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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음강 자서전♥사랑이란(12)
2003년 9월 청주 00씨에 빠져 있을 무렵에 인터넷 사이트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는 연락을 취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가고 싶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나는 돈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애인복지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터라 장애인복지의 흐름과 인권을 중시하던 나로서는 내 앞 가림도
못하면서도 오지랖 넓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자청을 하였던 것이다. 당시 장애인계는 탈시설이 이슈가 되고 그룹홈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35세인 그녀는 뇌병변1급 장애인으로, 18년을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워낙 중증의
장애를 가져서, 신변처리나 식사 등 일상생활에 있어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녀를 그룹홈에
연결해서, 시설에서 사회로 나와 자유롭게 살게 해 주고 싶어서, 도움을 주고자 연락을 취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그녀의 그 모습이
매우 당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돈도 없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안 되는 중증장애 여성이, 자립을
선언한 것이기에…….. 친한 보육교사에게 내 이야기를 했고 내가 기자라는 것을 안 보육교사는 “10월에 000
50주년기념식이 있으니 보도를 부탁한다.”고 하여 나는 도움을 청한 그녀도 만나볼 요량으로 요청에 응했다. 그렇게 첫 만남을 한
그녀는 밝고 당찼다. 취재를 마치고 000 50주년기념 책자를 한권 받아서 속초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책자에 실린 그녀의 시를
읽은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희망과 꿈을 가질 아무런 조건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헤어진 그녀를 만날 명분은
없었다. 그날 나는 꼬박 밤을 지새웠다. 그녀와 함께 꿈과 희망을 키워 가리라!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지체장애1급인
내가 뇌병변1급인 그녀의 모든 것을 돌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상황에 맞춰 구조도 바꾸고, 장비도 만들고 연구를
하면, 100%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다. 휴대폰 문자로 말이다. 이런 나를 그녀는 시설 선생들에게
“미친 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나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 객관성을 가진 사례로 끊임없이 설명을 하고 자신감을
가진 나에게 “신뢰와 믿음의 확신이 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시설에서 나와서
음강씨와 살겠다.”고 선언을 하였고, 그녀의 어머님은 펄쩍 뛰었으나, 나를 만나보고는 나를 신뢰하고는, 그녀를 내게 떠밀어
2003년 11월 3일부터 함께 살게 되었다. 알고 지낸지 불과 한 달만에…….“중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의 모든 수발을
들면서 단 몇 시간도 함께 살 수 없다.”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으나, 우리부부는 그들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보여주며
10년 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