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 #83962
    아빠 24.***.56.18 3924

    저는 마산에 살고 있는 스물여덟살의
    애기아빠였던
    이상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스물한살에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고
    서툰 결혼생활에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물두살에 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을 얻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도 더 기뻤습니다.

    정은이….이정은.
    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스런
    딸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밤늦도록 자지도 않고
    저를 기다렸다가 그 고사리 같던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며
    제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제 볼에
    뽀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99년 2월 29일. 2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 쯤에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고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강아지를 잡으려다가 우리 아이가
    차에 치었다고 했습니다.

    하얀 침대시트 위에 가만히 누워 자는
    듯한 아기를 보자
    전 아이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6년 살고
    간 아이가 너무 가엾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많은 것 해주지
    못해서 더 맛있는 거
    못 먹여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진 않았는지
    무섭진 않았는지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그렇게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내 아기 정은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 하늘로 간 딸에게 보내는 편지 ***

    정은아. 사랑하는 내 딸!
    어젯밤 꿈에 네가 보였단다.

    아빠가 다섯 살 너의 생일 때 선물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네가 가장 좋아한 옷이었는데 못
    가져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아가가 가져갔더구나.

    늘 아빠 가슴속에 있던 네가
    오늘은 너무나 사무치게 보고싶어
    아빠는 견딜 수가 없구나.

    너를 잠시 다른 곳에 맡겨둔 거라고,
    너를 잃은 게 아니라고

    아빠 자신을 다스리며 참았던 고통이
    오늘은 한꺼번에 밀려와 네가 없는 아빠
    가슴을 칼로 도려 내는 것만 같다.

    아빠나이 스물 두 살.
    첫눈에 반한 너의 엄마와 결혼해서

    처음 얻은 너였지.
    너무나 조그맣고 부드러워 조금이라도
    세게 안으면 터질 것 같아
    아빠는 너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단다.

    조그만 포대기에 싸여 간간이 조그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할 때엔
    아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했단다.

    더운 여름날 행여나 나쁜 모기들이
    너를 물까봐,

    엄마와 나는 부채를 들고 밤새
    네 곁을 지키며 모기들을 쫓고
    그러다 한두 군데 물린 자국이 있으면
    아깝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지.

    어린 나이에 너를 얻어 사람들은
    네가 내 딸인 줄 몰라했지.

    하지만 아빠는 어딜 가든 너의 사진을
    들고 다니 며 자랑을 했고,
    아빠 친구들은 모두 너를 아주
    신기하게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단다.

    아빤 네가 있어 너무 행복했단다.
    먹지 않아도 너만 보고 있으면
    배가 불렀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을 몰랐지.

    한동안 낮과 밤이 바뀌어 엄마를 힘들게 했을 때
    아빤 잠시 네게 짜증을 내기도 했어.
    미안해, 아가야.

    네가 처음 옹알이를 하며 아빠라고
    불렀을 때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갖다놓고 또
    해보라고 아무리 애원을 하고
    부탁을 해도 너는 엄마만 불러서
    아빠를 애태웠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너를 보면서
    세상에 부러운 건
    아무 것도 없었단다.

    매일 늦잠 자는 아빠를 엄마대신
    아침마다 깨워주며
    아침인사 해주는 너만 있으면 만족했기에

    엄마가 네 남동생을 바랐지만 아빤
    네 동생은 바라지도 않았단다.

    2월의 마지막 날.
    너의 사고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을 땐
    아빤 네가 자는 줄만 알았단다.

    이마에 약간의 상처만 있었지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니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

    이미 실신해서 누워있는 너의 엄마와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빠는 너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제발 다시 한번만 더 살펴달라며

    의사선생님을 붙들고 얼마나 사정을 했는지…
    자꾸만 식어가는 너를 안고
    이렇게 너를 보낼 수 없다며 얼마나
    울부짖었지..

    여전히 예쁘고 작은 너를 너무나 빨리
    데려가는 하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단다.

    금방이라도 두 눈을 살포시 뜨면서
    아빠!”하고 달려갈 것 같은데
    너는 아무리 불러도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이 넓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해주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그 중에 천 분의 아니 만 분의 일도 못해준 게
    아빤 너무너무 아쉽구나.

    아프진 않았니? 고통 없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아기 많이 무섭진 않았니?

    너를 친 그 아저씨는 아빠가 용서했어.
    네 또래의 아들사진이 그 차에 걸려있는 걸 봤단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이미 너는 없는데 아무 것도 소용없었단다.

    정은아! 너를 지켜주지 못해 아빠 정말 미안해.
    이담에 태어날 땐 긴 생명 지니고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해보고 나중에 나중에 오래오래 살다가 가.
    아빠가 그렇게 되길 매일 빌어줄게.

    우리아기…착한 아기…아가!
    엄마 꿈에 한번 나와주렴. 엄마 힘내라고…

    아가…
    엄마랑 아빠는 우리 정은이 잊지 않을 거야.
    정은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걸 안 그 순간부터
    아빠가 정은이 따라 갈 그날까지…

    아빤 오늘까지만 슬퍼할게. 오늘까지만.
    하늘에서 아빠 지켜봐. 아빠 잘 할게.
    아빠 믿지?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한다. 정은아…

    • Feb 98.***.113.186

      28th was the last day of Feb in 1999.

    • Block 67.***.80.76

      같이 자식키우는 아비의 마음으로써 애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항상 긴장하며 사는것 같습니다. 세상 부모의 마음은 한가지인데 자식잃은 그마음이 어떨지… 마음이 아픕니다.

    • 텍슨 129.***.240.1

      저도 딸 하나 키우는 아비로써 이런 글 읽으면 마음이 저립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되었으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도 항상 생각납니다. 그럴때마다 자는 아이 얼굴 한 번 더보게 되고 시간 쪼개서 더 놀아주려고 하고 나이스하게 잘못한거 타이르려고도 합니다. 남일 같지 않군요. 그해 2월이 28일이든 29일이든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