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훈계

  • #84557
    none 173.***.57.254 3088
    얼마전 일곱살인 큰아이가 다른 집에서 놀다가 레고 조각 3개를 가져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일 구석에 쳐박혀 있던 것을 주워왔다고 했지만 분명 남의 집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집어온 것이기에 그건 훔친 것이니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세가지중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1. 그냥 별거 아니니 갖고 도둑이 된다.

    2. 도둑질 한 것을 인정하고 돌려주며 사과를 한다.

    3. 돌려주되 적당히 둘러댄다.  (집에 와보니 주머니에 있었다. 등등..)

    돌려주며 부끄러울 꺼라고 앞으로 다른 아이들이 자기랑 안 놀아줄꺼라고 걱정을 하기에 내심 3번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선뜻 2 번을 선택하더군요.  그날 밤 저도 잠을 설쳤습니다.  아이가 맘에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그냥 내가 돌려주며 3 번을 택할까…

    다음날 교회에서 예배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그집 부모를 식당에서야나 볼 수 있기에 아이에게 놀이터에서 놀고있으라고 나중에 그집 부모 만나면 부르겠다고 하니 안된다고 먼저 사과부터 하고 놀겠다고 하더군요.  마침 지나가는 그집 엄마를 만나 레고 조각을 건네며 아이를 불렀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고 “I’m sorry to steal the toys” 하고 모기만한 소리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집 엄마는 그냥 갖아도 되는데 뭘 그러냐고 하며 아이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토닥여줬습니다.

    그날 밤 잘한거 있으면 포인트 주고 잘못한거 (놀고나서 뒷정리를 안했다거나 동생과 다퉜다거나…) 있으면 감점을 하는 아이의 포인트 기록지에 비록 훔친거는 잘못한 것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사실대로 얘기하며 사과를 한 것은 옳은 일이고 용기있는 행동이기에 이번만 특별히 보너스 포인트를 주겠다 하며 포인트를 줬습니다.  (포인트 쌓인 것으로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직접 고르도록 해서 사줍니다)

    언성을 높여 왜 그랬냐고 따끔하게 야단을 치면 다음부터는 야단맞는 것이 겁나서 사실대로 얘기를 안할까봐 내딴엔 차근차근 설명을 하며 난 니가 정직한 아이이길 바라는데 이러면 실망이다 하면서 사과를 하게끔 몰아갔고 사과를 하며 부끄럽겠지만 그것은 니가 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결과이니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는데 잘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 tracer 216.***.0.72

      아이의 용기가 아빠(혹은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인터넷에서도 어떤 아저씨가 칭찬해 주더라고 전해주세요. :)

    • 고백 108.***.32.80

      나의 어린 시절..

      그날따라 그 놈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넘 집에서 놀다가 몰래 볼펜 5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아차 그중에 3개 집에서 동생하고 놀다가 바닥에 떨어졌고 엄마가 이상한 눈총을 나에게 쏘아대었다. 그 때에 내 머리에는 이태까지 쌓았던 내 점수가 오버랩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요즘 엄마한테 혼나는 일이 많은데.. 엄마한테는 나의 걱정꺼리를 말하면서 다 큰 어른들도 못하는 2번을 선택해 버렸다. 어짜피 남들이 주로 선택하는 1. 3번은 별 감정을 불려일으키지 못하니… 다행이도 소풍을 가서 그 놈한테 하지 않고 아줌마한테 최대한 비굴하게 사과하였다. 아줌마도 이해하는 척했다, 마침 집에 가서 씹을 오징어를 낚은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인간의 생존방법 중에 거친 것이지만,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짐승들의 평범한 삶의 방식이다.

    • 보헤미안 198.***.159.18

      대부분 거쳐 가는 일이죠.

      근데 요즘은 집에서도 상/벌점제를 사용하나요?
      아이들의 자신을 평가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조금 우려되는군요!

      • none 173.***.57.254

        저도 그부분이 좀 염려되기는 했는데 포인트 방식을 도입한 이후로 밥때 식탁으로 부르는 거나 잘 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하는게 굳이 포인트 얘기를 안해도 잘 먹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한데 방법을 모르겠네요. 대신 “의도”가 좋은 것이었으면 “결과”가 않좋게 되었어도 상점을 주는 것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 JH 198.***.159.18

      원글님에서 사용하신 방법은 저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딸은 아직 어려서 몇 년이나 지나야 사용할 수 있겠지만요…
      다만, ‘도둑’이라는 단어보다는, ‘친구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계속 지니게 된다’ 등으로 조금 강도가 약한 어휘가 사용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매일매일 느끼는 거지만, 훌륭한 부모는 커녕 적당히 좋은 부모 되기가 정말 힘듭니다…

      • none 173.***.57.254

        ‘친구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계속 지니게 된다’ 라는 완곡한 표현을 생각 못했군요.
        운전중이었던 데다가 제가 영어가 좀 짧아서인지 돌려서 부드럽게 말하면
        아이가 더 헷갈려하는 경향이 있어서 너무 강한 표현을 썼네요.

        • JH 198.***.159.18

          원글님의 상황을 모른채 제안을 한 제가 주제넘었죠.
          제가 운전 중이고,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 none 173.***.124.175

            주제넘다뇨… 아닙니다. 운전중에 갑자기 그 사실을 알게되어 저도 당황했고 꽤 많이 온지라 차를 지금 돌리면 밤늦은 시간이고.. 등등 제 머릿속도 복잡해서 좋은 표현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죠. 좋은 표현 배웠습니다.

    • 가족 129.***.183.124

      용기있는 가족이십니다. 제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릴때 항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느 가족이 아이들과 연속해서 우리 집을 방문하면서 똑같은 부품이 연속해서 없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말 별거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매주 보는 가족이었는데 그 아이들보다도 그 부모를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좀 꼼꼼한 부모도 있고 또 대범한 부모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none 173.***.124.175

        지금 세상이 어떠하더라도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좀 더 밝고, 상식과 정직이 통하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제 부모가 된 우리가 나름대로 옳은 것이라고 믿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겠죠. 저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성공”도 중요하지만 “정직”과 “성실”을 져버리면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남들보기엔 성공일지 몰라도 성공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 가족 129.***.183.124

          훌륭한 부모님께 잘 배우셨고 또 그대로 교육하시고 계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배우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또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 지나가다 66.***.54.196

      어느 유명한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이가 옳고 그름을 알고 정의를 알며 크게 되길 바란다면… 어려서 자기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게 하라.
      아이는 아빠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두고두고 고마워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