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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01:20:01 #84127tracer 98.***.201.121 3381
.님은 “왜” 근본적으로 우리를 통치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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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223.144 2009-10-2402:53:43
성경에 대해서 잘 아실거지만, 히브리서 11장 1,3절을 영어로 옮겨보겠습니다.
1.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2.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여기서 바울은 믿음을 모든것에 앞서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보이는것(꼭 시각적인 것만 말하는건 아니겠지요)을 넘어선 안보이는것을 다 통괄해서요. Tracer님과 제가 배워서 알고 있듯이 또는 물리계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듯이, 보이는 현상학적인 증거, 즉 과학적인 증명과 증거에 의해 세상을 믿는다고 바울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이 바울의 깨달음이 공명으로 같이 울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Trsacer님은 예수님이 말하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알게 되거나 의문을 가지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모든것이 제 영혼의 존재를 깨닫게 됨으로써 저의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전엔 영혼은 사전적 단어로만 있는 것이었지, 내가 이미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이나 감성등과는 다른,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영혼의 존재를 압니다. 그걸 알게됨으로써 하나님의 믿음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진리일수밖에 없다, 진리이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제 영혼은 제 육신과 더불어 이미 죽어버렸을수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삶의 희망도 없고 공포의 어둠속에 있을때 예수님이 유일한 소망이고 생명이라는 사실이 그토록 뚜렷한 빛이 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이 말한대로 그냥 믿습니다. 그 믿음이, 제 육신의 생명과도 제 영혼의 구원에도 직결됨을 저는 확실히 경험을 했거든요. 좀 이기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제 삶이 더이상 의미도 없음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은 저를 위해서라도 계셔야 합니다 (좀 처절할때도 있습니다. 말꼬리잡으시면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계심을 또 믿습니다. 이런얘기, 누가 무슨 정신병자 얘기 취급을 해도 뭐 어쩌겠습니까. (제 답글이 tracer님의 두뇌속의 믿는 사람의 분류의 카테고리에 어떻게 정리되어들어갈지 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뭐 하나님이 꿈속에서라도 얼굴을 보여주시거나 해서 믿는건 아닙니다. 근데 제가 이런 믿음을 죽을때까지 강하게 가질거라는건 저도 확신 못합니다. 그간 제 살아온걸 보면 제가 저 자신에게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할수 있는것들이 그리 많지 않네요. 근데, 예수님이 유일한 소망이요 생명이요 구원이시라는 믿음만 망각하지 않으면 항상 다시 예수님앞으로 돌아올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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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24.***.170.232 2009-10-2412:32:43
우선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종교얘기를 하시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드립니다.
.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님은 왜 기독교(또는 캐톨릭)을 선택하셨나요? .님의 말씀이나 유태교나 이슬람교의 핵심이나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유태교나 이슬람교을 선택하지 않고 기독교(또는 캐톨릭)을 선택한 이유는 이 종교를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아마도 님이 기독교(또는 캐톨릭)를 접할 기회가 전혀 또는 거의 없었고 오직 유태교나 이슬람교만을 접하셨다면 유태교인이나 모슬렘이 되지 않았을까요? 저의 이런 가정에 의하면 종교를 접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무신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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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223.144 2009-10-2413:51:51
24.13.170.*님,
“.님의 말씀이나 유태교나 이슬람교의 핵심이나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르게 이해하신겁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겁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랑과 화해됨을 믿게 되는 거구요. 예수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예수님만이 유일한 통로임을 믿는겁니다. 유태교나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부정하거나 선지자의 하나로 말할 뿐이지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가 틀리다 맞다 제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닌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예수님을 믿을뿐이구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요한복음 뒷부분(13-17장, 특히 17)에 십자가 박히시기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믿습니다. 알라신이 예수님이 제게 주는 것처럼, 사랑이나 위로를 주는 신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의미가 그래서 제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가톨릭에서는 “(불쌍한 영혼들을 향한) passion of sorrow” 라고 하더군요. 어느 분이 유식하게 정의하신 “실패한 혁명가”라는 세상적인 해석은, 부활사건을 통해서 극복됩니다.
