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편 일기 – 퍼온글입니다.

  • #83720
    퍼왔어요 67.***.138.162 4530

    그냥 여기저기 지나가다가 글이 잔잔해서 퍼왔습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 태클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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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분히 읽어 보세요,
    뒤돌아 보게 되네요.

    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3년전 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 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 같이 내더군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길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 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 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이 보이면 꼭 천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 간이나

    몇 백원 안하는 귤 한 개 사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죠.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며칠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 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 탁자에 올려 놓았죠.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 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 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준적이 없었는데.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 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귤이든 뭐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남편의 일기 –

    • 알버트 192.***.75.30

      훌륭한 글 잘읽었습니다. 귤이 사랑의 불씨를 다시 살렸군요. 인간은 본래 사랑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순수한 사랑이 욕심과 관념의 그늘에 가려져서 그 빛을 잃었을 뿐이지요. 그 매개체가 무었이든 감동의 눈물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잊혀졋던 그 본질적 사랑을 다시 찾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게시판에서 여러가지 힘든 일들로 고민하시는 분들도 그런 메신저를 꼭 찾게 되길 바랍니다.

    • josh 71.***.151.60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게 정말 중요한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퍼왔어요 76.***.12.143

      이렇게 퍼와도 좋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 계시니까 너무 좋네요.
      종종 퍼와야겠어요. :-)

    • eb3 nsc 98.***.14.48

      어디에선가 봤었는데… 또 감동이네요… 부부사이에도 …. 조금만 챙겨주면 될일을….. 좋은글 …덕분에 맘이 따뜻해 지네요..

    • 꿀꿀 129.***.69.161

      좋은 내용이네요,, 저도 가끔 싸워 사이가 틀어질땐,,,매번,, 내가 이러고 살아야 대나,, 어찌보면 조금만 어긋나도 파국으로 치닿을것만 같고 그래요,, 어찌 어째 해서 풀리면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좋아지기도 하지만 말이죠,,저도 사실 ,,와이프한테 잘해주는편이 아닌데 걱정입니다,,

    • 198.***.210.230

      지금 시각 9시반, 커피한잔 하면서 딱 이 글 읽고있는데….갑작이 눈물이…. 나 남자 맞나? 옆에 직원들 볼까봐 안경 벗어서 딱는척하고 있습니다. 에고 챙피해라…

    • 살아보면 171.***.224.10

      밥먹다 눈물나서 죽을 뻔했네요. 저는 12년차들어갑니다. 둘다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본적이 없어요. 사람 찾다 찾다 저는 33살에 내인생 처음으로 그렇게 쫒아다니며 결혼한 사람이어서요. 그리고 특별히 서로에게 잘 못해주는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에서 사람들이 많이 짤리는 것 보고 우울해지니 괜히 집에 불만을 가지게 되더군요. 이젠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가서 너무 바빠져서 집안에도 불만이 없고 오히려 집사람과 애들에게 더 잘 해주고 싶어요. 남자들은 밖에서 행복해야 되나 봅니다. 아무튼, 밥먹다 눈물나서 좀 쉬면서 이글 쓰네요. 고맙습니다.

    • 퍼왔어요 67.***.138.162

      와우~ 많은 분들이 저처럼 잔잔한 느낌들을 받으셨나보네요. 퍼오길 잘한것 같아요 흐흐..전 아직 결혼 1년차고, 아이는 나올때가 지났는데… 아직 와이프 배에 있네요…오늘 내일 합니다. 아직 싸워본적이 없는데…왠지 걱정 되네요 -_-;;

      다들 집에가셔서 와이프 한번씩 꼭~ 안아주세요 그러면 맘이 다시 편해질듯 하네요. ^^ 오늘도 즐거운 하루!

    • j 67.***.91.165

      아내가 fullbright J-1 2year rule 때문에 한국에 있습니다. 그냥 힘드네요. 20년을 넘게 함께 해온 아낸데요(연애 시절 포함). KATUSA로 있을 때 아침 식사에 나오는 오렌지를 아내에게 가져다 주곤했습니다 (연애 시절). 그 당시 한국에서 오랜지는 귀한 과일이었으니까요. 갑자기 아내에게 오륀쥐를 가져다 주고 싶어지는군요. 사랑해…

    • 우연히 68.***.44.152

      주루룩 눈물 흘리고 저만 그런가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저도 남편이랑 부부싸움을 한 뒤 남편한테 한국마켓에서 장을 봐오라고 부탁을 했지요. 저희 집에서 한 2시간 정도 가야하거든요. 그랬더니 제가 좋아하는 것을 두루두루 사온 것을 보고 정말 감동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아이 대학에 떨어드리고 오면서 한국 음식점 들러서 먹고 오는데 제가 아무말도 안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게장백반 시키는 것을 보고 고마웠답니다.

      아무리 부부싸움 많이 하고 이혼하자고 했던 부부라도 살면 살수록 정이 새록새록 더 붙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너무나 많이 알잖아요. 참 좋은 글이네요.

    • hgt 68.***.71.158

      전 결혼 6년차.. 와이프와 결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와 와이프
      고생만 시키고 있습니다. 글 읽으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눈물
      찔금 나네요
      연애 2년후 결혼을 하였지만 결혼하고나니. 전혀 딴사람..
      내가 알던 나의 여자가 아니더라구요.. 성격도 전혀 틀리고
      싸움도 정말 많이하고 한 6개월에서 1년사이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30년이 넘게 서로 다른 가정생활에서 생활하다
      둘 이 만나 살게 되니 당연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ㅎㅎ 그당시에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암튼 전 지금 행복하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한가정을
      꾸리는 저로서 책임감도 생기고 … 암튼 이글을 읽고 아내한테
      더 잘해줘야겠네요
      저 하나만 믿고 이 미국땅에 와준것만도 감사한데 ㅋㅋ

    • 텍슨 129.***.2.221

      부부가 같이 운 대목에서 저도 갑자기 눈물 핑…ㅎㅎ 저도 이제 내년이면 결혼 10년차인데 그러고보니 이혼 얘기는 없었지만 저렇게 말안하고 몇주 지내본 적은 있네요.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가서 설겆이 해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