고 있는 분들이 이자리 계신 여러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도 성균관은 초시에 합격해야만 들어가서 공부할 수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인재들만 모인 곳이다. 조선시대 퇴계선생이나 유명한 대학자들이 다 여러분들의 동문 선배 아니시겠어요?(웃음)

    오늘 정치인보다는 인생 선배로서 여러분들과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 여러분 모두 미래의 꿈을 갖고 계시죠? 그 꿈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꿈, 미래가 되는 것이다.

    저는 학창시절에 나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보냈다. 지금 보면 조숙했던 것 같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제가 있던 특별한 환경이 청와대란 곳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앞날에 대한 대화가 참 많았다. 그때도 청년들 일자리 어떻게 만들까, 홍수가 지면 기도하고 자고, 당시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일자리가 없어서 노는 유휴인력이 참 많았다. 어떻게 일자리 만들어주고 공부시킬 것인가가 국가적 관심사였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셨는데 “유휴인력이 얼마나 되느냐” 조사를 시키셨다. 그것을 연구 분석한 결과 15살에서 20살까지 여성 대부분이 하는일 없이 가사 돌보고 지냈다. 그 시절만 해도 여성들은 대부분 학교를 안보내는 등 차별이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일주일 내내 연구하고 토의하는 것을 제가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 국민들이 꿈꾸던 걸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이카 시대’란 게 있다. 영어도 아니다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환상, 꿈이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차 많이 갖고계시지 않나. 그때는 멋진 꿈이었다. 열심히 일했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제 전공이 뭔지 아세요? 전자공학이다. 어떤 분들은 의외라며 놀라는 반응이다. 제가 전자공학 택한 이유는, 당시 1억불 수출 기념하고 10억불 수출 기념하며 쌓아온 시대다. 10억불 달성 앞두고서 100억불 수출 목표로 어떻게 이룰 수 있느냐고 고민해보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저도 그런 대화를 들을 기회 많았고 그때 주목한 것이 전자산업이다.

    트랜지스터 하나를 공공칠가방에 넣어서 팔면 몇만불이라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젊은 나이에 그런 얘기 듣고 ‘나도 일선에서 산업역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과 공부하다 이과로 바꿔 전자공학 선택하게 됐다.

    당시 공과대엔 여학생 거의 없었다. 70년에 들어가니 저랑 2명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가 외국유학을 가버렸다. 저보고 ‘공주’라고 부르는 거 아시죠? 과에서 혼자였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공주 대접을 받았다. 해보니 너무 어려워서 계속 해야하나 좌절한 적도 있었고,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전자공학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신데 제가 공부를 못해서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졸업 때 제가 수석을 했다.

    졸업하자마자 어머니가 흉탄에 돌아가셨다. 본의아니게 퍼스트레이디 역할 대행하면서 제 전공은 살리지 못했다. 그런 일 없었으면 교편 잡거나 연구원이 되어 IT코리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때 전자공학 공부한 것이 다른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당시엔 지원 육성 필요한데도 해당 부처에서 전자공학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아버지께 옆에서 조언도 해드리곤 했다. 체신부는 전자공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름도 정보통신부다.

    우리 나라 미래를 위해 가장 큰 문제는 뭐냐 하면 많은 학생들이 정치가 문제라고 할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계에 뛰어들게 됐다. 틀을 만들고 정책, 법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틀어지면 일선에서 일하기 힘들다. 사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에 이어 79년 아버지도 흉탄에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나. 권력이 무상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청와대 살면서도 아버지 어머니가 공인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부담 갖고 사시는 걸 보고 그런 생활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권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를 하면서도 사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당 대표 맡으면서도 사심없이 일할 수 있던 것이 그때의 경험이 토대가 되었던 것 같다.

    청와대 나온 지 18년동안 평범한 생활했고 일생을 그렇게 살고 싶었다. 97년 IMF사태를 맞았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폭격으로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피땀흘려 세운 나라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 애가 끓는 심정이었다.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나라가 다시 반석위로 올라서는데 일조하자, 그러기 위해선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입문한 것이다.