종교(예수님)를 몰라서 (예를들어 피지섬의 오지라든가 사는 원주민) 죽기까지 접하지 않는 케이스는 제가 뭐라 말할수 있는 게 아닌거같습니다. 그런 영혼을 다 사랑하시기때문에 예수님이 이방인과 땅끝까지의 선교와 전도를 지상과제로 부여한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제가 어두움에 있을때 그 오지의 원주민들처럼 예수님을 듣고 알지도 못했다면, 예수님을 믿을수는 없었겠고 무슨 주술사에게 도움을 청해보긴 했겠지요….그런데 제가 그 차이를 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내가 살아서 그런 흑암에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까….그래서 예수님을 믿을수 있다는것이 큰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마음도 거기서 오는게 아닐까 추측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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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r 98.***.201.121 2009-10-2415:34:12
.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을 믿게 된 계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게 되었나요? 그 “어떻게” 아는가가 제가 질문드리는 핵심입니다. 영혼의 존재가 보편적으로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납득이 갈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인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faith는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일 따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이것은 진리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깨달음일 뿐이지요. 혹은 극단적인 경우, 자기 기만이나 망상일 수도 있구요. 아시다시피 인간의 감각과 두뇌작용은 그렇게 믿을만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설사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왜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라는 결론으로 가게 될까요? .님이 이슬람이나 힌두교 권 지역에서 사는 분이시라면 영혼의 존재가 비시누나 모하메드가 절대적 진리임으로 결론지으시지는 않으셨을까요? 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왜 성서에 따른 바울의 믿음을 가지시는지요?
이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님의 믿음에 대한 진실성과 간절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님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믿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조그마한 가능성을 두고 계시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은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을 모르고 죽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지 않은 분이시군요. 이에 동의하시나요? 하나님이 그 오지의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신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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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223.144 2009-10-2522:58:54
tracer님….,
이런 질문들은 사실 하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어느 정도의 프러스트레이션이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객관성”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믿음이 객관적이고 그것이 과학적이고, 그렇게 증명되었음을 내가 진리로 믿는게 아닙니다. 중요한것은 제 마음속에 그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아주 주관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관적인 믿음의 공동체가 있고 그 믿음을 공유하고 있고 주안에서 다 하나고 각각이 지체라고 믿는 사람들 있다는게 또한 중요한것이죠. 다 주관적인 믿음안에서 그 지향이 예수님께 있는 지체들에서는 어느정도 공통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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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er님은 자꾸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간략하게 제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는 증거입니다. 과학적인 증거가 아리라, 개인적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리다라고 말할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간증이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절대적인 진리임을 깨닫게 하고 내가 믿는 진리를 믿게 하는 파워는 제게 없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할때에 ‘가르침’을 주셨지 ‘설득’ 하거나 ‘논쟁’을 한게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할때에도 말씀을 그냥 전하라고만 하셨습니다. 거절당하더라도 설득하려 미련갖지 말고, 그냥 신발의 먼지를 탈탈 털고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셨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자기기만이나 망상이어도 좋습니다. 그만큼 그 가르침에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인생의 진리(객관적이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가 그 안에 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자기기만이나 망상이라는 말 자체가 상대적인것이고 주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난할때 많이 쓰는 단어들이지요. 제게는, 예수님이 진리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것을 깨달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라는것이 “사실”이다라고 제가 앞에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이미 사실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도 안되는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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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tracer님 말씀대로 모하메드가 비시누(힌두굔가요?)가 절대적 진리라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게는 제 믿음이 절대적 진리라고 믿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다른 믿음에 대해서는 “so be it” 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믿음을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표현”할(네가 틀렸다라고 논쟁이나 설득이 아니라)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퍼스널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그 표현을 통해서 알게 될 수도 있겠지요. “왜….