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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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oica 69.***.144.179 4078

    늦은 답장

    길상호

    이사를 하고 나서야 답장을 씁니다
    늦은 새벽 어두운 골목을 돌아 닿곤 하던 집
    내 발자국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
    바람 소리로 뒤척이던 나이 많은 감나무,
    지난 가을 당신 계절에 붉게 물든 편지를
    하루에도 몇 통씩 마루에 올려 놓곤 했지요
    그 편지 봉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잎들은
    모아 태워도 마당 가득 또 쌓여 있었습니다
    나 그 마음도 모르고 편지 받아 읽는 밤이면
    점점 눈멀어 점자를 읽듯 무딘 손끝으로
    잎맥을 따라가곤 했지요 그러면 거기
    내가 걸었던 길보다 더 많은 길 숨겨져 있어
    무거운 생각을 지고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당신, 끝자리마다 환한 등불을 매달기 위해
    답답한 마음으로 손을 뻗던 가지와
    암벽에 막혀 울던 뿌리의 길도 보였습니다
    외풍과 함께 잠들기 시작한 늦가을 그 편지는
    제 속의 불길을 꺼내 언 몸을 녹이고
    아침마다 빛이 바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
    폭설이 많았던 겨울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는 길가 마늘밭에서
    지푸라기 사이로 고개 내민 싹들을 보았습니다
    올해는 누가 당신의 편지 받아 볼는지
    나는 이제 또 다른 가지를 타고 이곳에 와서
    당신이 보냈던 편지 다시 떠올립니다

    Goran Sollscher – Yesterday

    • . 24.***.83.65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파야 하는데, 왜 머리가 아프지?

      해석좀 해주세요. 시가 너무 어렵네요.

    • 해석 76.***.198.33

      옛 연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 시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참고로 국어성적 별로였던 일인.

    • tracer 198.***.38.59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eroica 69.***.144.179

      양현근시인이 쓴 ‘늦은답장’ 감상평입니다.
      “가을은 감나무 이파리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파랑색에서 시작하여 주황, 빨강, 연노랑색으로 채색되는 뜨락의 감나무 이파리를 쳐다보노라면 계절의 변화와 무심한 세월의 흐름이 한 눈에 들여다 보입니다. 이사한 뒤 전에 살던 집, 늦은 새벽 발자국이 제일 먼저 당도하곤 하던 그 집앞의 감나무가 곧 화자의 얘기가 되어 감나무 이파리에 뒤늦은 답장을 잔뜩 써보내나 봅니다. 연두색 잎맥과 가지, 단단한 바위에 가로막히던 뿌리의 아픔까지, 그리고 외풍으로 몸을 낮춰야만 했던 인고의 시절들이 지난 겨울의 폭설을 이겨낸 힘이 되었을 거라고 자백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련이 있었기에 지푸라기 사이로 포릇하게 싹을 내민 마늘귀의 희망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감나무 한 그루에서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인의 지혜와 心眼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문득, 고향집 늙은 감나무에게 부치는 편지라도 한 통 써보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입니다.”

      어제 덕수궁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보수단체의 테러로 완전 파괴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자리엔 다시 분향소가 차려지지 못하도록 경찰이 또 다시 전경버스로 바리케이트를 ㅊㅕㅅ다고 하더군요. 그 와중에 시민들은 덕수궁옆 길가 한귀퉁이에 작은 밥상하나로 분향소를 다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바로 그것이 이 시에서 표현된 마늘귀의 희망이라 생각하고 올려본 시입니다.

    • . 24.***.83.65

      에로이카님, 양현근 시인의 감상도 좀 어렵네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양현근 시인이 이 시에 대한 힌트를 많이 제공하고 있네요.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시인이 화자이고, 감나무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대상입니다.
      옛집에 오래된 감나무 한그루가 화자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 감나무가 말은 안해도, 매해마다 보내는 그 인고의 세월과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화자는 느낀바가 많았고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네요. 감나무 잎파리는 마치 편지 봉투로 비유가 되었고, 그 감나무 잎파리에 스며든 세세한 잎줄기며 그런것들이, (인생의) 지혜로 가득한 그런 편지의 멧시지로 비유가 되었네요.

      그리고 이제 새집으로 이사하고 보니, 문득 그 감나무의 존재가 너무나 그립네요. 내 인생의 스승처럼 턱 허니 버티고 있으며 내가 기댈수 있는 그런 정신적인 지지감을 제공해주었던 그 옛집의 감나무. 그 감나무를 생각하며 이 시(이게 바로 편지에 대한 답장)를 쓰네요. 이제 새 집에 감나무는 없지만, 마늘 새순(생명력)을 바라보며 감나무가 떠오르네요. 그 옛집에 또 누군가가 이사와서 감나무로부터 편지(이파리)를 받겠군요.

      제목이 ‘감나무’가 아니라, ‘늦은 답장’이라고 함으로써, 무언가의 소중함을 지나간뒤에야 뒤늦게 깨닫는 그런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듯합니다.

      이 시보다는 에로이카님의 이 시를 올린 동기가 더 감명깊습니다.

    • 해석2 76.***.198.33

      저처럼 옛 연인에 대한 추억이라고 상상하며 읽으신 분은 안 계신가요? ㅋㅋ

    • eroica 69.***.144.179

      제가 이 시를 처음접했던 때가 2002년 가을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저도 애절한 love story로 생각을 했었죠 :-)

    • . 24.***.83.65

      제가 시인은 아니지만,
      사실 시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한 모티프(여기서는 감나무)를 얻어서 시상을 얻더라도, 최대한 그 시에 많은 것 많은 상황을 함축시키려 노력할것 같습니다. 최소의 단어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커버할수 있게…그래야 누구나 이 짧은 한편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상황과 연관지어 읽으며 마음을 치유받을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가 좀 난해해지는 단점(어떤 시인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도 감수해야 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때, 옛 연인에 대한 추억이나 러브레터도 틀린 생각이 아니죠. 자신이 시를 읽으며 감동받으면 그게 좋은 거죠. 사실 시를 가지고 내 해석이 맞아 네 해석이 맞아 하는것은 의미가 없는것 같습니다. 시를 직접 쓴 시인의 해석이 정답도 아니고(!), 각 독자의 몫이죠.

    • .. 24.***.227.228

      끝자리마다 환한 등불을 매달기 위해===>감(결실: 편지내용)
      그 편지 봉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잎들은==>편지봉투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