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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가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Early Decision으로 입학하게 될것 같습니다.
고교생 자녀를 둔 미국학부모들에게 이름만 되면 대다수 사람들이 알만한 대학입니다.
그리고, 사립대학 입니다. 학비가 상당히 비싸고요, 사실 학비문제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 집니다. 제 눈치를 적쟎이 보고 있는 우리 아이는 저에게 슬며시, 이미 학비는 물론 장학금 제안까지 받아 놓은 주립대학에 그냥 갈까 하면서 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곤 하는데, 저는 그 녀석이 그 명문사립대학교에 꼭 가고 싶어하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30여년전에, 저 또한 한국의 SKY대학중의 한곳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고, 당시 집안사정이 뻔한 것을 잘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제자식처럼 (너무도 똑같이)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 애를 태우곤 했지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형편도 어려우신데, 빚을 내서 제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졸업을 하였고, 미국유학까지 와서 박사학위 받고, 제분야에선 세계 탑클래스에 드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지금과같은 비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 기업사주나 대주주의 자녀가 아닌이상, 그 누군들 직업의 안정성을 유지 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명문대학을 졸업해도, 심지어 박사학위증을 손에 쥐어도, 직업은 더이상 안전치를 못하고, 저또한, 그동안 제 프로페셔널 경력에 쏟아온 노력으로 작은 구멍가게라도 차라리 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불안감에 치를 떨지 않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명문대 학위증및 기타 전문직 학위증등등은 쓰레기이며, 돈낭비이고, 투자대비 회수율이 아주 형편없는 어리것은 투자라고 누군가 저에게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그분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단, 그것은 완전히 경제적 투자마인드에 제한된 동의 일뿐이지요.
마치, 고 정주영 회장이 “담배를 왜 피우나? 그것 피우면 배가 불러지는 것도 아닌데..” 라고 했다고 하는데, 배고픈거와 담배 피우는게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는 정주영 회장에게 동의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과연 “먹고사는 문제”에만 연관 시켜 바라 볼 수 있는냐 하는 의문점을 제기해보면, 소위 재벌총수에 해당하는 정주영씨의 사고방식에 전반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게지요.
인간이란 배고파도 밥을 굶을 수가 있고, 배가 불러도 밥을 먹을 수 있는, 도저히 온존하게 투자대비 회수율에 기반한 경제학적 시각으로만 재단되지 않는 존재이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는 인간들과 이들이 서로 엮여지면서 오묘하고 복잡하기도 하면, 때론 경탄해 마지 않는 인간들의 삶을 제대로 아주 깊게 이해하려면, 역시 학비가 비싸더라도, 좋은 교수와 풍부한 인류의 지식및 경험이 농축되어진 명문대학에 빚을 내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아이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 수 있건 없건, 그 아이의 인생에서 주립대나 커뮤너티 컬리지 또는 고교졸업장만으로는 도저히 접해 볼 수 없는 훌륭하면서 우아하고, 깊은 통찰력을 접해 볼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확률이 높아진다는 미국명문대학교 생활은, 결코 쉽사리 경제적 시각으로만 바라보기가 쉽지않다는 것이지요.
또한, 명문대학을 나왔을때,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부여되어지고 평생 지니게 될지도 모를 Pride는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다지 쉽게 가져볼 수 있는 경험이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Pride는 학벌의식이나 지나친 자만감과는 거리가 멀고요. 대학졸업후에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Pride에 준하는 결과물들을 내어놓고 싶어하는 인생길 동력의 주요인으로도 작동되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은 일반화되기 어려운 순수한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두며,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또는 학력이 전혀 없어도, 누구못지 않은 Pride를 지닐 수 있으며, 상당히 훌륭한 인생을 살다간 수많은 사례들도 있다는 점을 저는 분명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자녀가 미국에서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저는 제 허리가 휠지라도, 보내겠다는데 한표 입니다.
이러한 저의 행위는 제가 수십년전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때, 저희 아버님이
“지게짐을 져서라도 너는 대학에 다니게 한다”라는 그 숭고한 결심에 대한 제 Pay Back을 제 자식에게 행하여만 하는 당위성이고요, 제 자식도 제 손자가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그 녀석 또한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Pay Back을 그때에도 서슴없이 할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결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