입니까” “왜 그렇게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이미 제 경험을 대충 말씀드렸습니다. tracer님에게 제 믿음을 알도록 설득하려는 아무런 어잰다도 제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걸 압니다. 3 년전에 어느 누구도 어떤 친한 지인도 저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몇번, 아는 형님으로부터 그 전에 교회에 강제로 끌려간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윤형주씨 콘써트가 교회에 있다고 해서 추억의 노래들을 듣고싶어서 마지못해 가봤는데, 찬송가만 부르시더군요. 중간에 화장실간다고 하고 속으로 욕하면서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제가 tracer님을 객관적인 믿음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tracer님이 종교와 종교역사 사회적 관점 등등 더 많이 아실텐데, 이런것을 저와 말씀하고자하시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영혼의 깨달음이 내 마음을 예수님께 연 계기가 되었고, 내 마음을 열고나서 많은것을 배웠고 많은것을 경험했습니다. 제 삶 자체도 하나님이 안계시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구요. tracer님이 앞서도 말씀하셨고 전도서에도 반복해서 말하지만, 인생이 얼마나 하챦고 허무합니까. 저는 우주에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밤하늘만 보면 그 무한한 우주에 저 자신이 너무나 작아지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종교적인 어떤 깨달음이 있어서 느낀게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어린애들마저도 그 사실은 압니다. 다만, 거기서 더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 나아가는것이 사람마다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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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의의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하루하루 사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 깨달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무한한 공평하심의 능력과 은혜를 믿을 뿐입니다. 너무 무한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내가 당한 억울함과 여러가지 세상속의 불공평함이 다 어떤식으로든 보상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 못한건지에 대한것도 객관적으로는 저는 잘 모릅니다 (신학자들이 많이 다루는 문제겠지요.). 저는 그냥 제가 죽기전에 예수님을 알게 되어서 그것을 제 개인적으로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 은혜를 알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은혜없는 어둠 (죽음의 그림자)을 주관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tracer님은 이성과 객관성을 자주 말씀하시는데, 믿고 안믿고는 이성의 능력이나 IQ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삶의 목적과 지향이 좀 다를 뿐이지요.
Rick Warren목사의 얘기중에, 지향방향이 프로그램된 보우트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쪽으로 가도록 프로그램된 보우트는 아무리 사람이 핸들로 남쪽으로 꺽어도 결국 나중에는 사람의 팔 힘을 이기고 북쪽으로 향하게 된다는….사람도 이와 같아서 어떤 습관을 바꾸려 하기 이전에 지향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무슨말이냐하면, 미로에 갇힌 쥐들에게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모든 두뇌활동의 수단이 이성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미로의 통로가 몇군데가 있어서 그 입구마다 다른 종류의 고기를 놓아두었다 한다면, 쥐들마다 취향이 달라서 다른 입구를 냄새로 찾아가겠지요. 지향은 다르지만, 이성은 역시 그 지향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성이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지향을 이루는 수단으로 작동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는 사람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결국 살아가는 지향이 무엇인가가 이성을 지배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행복을 지향한다고 하더군요. 다만 행복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모르니 돈 명예 섹스 마약 등등에서 다 헤메는 것 아닙니까. -
. 67.***.223.144 2009-10-2600:17:16
그런 의미에서, 성 오거스틴의 다음 고백이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rest in You, Lord” -
tracer 198.***.38.59 2009-10-2614:05:48
설명 잘 들었습니다. 성의있고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다른 신자분들과의 대화보다 더 생산적이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동문서답이나 막무가내의 태도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님의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그 공동체 안에서 진리로 통용되지 그 바깥에서는 설득되기도 어렵고 보편적인 진리로 주장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몇가지 질문들이 더 생깁니다.
1. 님은 다른 기독교인들이 간증하는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으십니까? 아니면 어떤 근거로 어떤 간증은 믿으시고 어떤 간증은 믿지 않으시는지요? 그것이 객관적 근거가 아니라면 어떤 간증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 위에도 누차 말씀드렸지만 님이 기본적으로 공평하시고 정의로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왜”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그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성서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를 가지고 계신지요?
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은 사실의 판단 여부와 그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종교 이외에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만을 절대적으로 근거로 하시는 다른 분야가 또 있으신가 하는 점입니다. 왜 일상 대부분의 믿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분들이 종교 관련 믿음에서만 예외를 가지는지에 대한 저의 궁금증입니다. 님처럼 종교적 믿음이 논리와 객관성에 부합하지 않는 특별함을 지니는 것을 아시고 인정하시는 분께서 그러한 믿음을 굳건히 가지시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도 머리가 나쁘거나 이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연구결과를 봐도 그렇구요. 하지만, 종교나 영혼과 같이 초자연적인 사실들을 믿는 것과 제시하는 근거들이 비이성적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망상이라는 단어를 님을 공격하기 위해 말씀드린 점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님의 경험이나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씀이고, 님도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가 궁금했습니다. 님이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혹시 틀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계신지요?
