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다는 사실

  • #84198
    eroica 98.***.187.97 4688

    사랑했다는 사실

    이생진

    사랑에 실패란 말이 무슨 말이냐
    넓은 들을 잡초와 같이
    해지도록 헤맸어도 성공이요
    맑은 강가에서
    송사리같은 허약한 목소리로
    불러봤다 해도 성공이오
    끝내 이루지 못하고
    혼자서 맘 타는 나무에 매달려
    가는 세월에 발버둥쳤다 해도 성공이오
    꿈에서는 수천번 나타났다
    생시에는 실망의 얼굴로 사라졌다 해도 성공이니
    기뻐하라
    사랑했던 사실만으로 기뻐하라

    ==

    잊혀지는 것 – 김광석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 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 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서던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 이란 말도 없이 떠나갔었지
    숨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이제는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 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 ISP 12.***.168.229

      모든걸 솔직하게 다 불어 버리는 요즘 시인들 같지 않아서 참 좋은것 같습니다.

      시란게 이렇게 맛이 있어야지요.

      좋은시인 알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eroica 98.***.187.97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SP님

    • DK 167.***.38.118

      김광석… 오랫만에 들어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대학로에서 라이브공연할때 갔었는데 작은 몸에서 참 파워풀한 소리를 만들어 내던 소리꾼이었는데 참 안타깝게 갔지요. 좋은 노래가 참 많고 가사도 좋지요. 1절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속에 만족하던 우리” 와 2절의 “차가운 눈길속에 홀로 서는 것을 배우며” 가 대조가 되어 다가오네요.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DK 167.***.38.118

      와이프를 저런 투명한 눈길로 바라보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녀에게 따스한 눈길을 주어야 겠다는 결심을 해보게 됩니다.

    • Lighthill 68.***.160.21

      김광석 노래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는 처음 들어보네요. 그래도 김광석 특유의 목소리와, 그만의 음악 색깔이 그대로 묻어 있는 노래가 듣기에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