    나라가 잘 나아갈 때 개인도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살하고 청년들이 실업자로 거리를 헤매는 나라에서 과연 자기가 좋은 집을 산다 한들 진짜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나라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98년 재보궐선거로 입문하게 됐는데 당시 상대가 안기부 기조실장 지낸, 돈과 조직 거느린 인물이었다. 돈도 없고 작은 몸과 체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선거를 치르려 하느냐며 기가 막혀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저를 따라오지 못했다. 만보기를 차고 보면 하루 10만보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 구두축도 닳을 정도로 힘든 선거를 치렀다.

    무서운 일도 많았고 용기도 필요했지만 참 감동적인 선거를 치렀다. 모든 게 부족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는데, 시장 가면 아줌마들이 검은 봉투에 돈을 넣어 이거 쓰라고 했다. 어떤 남자분이 검은 보자기를 들고 서 있길래, 우족이었다. 힘을 돋구는데 도움이 된다며 이거 먹고 힘내서 선거 치르라고 주고 가기도 했다.

    그때 유권자들이 돈과 이런 것에 좌우됐다면 오늘날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로 8년째가 된다. 나랏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국민들 편안하게, 안전하게, 잘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도 뜬구름 잡는 얘기 하지말고 실생활과 관련된 얘기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정책 중요하다 하면서 실제로는 권력 정치에 매몰돼 있다는 느낌 받았다. 계파 형성하고, 공천권 가진 보스 눈치 보면서 거수기 역할 하고, 의총에서 자유토론은 없고 사전조율로 의견 만들어서 분위기 몰아가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말로 대략 난감했다(웃음).

    이런 정치 바꿔야 한다, 당내 민주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4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이 바람앞의 촛불처럼 위기를 맞았다. 당이 해체될지도 모를 위기 상황에서 당 맡아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다 쓰러져가는 당과 같이 쓰러지려 하느냐, 정치생명 끝날 수도 있는데 왜 모험하느냐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권력 가지려고 당 대표 출마한 게 아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후회 없을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제 초심을 끝까지 실천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고 다행히 선거 결과가 좋았다. 당 대표가 된 후 실천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지금도 해보고 있다. 현실은 참 만만치가 않았다. 당론 결정도 지도부가 다 만들고 의총 형식적으로 할 게 아니라, 의원들

    이 소신껏 말하고 그것이 모여 당론이 되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다. 옛날 의원들은 다 정해져 있겠지 하고 대세 따르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말씀들 하신다. 의원님들 그렇죠?(웃음)

    대표가 왜 과단성 있게 끌고가지 않느냐는 비판도 하는데, 그런 식이면 과거의 1인지배로 돌아갔을 것이다. 개혁을 부르짖다보면 자기가 손해보는 경우가 있어도 따라가야 하는데, 자기와 안 맞으면 비개혁, 비민주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희생도 감내해야 제대로 정치발전 이룰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가능한 경선으로 하고 있다. 경선으로 하겠다고 여당이 먼저 시작했다. 여당이 불리한 조건에서 그런 얘기 꺼낸건데, 지금 보면 그쪽은 낙하산식으로 지도부에서 다 하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내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고, 상황에 따라 유불리에 따라 왔다갔다 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우리 정치가 내편 네편 나눠서 파벌싸움 하지말고 국민 피부에 와닿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여야간에 감세냐 증세냐, 국민연금, 부동산 이런 걸로 공방을 벌이고 있지 않느냐. 절대 바뀔 것 같지 않던 우리 정치도 사심없이 노력하다보니 조금씩 바뀌더라는 거다.

    앞으로 더 긍정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고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몫이다. 밝은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같은 청년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번 같이 해보시지 않겠어요?(박수)

    20대엔 보통 정치에 관심없다고 한다. 그 무관심의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뜨거운 열정과 합리적 생각 갖고 있음에도 정치가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정치하는 사람끼리 권력다툼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고민을 해결하는데 직접적 관련 있다고 생각할 때 정치에 폭발적으로 관심 늘 것이라 생각한다. 등록금 마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출 받아서 빚 받은 상태로 졸업했는데 취직 못하면 그 부담 얼마나 크겠냐. 저는 방법이 있다. 민간 기부를 활성화해야 한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적극 기부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방안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등록금 인상할 수 있다.(좌중에서 ‘인하’ ‘인하’ 하자)…네, 인하. 큰일날 뻔 했네요(웃음).