망상의 국어사전 의미입니다.
망상:
1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 ≒망념(妄念).
2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 믿음으로, 몽상 망상·체계화 망상·피해망상·과대망상 따위가 있다. -
. 67.***.223.144 2009-10-27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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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tracer님의 질문들이 나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는 됩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제 성격이 아집과 고집이 강한 성격이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데, 제가 좀 patience가 없는 편입니다. 그렇더라도 아마 소통이 된다고 느끼시는 이유는, tracer님이 저와 어떤 성격적인 성향(서로간에 잘 알수는 없지만)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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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는 없습니다만, 제 주관적인 믿음안에서는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말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게는 그냥 절대적일 뿐입니다. 아마 색안경으로 예를 드는게 좀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어떤 사물이 있을때 사람마다 제각각 색안경(세상을 보는 관점)을 쓰고 보는것이지요. 빨강,파랑,노랑….뿌연 안경,….까만 안경. tracer님은 냉철하고 차가운 이성의 관점으로 보시려 노력하니 파란안경으로 합시다. 믿는 사람은 뿌연 안경 (그냥 색깔의 선택도 내 관점입니다). 왜 뿌연 안경인고 하면, 아무도 하나님을 제대로 볼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제각각 쓰고 있는 베일로 비유를 하쟎아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내 눈앞에 가리워진 베일이 하나씩 벗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란 객체는 절대적인데, 보는 주체에 따라 다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리는 뿌연 안경을 쓴 사람사이에서는 그래도 좀 보편적으로 통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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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나니, 별 신기하고 이상한 간증도 다 믿어지더군요. 사실은 간증을 통해서도 믿음이 확고해지기도 합니다. 성경속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를 믿는데,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데, 오늘날에 치유의 기적(대부분의 간증이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완전한 믿음이겠죠? 그렇더라 하더라도, 저는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간증을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필터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암의 치유같은것은 당연히 의사의 소견이 있어야 하겠지요. 어떤 간증은 너무 희안하고 상상외라 믿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간증도 있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별로 눈이 뜨여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사람도 있거니 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니 모든 간증을 다 믿는것은 아니고, 다만 어떤 경우는 그 사람의 믿음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 삶 자체가 기적이다, 숨쉬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라고 말한다면, 숨쉬는것 자체가 사실 기적이 될수는 없지요,,,너나 나나 다 숨쉬는데… 그런데, tracer님도 그것이 기적이라고 수긍할 수 있지 않습니까. 깨달음의 정도, 믿음의 깊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죠. 어쨌거나, 저도 (보통은 소소한) 간증에 대해서는 필터링을 하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초자연적인 간증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다 믿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하룻밤사이의 암의치유나 이런것은 현대적 증거자료 (X-ray등)가 있다면 믿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권능자체에 의심이 있는게 아니라, 그 권능이 이 그 사람에게 왜 나타났느냐에 오히려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내 믿음의 판단 근거를 뭐라 설명드리기 곤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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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성서이외에 다른 이유를 말하기가 곤란하군요. 내 머릿속에 성서이외에 다른 어떤 신의 개념이 별로 형성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원래 믿지않을때는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었고, 스피노자의 자연신이라는 개념(자세히 알지도 못하지만)이 좀 받아들이기 쉬웠드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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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내 일상생활을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프로그램일 외에는 제가 객관성 합리성을 따지는게 없다는 결론입니다. 잠자는거, 밥먹는거, 미팅한거(이때만 좀 말을 실수하지 않고 조리있게 해야하니까 합리성을 좀 따지게 되네요) , 몸이 근질근질하고 날씨도 좋은데 햇볕좀 쐬고 싶어서 일도 안하고 강으로 수영하러 간거(물이 이제 제법 차가워져서 온몸에 빨간 반점이 생기더군요. 전혀 비합리적), 그리고 아는사람에 전화하는거, 기도하는거, 음악듣는거,….등등. 운전할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어디로 갈건지 방향을 정하고 하고, 나머지 다 생각해도, 비합리적인 욕구(desire)에 의하여 한 행동들입니다. 잠을 자고 싶어잔게 아니고, 잠이 오니까 내일을 위해서 자야하구 (합리적인가요?), 밥을 배고파 먹어야 하는데 요리를 잘 못하고 사먹는건 싫으니까 간단하게 빨리 할수 있는 요리를 찾아야 하구 (절대로 합리적이지 못한데?) 노래를 듣고 싶은데, 크리스천 뮤직이 내 맘을 편안하게 해주니까, 크리스천 음악방송국 틀었는데, non-크리스천음악들이 요즘 많이 나온관계로 방송국에 이메일 보내 “정중하게 청취자 하나 잃었소”하고 말해주고 (답장이 곧바로 오더만요, 경제가 안좋아져서 어쩔수 없다고…합리적인가요?), 어느 아줌마가 미국남편에게 억울한 일 당해서 도와줄일 없나 전화통화해보고 (합리적인가요?)…tracer님 질문에 답을 마냥 미룰수 없으니 귀챦더라도 답하기로 하고 (합리적인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질문들 감사드립니다.)..전 원래 합리적이지도 않고, 머리쓰기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합리적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무슨 의민지 모르겠어요.
