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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산타아타 국세청에서 세무감사를 받고나서 가주세무국을
향하여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대여섯 블럭 사이에 있었으므로 금방 도착하여
빌딩안 파킹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입구에서 갑자기 마음의 변화가 생겼어요. 마침 따라오는 차가 없었으므로 돌아나오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족히 열블락을 지나니 샤핑센터가
보입니다. 차를 대고 트렁크에서 모자달린 방수 코트를 입고, 세무감사를
다니는 파란 가방을 비닐 봉지로 꼭싸서 묶었습니다. 그리고 가주세무국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빗물이 신발속으로 들어옵니다.“삼재가 들었네요.”
삼년동안의 세금보고가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그런말이 나왔습니다.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두 부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씨큐리티 가드로, 엄마는 병자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고
있었습니다.“지난해 세금보고할 때 저소득층 세금 환급이 많이
있어서 상당히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기다리던 돈은 입금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달 벌어 그달 먹고 살기도 힘든데 봉급에서 차압을 해가요.”가방에서 고무줄로 묶은 편지 뭉치를 꺼냈습니다.
“국세청과 가주세무국에서 온 편지들인데 어떻게
뜯지도 않으셨어요?”처음에는 봉투를 가위로 깨끗하게 잘랐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봉투를 뜯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열어보았자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냥 잘 모아두었지요”
순간 저는 숨이 멎는줄 알았습니다.
십여통이 넘는 등기 우편물을 열어보지도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니…?
- 삼년전에 세금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 이년전 세금보고에는 소셜번호가 틀리게 써있었습니다.
- 지난해 전자파일을 했는데 국세청에 접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글짜 틀린 소셜번호 때문에 엉뚱한 사람의 융자 탕감액이 수입으로
추징되었지요. 세금보고를 하지 않았고, 틀린 소셜번호를 썼고, 전자파일이 접수가 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 사이로 다른 사람의 정보가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저는 오래 걸었습니다.
마침내 가주세무국 빌딩에 도착하여 대충 빗물을 닦아내면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제게 위임장을 써주고 세금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고객의 심정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그 분들의 마음으로 상황을 잘 설명하여 한번에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수정보고서 삼년치를
앞에 놓고 매니저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녀는 비에 젖으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던 저의 마음을 본 것 같았습니다.
샤핑센터에 차를 세우고 걸어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눈은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진
가족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수정 세금보고서와 컴퓨터 기록사이를 대조하는 사이사이에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습니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로 햇살이 내리고 무지개가 떠오른다는 얘기를 했습니다.“세상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아요”
제가말했습니다.
미처 마르지 않은 빗방울 하나가 이마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크리넥스를 서너장 잡아올려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세상이 가끔은 공평할 때도 있지요..오늘 우리 두사람이 한 가정을 평화롭게 만들었군요.”
차압을 중지한다는 편지에 멋지게 사인을 하며 그녀는 크게 웃었습니다.
이영실 공인세무사
프리미어 세무그룹대표
미주한인 공인세무사협회 회장
714-733-3555
- 삼년전에 세금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