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펌글) [진중권칼럼] 딴지일보 약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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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딴지일보 약 먹었나?

    황우석 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우연히 ‘딴지일보’에 올라온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딴지일보가 약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니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11월 29일에 어느 매체에 올린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글을 읽으며 이번에는 “아, 총수가 약 먹은 거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 했다.

    몇 십 개국을 돌아다니며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알게 됐다는 총수.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속의 애국주의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 믿어왔는데, 이번에 드러난 그의 투철한 애국심을 보며 그만 덩달아 나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하고 싶어졌다. 딴지 총수가 여행을 통해 익혔다는 국제적 감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월등히 후진 모양이다. 그의 주장을 보자.

    #1.
    “PD수첩은, 2002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결승 헤딩골은 카메라 사각이어서 제대로 잡히지 않아 그렇지 사실은 안정환의 핸들링이었다는 것을 온갖 자료를 동원해 증명해내고 또 손에 닿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안정환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입증한 꼴이다.”

    과학을 스포츠에 비유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본다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스포츠신문도 ‘신문’이고, 스포츠 기자도 기자인 이상, 안정환의 결승골이 사실상 핸들링이었다면 그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런다고 판정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리고 그런 사실을 국익을 위해 대중은 몰라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과학은 스포츠가 아니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결승골이 실은 핸들링이었다고 떠들며 “황금의 손” 어쩌구 하며 그 사실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녀도 선수 생활 하는 데에 지장이 없지만 (그 실수는 그의 것이 아니라 심판의 것이므로), 과학자는 거짓말을 하는 순간 학자로서의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는 할리우드 모션으로 심판의 눈을 속여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몰라도, 과학의 그라운드에서는 그런 짓 하는 선수는 당장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 자격까지 박탈을 당하게 된다. 총수는 이 차이도 모르는 걸까?

    #2.
    “만천하에 황 교수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얻게 된 우리 사회의 이득은 생명과학 분야에 있어 보다 투철한 윤리의식 획득과 그에 준하는 보다 엄정한 프로세스의 확립. 아마도 그쯤일 게다. 그럼 손실은. 황우석 명성에 국제적 흠, 국민들 자존심에 상처, 연구진 사기의 저하 정도 되겠다.”

    이렇게 “대차대조”표를 짜놓고 총수는 묻는다. “PD수첩이 방송하지 않고 황 교수에게 조용히 조언할 순 없었냐?”고 묻는다. 총수의 눈에는 ‘투철한 윤리의식 획득과 엄정한 프로세스의 확립’보다는 ‘황우석 명성’, ‘국민들 자존심’, ‘연구진 사기’가 더 중요해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난자가 과학 그 자체와는 별 관계가 없는 ‘명성’이나 ‘자존심’이나 ‘사기’ 따위보다는 더 소중한 것 같은데, 딴 총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200개의 난자로 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냈을 때에 세계는 두 가지 점에 놀랐다. 먼저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놀랐고, 그에 못지않게 그가 그 많은 난자를 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듣자 하니 이번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수가 무려 1000여개를 넘어선단다. 몸에 위험한 배란촉진주사를 맞으며 그 많은 난자를 기증한 65명 여성의 몸이 ‘명성’과 ‘자존심’과 ‘사기’보다 못하단 말인가?

    #3.
    “우선 연구원 난자. 헬싱키선언, 보편타당하다. 그러나 충분히 자발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경우, 연구원 난자기증 가능하단 것이 배아복제 실험과정에서 우리가 경험적으로 획득한 실험윤리라고 국제과학계에 주장하는 꼴 좀 봤음 한다. 그 주장이 꼭 국제적으로 환영받길 원해 하는 생각은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논리 있다면 헬싱키선언이고 나발이고 우리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꼴 좀 보고 싶어서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획득한 실험윤리”라는 것이 “보편타당”하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닐까? 다른 나라에서 연구원의 난자 채취를 금하는 것은, 연구팀 내의 권력관계로 인해 난자 기증의 자발성이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일 게다. 그 규정을 빗겨가려면 외국과 달리 한국 연구실의 분위기는 매우 자유스럽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알고, 딴지 총수도 인정하겠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 반대다.

    게다가 실제로는 어땠는가? 박을순 연구원의 난자 기증은 사실상 강요당한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PD수첩’ 측에서도 이미 자신의 난자를 기증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박 연구원의 글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가 망가뜨린 난자, 네가 알아서 채워 넣으라’는 압력이 행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헬싱키 선언을 피해가는 데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논리”란 게 있을 수 있겠는가?

    #4.
    “만천하에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여기서 총수는 ‘PD수첩’이 “만천하에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황 교수 자신이다. 그 동안 그는 국민들 앞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 왔던가? 언론들이 황우석 편들어주느라 꼼꼼히 정리해주지를 않아서 그렇지, 이제까지 드러난 그의 거짓말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황 교수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황 교수가 거짓말을 안 하면 된다. 그러더니 총수는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고 이제 제발 황우석 좀 그냥 냅두자. 사람 죽겠다.”

    황 교수가 어디 죽을 사람인가? 이제까지의 행태로 볼 때 그는 끝까지 죽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10kg나 빠진 몸무게를 들고 병원에 입원한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나마 황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언론의 태도가 약간이라도 바뀐 것은, 수염도 안 깎은 모습으로 병실에 누워 그가 연출하는 유치한 수난극을 보고나서의 일이라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5.
    ‘딴지일보’에 오른 인터뷰를 통해 총수는 목하 자신을 변명하는 모양이다. 물론 11월 29일자의 글로 천하의 딴지 총수 스타일이 상당히 망가진 것은 사실인데, 사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냥 “내가 생각이 짧았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마음속으로 인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누가 한 말이더라? “모든 사람이 어떤 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과거에 그들이 그것을 한번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총수와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원천기술”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통해 줄기교는 서서히 배판포교로 진화하는 모양이다. 저들은 음해세력(?)에 맞서 황우석을 옹호한다고 하나, 그들이 지금 열심히 옹호하는 것은 사실 바로 얼마 전에 보여주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일 뿐이다. 누구 말이더라?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6.
    “그러니 이건 경거망동할 사안이 아니다.. 불확실한 정보에 움직이지 말고 차라리 직관으로 판단하라. 그래서 딴지는 다른 모든 언론들이 붕붕 나르며 수많은 기사를 낼 때…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실상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어요. 그 동안..”

    “직관으로 판단하라.” 갑자기 총수께서 개똥철학까지 하시는데, 그렇게 ‘직관’ 믿고 줄 잘못 섰다가 민망해진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모든 이들이 제 ‘직관’을 남발하며 미쳐 돌아가던 시절에, 유일하게 이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지금 딴지가 씹고 있는 ‘브릭’이었다. 그리고 풍자와 해학으로 몰상식한 사회를 도발하던 딴지일보. 총수가 거룩하게 애국질 하는 동안, 딴지가 하던 일을 대신 맡았던 것은 ‘DC의 과학 갤러리’였다.

    총수는 손가락에 침 발라 “똥꼬 깊쑤키” 꼽고 알아서 반성하라. 굳이 이런 일에까지 내 손가락을 써야 겠는가?

    글·진중권(시사평론가·‘SBS 전망대’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