내 생각엔 내 이 모든 행동을 좌우한건 그냥 내 욕구와 마음의 평안, 어떤 희망, 소망 그런것들입니다. 다만, 어느 길로 가야지 좀 차가 덜막힐까, 기름값이 덜들까, 곧 월말이니 내일은 빌페이를 준비해야 겠네,,,이정도 생각은 하고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합리성하고 관계가 있나요?. 그냥 삶의 한 과정들일 뿐이죠. 삶을 놔버릴 순 없으니까.(일부러 의도한바는 없는데, 좀 cymical 하게 들리면 죄송합니다.)<>
==>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맞다 틀리다라고 하기 보다는, 저는 인간의 연약함, 제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믿음에서 떠날 가능성은 인정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해서 떠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desire 와는 다른,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desire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이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 피해는 주지 않는것 처럼 보이는데, 내 마음속엔 참 더러운 desire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결국 나자신을 죽이더군요.)들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들을 통해서 계속 보여주는 것이죠. 홍해를 가른 기적으로 출애굽하고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모습들, 이방신을 섬기는 모습들, 하나님의 기사와 은혜를 결국에는 망각하는 모습들….이게 다 우리들 믿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 있다고 봅니다. 내 자신안에서도 매일같이 줄다리기가 계속 되고 있구요. 어느 목사님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 대처하면 믿음을 강화시키는 세가지 문제가 있는데, 1)죽음의 문제 2) 죄의 문제 3) 고난의 문제라고 하시더군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5) 이 말씀을 깨달으면, 내 마음속에 줄다리기에서 내가 왜 예수님의 힘으로 승리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사망이란 육신의 사망을 포함할수도 있고,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영혼의 사망을 의미합니다.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이 3가지 문제가 제가 예수님을 영접할 무렵에 동시에 터졌었습니다. 인생이 苦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된 시점이었죠.
tracer님에게는 사실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 그냥 순탄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인생 누가 압니까 언젠가 예수님이 tracer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러 오실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나같이 힘든 상황에서만 예수님이 만나러 오시는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남부럽지 않게 평탄한 삶을 사는데도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경우도 많더군요. -
tracer 198.***.38.59 2009-10-2813:23:39
제가 여쭈어 본 것은 본능과 충동적 욕구에 의한 행동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실의 판단 여부”에 있어서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판단을 안하는 경우가 있으시냐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 어떠한 주장이 사실일 확률이 높으냐 아니냐 등등을 따질 때 대부분의 경우 객관적인 근거에 판단을 기반하시지 않으시나요? 매사에 그럴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런 것이 더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종교가 주장하는 초자연적인 사실의 판단 여부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관대한 것이 저에게는 의아하게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본능과 욕구에 의해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우리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최소한 그것들이 “비합리적” 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인지하고 계시지요.
혹시, 님이 본능과 욕구에 의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시는 것처럼, 종교에 대한 믿음도 님의 본능과 욕구에 의한 행위는 아닐까요? 사람에 따라 그 본능에 대한 차이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믿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 쉽게, 또는 정도에 따라서 큰 계기가 있을 때 그 본능이 살아난다는가 하는 생물학적인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님이 내적으로 굉장히 큰 감정적 체험을 하신 것에 대해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그 체험이 어떻게 특정한 종교(공교롭게도 내 주변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의 교리적 주장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사고의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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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223.144 2009-10-2903:21:18
뭘 질문하시는지 이제 좀 더 알거같습니다.
