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로맨스

  • #410309
    bados 163.***.101.149 4540
    회사가 워낙 크다 보니 직원 인원 다 합치면 웬만한 소도시 인구 맞먹는다. 

    그래서 처음 보는 여자 이름으로 이메일이 오면 누군가 궁금해서 LDAP 으로 사진부터

    찾아본다. 그리고 혼자 점수 매기기 놀이도 한다. 대부분은 4-6점 선인데, 가끔 7점 짜리

    이상 나올 때도 있다. 대개 인턴 사원이거나, 아직 패션 스타일에 신경 쓸 여유가 있는 싱글들이다. 


    암튼, 오늘 아침에 또 approve 할 게 좀 쌓여 있어서 하나씩 처리하고 있는데, 8점 짜리 히스패닉 여자였다.

    예전에 잠깐 직원들 access level 정리할 게 있어서 한 번 연락한 적이 있어서 생판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근데 request가 좀 의심쩍은 것이 있어서 지역 담당 매니저한테 이메일, 전화 각각 한 번 씩 해 주고 

    이 직원이 보낸 request가 valid 한 건지 확인해 달라 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전혀 안 그래도 되는데, 8점이라서 메신저로 진행 상황을 친절하면서도 간략하게 보고해 줬다. 

    더 얘기를 해 보고 싶어서 잔머리를 7천 rpm으로 굴리며 골똘히 일에 관련된 질문들을 쥐어 짜내면서 

    분위기를 파악해 봤다. 괜히 바쁜데 쓸데없는 얘기 자꾸 걸면 나 같아도 짜증나니까 말이다. 

    여자를 잘 안다고 말은 못 하지만,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이 귀찮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싫은 사람이 얘기 걸면

    보통 대답이 늦고 짧으며, lol 같은 이모티콘을 안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다. 평소에 그런 관심을 받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자기 일에 대해서 물어보면 열정을 가지고 대답해 주기 마련이다. 물론 상대방이 짜증나는 루저가 아니라는

    조건이 붙지만. 그리고 그 일이 상당히 중요하고 대단한 것임을 인정해 주면 누구나 self-worth를 느끼고 

    기분 좋아한다는 것을, 수 십 번도 넘게 들은 Dale Carnegie의 책들을 통해 명심하고, 직장에서건 

    다른 환경에서 건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채팅한 지 시간이 꽤 흘러 농담도 하고, 그녀가 나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stage 2로 넘어간 것을 알았다. 이 쯤 되면 formal 한 관계에서 약간 informal 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따분한 일 이야기로 억지로 대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직장 동료이고

    계속 그런 선을 유지해야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칫 나중에 어떤 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끝맺음은 거의 반드시 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무슨 얘긴지 잘 알 거다.


    서너시간이 지나도록 일 하는 중간 중간에 짧지만 재밌는 농담거리를 만들어 주고 받기를 하는데, 여자가 외모만

    8점인 게 아니라, 두뇌 등급도 8.5 점 수준이었다. 농담 받아치는 수준이 ‘허허헛’ 하는 감탄이 떨어질 정도로 

    스피디한 위트와 유머가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나를 웃기는 여자는 보기가 정말 보기가 힘드는데, 흔치 않은 

    인물을 발견한 것이었다. 나랑 얘기하는 바람에 트레이닝에 집중 못 해서 70점 밖에 못 받았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었다며 말도 곱게 하고, 컴터 끄고 나가기 전에 “Have a grrrrrreat evening!” 

    이라며 활기차게 인사하는 그녀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언제 만나면 자기가 맥주 한 잔 쏘겠다는 말 한 마디에 

    서서히 그녀의 덕후견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 본다. 


    일이 익숙해져서 살짝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는데, 회사 와서 일해야 하는 낙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예쁘고 재치 만점인 그녀도 비슷하게 느끼길 바라며 그 깡시골 사막에서 오늘 하루도 잘 마감하시길. ㅎㅎㅎ
    • 지나가다 208.***.136.131

      그런 재미 있으면 좋지요! 님이 부럽습니다.
      저도 이전 회사에선 메시져 하면서 서로 flirting (장난수준) 하는 동료들 있었는데
      그것도 은근 활력이 되곤 했습니다 :)

    • bados 163.***.101.151

      낙이 따로 있나요. 주어진 환경에서 재미있게 지내면 되는 거죠. ㅎ

      가만히 앉아서 재미없다고 불평만 늘면 그게 늙어간다는 징표 아닐까요.

    • 지나가다 70.***.41.58

      아 저도 좀 활력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일하는데는 여자라곤 다 40대 이상이고 직원평균연령이아마 45될것같습니다. 20대후반인데 주변에선 결혼상대찾으라난리고.. 원글님회사의 4-5등급이라도 봤으면 행복하겠습니다.

      • 공감 74.***.31.27

        저와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에 있으시네요~~~ㅠ.ㅠ

    • bados 68.***.68.58

      이번 주에 휴스턴 팀에서 미팅 한답시고 우리 도시로 떼거지로 몰려온답니다. 그 사이에 또 다른 8점 미녀(전직 수영 선수라 몸매가 예술입니다. 솔직히 8.5 정도)가 오는데, 분기마다 audit 때문에 우리 사무실로 옵니다. 그래서 몇 번 얘기 나눠봤는데, 역시 운동 했던 사람이라 그런가 성격도 쾌활하고 웃는 거 쳐다보면 그냥 몇 분 얘기만 해도 하루가 즐겁더군요. Huang 이면 중국 성인가요?
      일 없고 심심하면 같이 일하는 남자 동료랑 여직원들 사진 보고 점수 매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언젠가 저도 이 짓거리 그만 둘 때가 왔으면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