    등록금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할 예정이다. 11조가 전국적으로 현재 등록금 규모인데, 4조 이상을 줄이는 방안 찾고있다. 취업 문제도 중요하다. 힘들게 공부해서 수십 군데 원서 넣어도 오라는 데 없고, 졸업 늦추려 휴학도 하고 대학원도 가고 하는 젊은이들 보며 마음 무겁다.

    정치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느냐, 화들짝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선배들에 비해 학점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취업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다. 토익 800 넘어도 옛날엔 고득점자였는데 지금은 900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예전 선배들은 데모도 많이 하고, 지금처럼 취업준비하지 않아도 골라서 직장 갔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높으냐 낮냐의 차이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늘기 때문이다. 성장률 1% 높아지면 일자리는 대략 9만개 생긴다. 한해 졸업생이 50만명이라 치면 경제가 최소한 5% 성장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일으키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3.9%에 그쳤다.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다는 걸 의미한다.

    1, 2%가 뭐가 중요하냐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성장률이나 일자리 문제를 갖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정치가 해야할 일이다. 야당이긴 하지만 감세와 작은정부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투자 소비 늘려 성장잠재력 키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 소비 투자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감세를 통해 민간이 더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력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규모가 큰 경제에선 정부가 간섭하면 할수록 경제는 쪼그라들고 발전 못한다. 전세계가 동의하고 있어 다 이러한 추세로 가고 있다.

    제가 얼마전 일본 다녀왔는데, 아시다시피 지난 10년간 불황 시달리며 어려웠다. 우리 진출한 기업인들 만나 조찬했더니 옛날보다 일본 사람들 얼굴에 활기가 돌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에선 지금 두세 군데 회사에 합격을 하고 졸업후 골라서 간다고 한다. 정부가 감세, 민영화, 작은정부 또 기업들은 과감한 구조조정하니 이렇게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드려면 기업에 대한 규제와 역차별을 없애야 한다. 개방화 시대로 가는데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해야지, 우리 기업들 손발 꽁꽁 묶어놓고 해서 되겠는가. 우리 기업들이 돈이 없어서 투자를 안하는 게 아니다. 규제 피해 외국 가서 공장을 만든다.

    300조란 돈이 있어도 투자가 되지 않고 있다. KT&G를 미국계 투기자본인 칼아이칸이 위협하고 있다. SKT도 소버린의 위협을 받다가 겨우 경영권 지켰다.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위협을 받고 있다. 언제 위협을 받을지 모르고 기업을 빼앗겨선 안되니 그 돈을 투자하지 못하고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참 소란스러운 론스타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환은행이 헐값에 매각되지 않았는가. BIS비율 조작돼 헐값 매각된 것이 드러났다. 외국자본이 국민세금으로 공적자금 엄청 들어간 부실기업, 은행을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기며 되판다. 역차별 없애고 반시장적 규제 풀어야 투자 늘고 일자리 늘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다. 요즘 한 재벌기업 비자금 문제로 떠들썩하다.

    현정권이 이 문제 어떻게 처리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재벌총수일가가 횡령이나 배임, 분식회계를 해 만든 돈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줘도 지금까진 처벌받지 않았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되, 불투명한 경영관행에 대해선 철퇴를 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하는 가장 큰 개혁은 기업들이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활비의 절반을 사교육비에 써야하고, 대학 가서도 취업위해 엄청난 사교육 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한나라당이 변화와 개혁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 분도 있을 지 모른다. 우리가 개혁 세력이다. 제대로 된 개혁으로 젊은 여러분들과 함께 대한민국 미래 만들어가고 싶다.

    최근 TV광고중에 징기스칸이 힘차게 말달리다가 ‘열정’을 싹 뺐더니 양치기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인상깊게 봤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징기스칸 못지 않은 열정과 꿈이 있다. 세계를 바라보며 큰 꿈을 갖길 바란다. 내일을 짊어지고 나갈 분들이고, 여러분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다.

    인생 선배로서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치 있는 일에는 용기를 내 도전하라는 것, 처음 도전하려던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