사실 초자연적인 거 이외에 대부분의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냥 경험에 기초해서 판단하든지 아니면 거의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게 되죠.
즉, 수사반장, CSI, 재판드라마 들에서 보듯, 거짓말쟁이의 그럴듯한 증언과 억울한 피해자의 증언중 어떤게 사실인지를 판단할경우도 있고,
그냥 5감에 있는 그대로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는것을 내가 사실이라 판단할 수도 있고 (이게 그나마 좀 판단내리기 쉬운거네요. 감각기관도 가끔 속긴 하지만),
자신의 경험에 의해 판단하는 것도 있고 (별똥별이 정말 운석이야! 나 그거 진짜로 봤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판단하는경우도 있고. (조선시대 하멜을 본사람; 거참 별 머릿털이 노란 사람도 다 있더군요. 못본사람: 이 양반이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인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공부해서 알아가는 역사적 사실도 있고, (고조선 이야기나 단군이야기 3국시대 이야기….이런거는 문헌에 의존하기도 하고…그냥 받아들일뿐이죠 뭐.)
세계불가사의,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새그림, 버뮤다 삼각지 미스터리, UFO 이런 문제들을 판단할 경우도 있지요.
뭐 이런것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방식이 제각각 이지요. 저도 어떤건 믿고 어떤건 안믿습니다. 별로 특별한 방식은 없는것 같고 그냥 자신의 경험이나 감각이나 교육이나 증언하는 사람의 신뢰성이나 이런거 가지고 대충 판단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거나 말거나 대부분은 제 삶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믿거나 말거나 상관할바도 안되지요. 죽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도 그전에는 똑같았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냥 죽을때 되서 죽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 고민해서 뭐해? 그냥 열심히 살면 되지….이런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문제를 직접경험해보니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는걸 깨닫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법이 예수님께 있다는것을 그냥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된겁니다. 예 아주 큰 비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구체적인 단계단계를 저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사람1: 귀신 봤어? 안봤으니 난 못믿어.
사람2: 난 안봤어도 믿는데….사람1: 너 우주인 믿어? 난 내눈으로 봐야 믿어.
사람2: 이 광대한 우주에 지구만한 행성이 지구밖에 없겠어? 분명히 있어.
사람2: UFO도 외계인이 방문하는거야.
사람1: 그냥 기상현상이나 군사비밀 병기실험일거야.예제들이 좀 빈약하지만, 위의 경우에 내가 사람1이냐 사람2에 속할지는 거의 임의적입니다. tracer님 예상대로 제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경험못한 별 해괴한 사람도 있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다시말하면 저는 이런 문제들도 별로 합리성을 가지고 판단하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어렸을때부터 초자연적인 현상은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었구요. 과학이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는 분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종교적이냐 아니냐하고는 다른 문제같아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것을 다 종교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을 스스로 깨달음으로 해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것들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굉장히 큰 감정적 체험을 한게 아니라, 영적 체엄을 했다고 저는 표현하고 싶습니다. tracer님은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드시니, ‘감정적’체험이라고 표현하시는게 더 편하시겠지요.
당연히 사고의 비약을 인정합니다. 사고뿐만아니라 여러 삶의 활동과 문제의 해결등이 연속적이지 않고 오히려 불연속적이 계단과도 같은게 많은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도 저는 불연속적인 계단과 같다고 비유하고 싶고요. 어떤 문제에 접근할때 우리가 많이 쓰는 ‘직관’이라는 것도, 사고의 불연속적인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직관적인 접근방법을 택합니다. 논술문제를 풀때도, 결론부터 내려놓고, 소소한 논증논제들을 풀어가지요. 물리문제도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은 대부분 답부터 대충 직관력으로 추측하고 소소한 접근법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향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들을 구체화해나가는 거죠. 물론 사람에 따라 좀 다르고, 어떤경우 단순문제들은 방향이나 답을 미리 추측할 필요없이 단순작업해야 할경우도 있구요.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게 좀 트레이서님이 말씀하시는것과 좀 벗어났을 수도 있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종교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예술분야는 물론이고, 물리분야마저도, 사고의 비약이 아주 많이 쓰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제 생각에, 천재들은 특히 더 이 사고의 비약내지는 직관으로 문제를 접근할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제가 잠 잘시간이 넘어선지 좀 횡설 수설 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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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r 198.***.38.59 2009-10-2913:25:44
예, 다른 분야에서도 사고의 비약이 많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그런 사고의 비약 특히 언급하신 답을 정해놓고 과정을 맞추려고 하는 행위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그런거다..라고 넘어가는게 아니라, 그런 오류적인 생각과 행동에 의해 얼마나 많은 불행들이 일어났습니까?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맞지 않는 모순들은 다 미스테리로 판단하는 거죠.
