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기업의 기부문화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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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단일후보 118.***.235.138 2566
    기사출처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36473
    21세기 대한민국에서, 20세기 브라질을 본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2011-10-05 11:07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대기자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야권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재벌의 기부였다. 가장 화끈했던 한국경제신문 사설의 제목은 <재벌은 봉이다, 뜯어 먹는 자들이 너무 많다>
    ◇ 과연 재벌은 불쌍한 봉일까?

    재벌이 봉이면 죽어라 일해도 정규직에 절반 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뭘까, 아무 때고나 해고되는 하청업체 파견노동자는 뭘까, 직업병에 걸려도 제때 치료와 보상을 받기는커녕 몇 년씩 시위농성과 법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산재환자는 뭘까, 대기업을 ‘갑’으로 모시며 온갖 수모를 견뎌야 하는 중소하청업체는 뭘까? 봉이 먹어치우는 밥인가?

    대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직접 고용을 피하면서 수익을 올렸고, 중소기업으로부터 ‘갑’의 입장에서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 그렇게 정당한 임금을 못 받거나 쫓겨난 노동자, 불공정한 거래로 발생한 중소기업의 피해는 결국 사회가 떠맡아 처리하면서 국민의 혈세가 비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대기업의 이익창출을 지원한 사회환경적 정책비용은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대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 물론 대기업도 세금을 낸다. 그러나 세금만으로 할 바를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감세정책으로 대기업 법인세는 1단계 인하조치를 통해 25%에서 22%가 되었다. 2단계는 내년에 시행되어 법인세는 20%로 더 내려간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국내 500대 기업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2천451조9천700억 원으로 전년보다 9.2%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64% 상승한 104조8천747억 원으로 집계됐다. 계산 편하게 100조원이라 치자. 감세정책으로 25조원 낼 세금을 22조원 냈고, 내년엔 20조원으로 더 낮아진다. 그럼 20조원은 제대로 내게 될까? 명목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는 그 절반 정도만 낸다. 각종 공제와 비과세감면제도가 다시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R&D 세액공제가 있고 법인세 감면용으로 이용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도 있다. 대기업에게 혜택주는 느낌을 지우려고 이제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로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거기에다 재벌 총수 일가나 고위직 임원들 개인적으로는 종합부동산세 감세 혜택도 받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고환율 정책을 밀고 나가며 기업을 지원했다. 이 정부 출범 때 950원 채 안되던 것이 1천2백~1천3백 원을 오고갔다. 수출 대기업들은 덕분에 순이익을 불렸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고환율 저금리 정책의 부담을 서민들이 짊어지고 있다.

    ◇ 재벌의 사회기부를 법으로라도 막아야 하는 우리 현실

    그리고 재벌 총수 일가가 그만한 특권과 권세를 누릴 자격이 있나도 검증해 보아야 한다. KDI 한국개발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재벌 일가들은 자신이 가진 주식지분의 평균 17배에 이르는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되어 있다. 심지어 자신이 가진 지분보다 686배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벌도 있다는 것이 한국개발원 자료의 내용이다. 불과 몇 퍼센트, 십 몇 퍼센트의 지분으로 기업의 재정과 인사권을 독식한 채 자기 몫의 수십 배, 수백 배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 재벌 총수일가이다. 그걸 뒷받침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눈치와 충성 문화이기도 하지만 재벌 비판을 억눌러 온 정치권력과 언론도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재벌기업도, 재벌 총수 일가도 사회에 기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연간 기부액 분석을 보면 오히려 시민의 기부는 늘고 있지만 법인의 기부와 사업자의 기부는 그 증가세가 이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재벌 총수 일가의 기부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생색은 총수일가가 내지만 개인 재산이 아닌 법인 자금에서 나온 것이면 의미는 반감된다.

