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 엘진 베일러에게 수표를 쓴것입니까?’
이름없는 소규모 한인경영 회사에서 유명 운동선수들에게 수표를 발행했습니다. 은행에서 확인전화를 합니다.
‘맞아 그 엘진베일러야’
너무도 자랑스럽게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행복한 전화를 받곤했습니다.
H스포츠 용품 제조회사와 로열티 계약을 한 제리 웨스트, 얼빈 매직 존슨, 팀 던컨 등 사십여명의 유명 운동 선수의 파일 관리가 저의 주 업무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저에게 그와 비슷한 과제가 주어진다면 더욱 재미있게 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스포츠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카림 압둘자바가 매니저를 따돌리고 저에게만 살짝 해준 친필 사인 모자도 집안 어디에 두었는지 몰랐을 정도입니다.
H회사에 유명 운동선수들을 연결해주었던 스포츠 변호사는 연예인 수준입니다. 뉴욕에서 남가주에 있는H 회사에 방문을 할 때는 공항에내려 최고급 승용차를 렌트합니다. 제가 아는 벤즈등의 고급차가 아니고 이그조틱 스포츠카 라고 합니다. 옷을 입은 모양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회의 내내 저는 속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식사도 아무 식당에서나 하지 않습니다. 정장을 한 제 모습이 무지하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식당에서 벌받는 기분으로 앉아 있곤 했습니다.
유명 선수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농구 저지등이 유행했던 2천년도 초였습니다.
H 회사 디자인 팀에서 시그니처 시리즈를 내놓았습니다.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선수들과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디자인의 특허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의 이름과 사인이 붙은 저지, 가방, 벨트, 버클등을 만들어 팝니다.
농구 저지 하나의 가격이 9불 입니다.
H 회사 원가는 60불 입니다.
도매가격은 120불 입니다.
소매가격은 300불 입니다.
여기에서 원가의 개념, 진짜와 가짜의 개념이 생겨납니다.
한국 옷공장에서 레이블을 붙여 포장을 하고 미국 H 회사에 남품하는 가격이 9달러 입니다.
거기에 비행기 운송료, 통관비용, 시내 운송비용이 추가됩니다.
또한 스포츠 변호사가 이틀간 방문하여 쓴 5만불을 일년 전체 매출 숫자로 나누어 포함 합니다. 선수들에게 주는 로얄티 계약금이 20프로 정도 입니다. 세일즈 퍼슨에게 나가는 커미션이 10 퍼센트 입니다. 예를 들어 저지 하나를 120불에 팔면 로얄티는 24불, 커미션은 12불입니다. 9불에 만들어진 옷 하나에 지불되는 비용이 51불이 되어 원가가 60불이 됩니다.
백화점에서 H회사의 물건을 팔아 남기는 이익은 말 그대로 엄청나지요. 생산원가 9달러가 소비자에게 300불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매달 선수들에게 지불하는 로얄티가 수십만불에 달할때 회사의 이익도 엄청났습니다. 영업부에서는 그야말로 돈이 굴러다녔습니다. 일년치의 연봉을 한달 보너스로 받아갈 정도였으니까요.
뉴욕 타임즈에서 H 회사의 저지와 가방을 기사화 했습니다. 텔레비젼 쇼프로에서 시그니처 시리즈 저지를 배경으로 걸어놓았습니다. 주문이 밀려듭니다. 그 기세를 몰아 영업부에서 NBA, MLB 와 10년의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유행상품은 유행이 지나면 그만입니다.
그 기간을 잘 계산해야 돈을 최대한 벌어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시작과 끝의 시기를 정확하게 잡을 수 없으니 문제이지요.
그러나 상황판단의 능력과 경험등을 적용하면 대체적인 예측이 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미련때문에….’
노래 가사가 아니더라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시기를 놓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설립자와 투자자들은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경제의 불황이 시작되면 비싼 소모품은 팔리지 않는다.
둘째, 다른 회사에서도 곧 우리 방식을 카피한다. 물론 독점 계약을 맺었지요. 그러나 시장의 원리는 늘 엉뚱한 곳에서 뒤통수를 치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시그니처 라인을 축소하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전에 불황은 이미 닥쳤습니다.
주문이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과외로 번 돈이므로 철수만 하면 되었습니다.
운동 선수들과의 로얄티 독점 계약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매출에 대한 보상이므로 매출이 없으면 지불도 안하면 되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NBA 와 MBL 와의 계약이었습니다. 매출과는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지불되는 계약금이 감당할 수준이 아닙니다. 그 계약 대로 해야 된다면 회사는 파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인 변호사에게 이 문제를 의뢰 했습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계약서에는 아무런 하자도 없습니다. 질 것이 뻔한데 일을 맡을 수는 없지요.’
‘그러면 회사를 파산시키라는 겁니까?’
‘아니요. 최고 재무 담당의 자격으로 편지를 보내세요. 그냥 솔직하게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계약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변호사를 고용한다면 더욱 반감을 살 테니 회사 차원에서 협상을 하세요.’
직원들에게 옷, 가방, 벨트등을 몇개씩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모두 NBA 와 MLB 로 실어 보냈습니다. 솔직하게 회사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파산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며칠후 뉴욕에서 날아온 감사팀이 재고 조사를 했습니다. 통관서류와 재고량 그리고 이익 계산서들을 살펴보고 돌아갔습니다.
며칠후 계약파기를 해준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는 언제나 어려움이 닥쳐올 것을 예비해야하고, 내 가까이 정직한 사업의 파트너를 두고 있으면 복을 놓치지 않을거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영실 (Diane) 공인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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