맨위에 쓰신 판단의 보류가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초자연적인 것은 예외로 두시나요? 종교와 영적 체험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쉬운 답.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답으로 끌리기 쉬운 인간의 본능이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감각과 뇌의 작용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특별한 체험들을 바로 “영적” 인 것으로 판단하느냐 이 말이죠, 왜 판단을 보류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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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223.144 2009-10-3100: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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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떤 정해진 방법이 있는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자체를 놓고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따지는건 무의미 한것같습니다. 어쨌거나 방법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그런데, 트레이서님이 말하고 싶은것은, ‘답을 정해놓고’ 다른 답의 가능성을 생각도 안해보고 그 과정을 찾아간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위에서 내가 말한 직관의 방법들이 항상 옳은것으로 판명나는 것은 아니겠죠. 다만, 그 방법밖엔 다른 방법들이 없으니 그 직관안에서 비슷한 이런 답, 또는 저런답을 궁리하고, 구체적으로 그 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직관이 준 처음의 답은 진짜답이 아닐수 있지만, 일단 방향을 주었으니, 점차적으로 진짜해답에 가까이 갈수 있다는 겁니다. 제 믿음의 경험도 사실 비슷합니다. 처음엔 구약의 하나님을 믿기 힘들었고, 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가장 핵심적인것이 마음에 들어왔고, 나머지들은 다 처음부터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쉬운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트레이서님은 위에 말한 접근법이 오류이고, 그로 인해 많은 불행들이 일어났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좀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일단 십자군 전쟁이나, 가까운 예로 부쉬가 이용한 이락전쟁이나 대통령선거같은 것을 말하고자 하시는 거겠지요.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도 정치적인 부조리에서 너무나 많은 불행들이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와 사리사욕에 의해서 강요되어지고 통제되는 것들이 많고요. 그런데, 가만히 잘 생각해보세요. 이게 해답이 잘못되어서인가요? 공산주의가 결국 패망한 것이 공산주의 이론이 오류가 있어서인가요? 물론 당연히 오류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속에서 더 많은 오류들이 있었겠지요. 인간들의 죄성에서 오는 오류들. 자본주의안에서도 너무나 많은 그런 오류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사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이론적으로 오류가 더 많다고 봅니다만…이 오류의 판단 기준은 또 무엇인가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 번영? 너무 복잡해집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어떤 “인간적인 이론”도 불행을 막는 해법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행은 어차피 어떤 인간이 만든 이론으로도 일어나게 됩니다. 인간자체가 불완전해서죠.앞서 말한 종교적인 행위가 초래한 불행으로 돌아가보지요. 십자군 전쟁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나요? 부패한 종교세력에 의한 파워전쟁이었지 사랑과 구원의 방법은 아니었겠지요? 이슬람세력과의 테러와의 전쟁등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할까요? 트레이서님도 아니라는 것을 아실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빌라도 앞에서 하나 저항도 없이 묵묵히 십자가에 박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솔루션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욕망에 따라 이용하려는 인간의 연약함이 문제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아래 이슬람인들을 미워하고 자신과 다른 사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라고 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그래서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자신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병자와 죄지은 자를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실제로 치유하시는것이 사역의 대부분이쟎아요. 결국 예수님이 주신 솔루션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잘못배우고 잘못이용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문제인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중에서 이런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많음을 느끼는것도 사실입니다. 죄 사함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없겠지만,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려는 노력보다는 어떤 죄를 지어도 나는 용서받는다 라고 잘못이해해서 아무 두려움없이 죄를 습관적으로 지으면 큰 문제죠.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짓는 어떤 죄들도 다 용서하심을 믿습니다만요. 