    기부를 해도 자신들이 만든 공익재단에 지분을 기부하는 방식도 많다. 기업이 세운 공익재단은 국가와 국민의 자산이다. 그런데 공익재단이 결국 자식에게 넘어가면 편법적인 재산의 대물림이 되고 엄격히 따지면 배임이 되고 만다. 그래서 회사 지분 5% 이상 기부는 증여세 50%를 내도록 하는 등 재벌의 사회 기부를 국가가 법을 동원해 막아야 하는 현실이다.

    기업은 국가를 떠받치는 한 축이다. 그만큼 소중하니 기업이 커가는 과정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업은 최소한의 공적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사회 기부이다. 그 기부가 동기나 목적, 방법이 재산의 편법승계나 총수 일가의 비리를 덮거나 물타기 하려는 의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사회적 책임에 진정성이 있다면 기부 이전에 기업에 몸담고 일하는 노동자와 협력기업들을 공정하게 대함으로써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 던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라는 충고도 하고 싶다.

    ◇ 세상이 꾸는 꿈, 들어나 봤나?

    부유층의 기부와 관련해 흔히 이야기 되는 사람이 브라질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주교 ‘돔 헬더 까마라'(1909~1999)이다. 당시 브라질 사회는 빈부 격차가 극심해 엘리트 특권층은 인구의 몇 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국민총생산의 60퍼센트를 독식하며 호의호식했다. 나라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었다. 까마라 대주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존감을 일깨우면서 빈민들을 위해 뛰어다녔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과의 인터뷰를 계속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성금을 내어 놓을 것을 호소했다.

    모금은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나 까마라 대주교는 가난을 조장하는 왜곡된 구조를 깨닫고 이를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토지와 생산수단을 독식한 부유층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결탁해 이익을 챙기는 정치권력,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타락한 언론, 권력과 부자들의 편에 서서 침묵하는 교회가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자 까마라 주교에 대한 여론은 일시에 바뀐다. 까마라의 기부운동에 적당히 응해 주던 지배층은 “대주교가 알고 보니 빨갱이었고 국가전복을 획책한다”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탄압하였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게 하자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따져 물으니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까마라 대주교가 회개하지 않는 기득권층과 모순된 사회구조를 향해 던진 유명한 말이다.

    이쪽에 넉넉히 쌓인 재화를 모자라는 저 쪽으로 옮겨 그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방법은 뭘까?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 돔 헬더 까마라는 그것을 ‘꿈’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혼자 꾸면 그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됩니다”라는 격언이 까마라 대주교가 남긴 말이다. 그러니 돈을 거두어 고루 나누는 일 만큼이나, 선거에서 이기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함께 꾸어야 할 꿈을 찾아내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은 어쩌면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의 양상은 까마라 대주교 당시의 브라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극화는 심해지는데 부유층은 재화를 독식하며 호의호식한다. 시혜적인 베푸는 기부는 적당히 형식적이다. 사람들을 일깨울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망가져 버렸다. <한국 일부> 교회는 병들고 썩어 제 몸 간수도 어렵다. 언론은 개념 상실에 오히려 탐욕스럽다. 정권은 ‘비즈니스노블레스아메리카 프랜들리’이다.

    정치공학과 정략을 들고 나온 기성 정치인보다 안철수, 박원순 등 정치신인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꿈의 공유’를 향한 국민의 갈구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기성 여야정치권과 보수언론은 부자 기부에 강남 아파트 월세를 붙들고 매달렸다. 그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그것도 유치한 색깔 공세로 일관했다.

    20세기 까마라 대주교 당시의 브라질과 별로 다르지 않다. 부끄러운 일이다. 촛불시위를 해도 못 알아듣고, 반값등록금 시위를 해도 읽어내지 못하고, 희망버스가 오가도 올라타지 못한다. 아메리카 프랜들리여서 내 나라 사정에 어두운 거라면 월가 시위라도 잘 살펴보라. 세상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언론은 권력을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소명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 언론이 여기있습니다
    기독교방송CBS
    http://www.cbs.co.kr/radio/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
    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
    사실을 근거한 속 시원한 생방송 시사수다방
    http://afreeca.com/gtv7

    먼 타국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일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