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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이젠 되었다’라고 말할 부모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식이란 하늘이 보내주신 신비로운 존재이며 인생의 희비를 나와 더불어 만들어가는 운명적 인격체일 뿐 내가 자식의 일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자식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판단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를 보내고 체험활동 등을 시키면서 반듯하게 사고하고 결정하는 힘을 기르기를 원한다.
부모가 행복으로 가는 첩경은 출세라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출세하려면 선후배가 이끌고 밀어준다는 명문 대학을 나와야 하고 고시에 합격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면 더 좋고 거기다가 가문의 영광까지 내 자식이 담당한다면 내 인생 살다간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 교육열이 높은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내 몸이 으스러져도 좋다며 이를 악물고 뒷바라지를 했다가 자식이 저만 아는 인간으로 성장한 후에 씁쓸해 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들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돈만 벌려고 애쓰는 부모 보다 마음을 나눌 부모가 필요한지도 모른다.가족일지라도 대화가 단절된 상태는 피차 사막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느낄 것이다. 낮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자기에게 거는 기대가 벌겋고 밤에는 뼛속 깊이 느껴야 하는 자기 능력의 한계에 이가 시릴 뿐인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내 자식은 지금 고통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부모의 품안에서 독립된 감정을 키워보지도 못하고 부모의 뜻에 쫓아 살아왔으므로 어떤 자아와 부딪치면 혼란에 빠지고 자기 좌절을 하는 등 극단적인 정서적 장애를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그 아이는 부모에게 좋은 자녀가 되기 위해 자기 주관대로 산 것 보다 부모의 뜻에 맞추어 성장했으므로 그 아이의 삶은 부모 위주가 된 것이다.
소중한 자녀를 독립적인 감성이 없는 아이로 키워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부모가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면 이 시대가 바라는 인간상이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내가 없어도 내 자식들이 잘 살아낼 수 있는 역량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강현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