서로 사랑으로 대하기 보다는 정죄를 받는걸 두려워하거나 정죄를 하려고 하는 경우는 사실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끼리 시험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저 자신도 제 자신이 안과 밖이 너무 다른걸 많이 느껴서 위선자같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나의 모든 더러움과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앞에서는 위선을 떨수도 없지요. 하지만 사람들앞에선 위선을 떨때가 있습니다. 이런것도 다 평생 극복해나가야 하는것이 믿음생활인것 같습니다. 어떤 유명한 성직자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누가 자신에게 “당신 이미 구원받았오?”하고 물어보면, 이 사람은 “삶이 죽을때까지 매일매일 구원을 받는 은혜의 과정”이라고 대답한답니다 (영어로 간단히 말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 난 이미 구원받았으니, 이제 어떻게 행동해도 상관없어 뭐 이런게 아니란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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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게 쉬운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눈깜땡깜 하나 고르자 뭐 이런건 절대로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사랑과 영혼의 구원, 천국을 가르치시고 있는데, 그 하나하나 든 비유가 다 받아들이기 쉬운 비유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자신이 부활하신것이 나같은 사람에게 쉬운 답이라고 받아드리기 쉬울까요. 오히려 제게는 싸이언톨로지 같은게 정말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게 들립니다. 불교도 부처님이 자비를 가르치시고 사찰에 가면 얼마나 평화스럽습니까…저는 믿음을 가지기 전엔 제가 종교를 선택한다면 아마 불교를 선택하리라 마음먹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예수님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제가, 죽음의 그림자를 맛보았고, 원죄나 영혼이나 빛(물리적 빛이 아닙니다)이나 생명이나 사랑이나 그런 핵심적인 가르침의 깊이를 어떤식으로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예수님이 진리일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깨달음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여기에 설명하기 힘든 비약이 있습니다. 거의 순간적인 방식으로 이것이 인생의 핵심을 간파했고 이것이 진리다 하는 깨달음(방향. 구체적인 것은 알지도 못했지만.)이 온거죠.
제게는 이런 판단을 보류해야 할 이유가 없고 아주 긴급한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제 영혼이 당장 지옥같은 어둠에 빠져있는데, 무슨 보류를 이야기 합니까. 제게는 예수님이 말 그대로 ‘생명’입니다.
그러나 왜 트레이서님이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저도 압니다.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들에는 보통 그것을 해야할 데드라인이 있습니다.
트레이서님은 언젠가 자신이 죽을건지는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경험해보신적이 없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결정해야할 데드라인이 되는데, 어느 누구도 그 데드라인이 내일이 될지 60년후가 될지를 모를뿐아니라, 그 데드라인이 무엇을 해야하는 데드라인인지도 잘 모르지요. 영원히 사는 영혼을 믿지않고서는, 그리고 천국을 믿지 않고서는 그 데드라인이 그냥 허망하게 의미도 없이 지나가 버리겠지요. 예수님을 단숨에 영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시간의 도움없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트레이서님과 소통이 일어날수 없다는거 압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경험. 제가 겪은 경험을 트레이서님은 겪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사람마다 다 다를수 있을것 같습니다.)저는 가끔 모든 사람의 DNA에 하나님을 찾는 욕구(지향성)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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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r 98.***.201.121 2009-11-0102:13:55
자세하고 성의있는 답변과 설명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한 ‘답을 정해놓고 과정을 맞춰가는 행위’는 단지 종교의 이름으로 이뤄진 악행들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불어 말씀하신 스탈린, 히틀러 등등 인류 역사상 저질러진 만행들이 대부분 보면 어떤 경직된 도그마나 이데올로기를 세워 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행태에서 벌어진 일이며, 종교는 그러한 인간의 약점이 악용되기 쉽게 구성된 시스템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영원한 생명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금 사는 이 삶을 하루라도 더 의미있게 살려고 하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것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잘 살지 않으면 허망하게 가버리게 되겠지요.
저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일부 사람의 dna에는 하나님을 찾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게 하는 것이 숨겨져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dna가 없어서 아무리 같은 극한 상황이 와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님이 써주신 경험과 통찰에 대해서 좀 더 읽어보고 되새겨 봐야 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 나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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