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일본학자의 고백- 나도 조선놈 사냥햇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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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에서는 관동대진재 88주기를 맞이하는 올해 제주도에서 3박 4일간(8월 27-30일)의 일정으로 기획전시회와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관동(간토)대진재’에 대하여 4회에 거쳐 소개해 그 이해를 돕고자 한다 – 기자 말

     

      

    ▲ 제6차 관동대진재 국제심포지움 관련 포스터 2011년 8월 27일-30일, 제주도 4.3평화공원과 강정마을 등지에서 관동대진재 관련 국제심포지움과 행사가 진행된다.

    ⓒ 김민수

    관동대진재

    1923년 9월 1일, 도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쿄의 3분의 2가 타버렸다. 일본 정치가들은 민심수습책으로 조선인들이 폭동을 계획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되었다. 함석헌도 이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50주기를 맞이하는 해에 <씨알의 소리>에 ‘내가 겪은 관동대진재’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런데 50년 만에 쓰인 그 글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관동대진재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글이었다. 그리고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음에도 일본의 반성도 우리 정부의 진상규명 활동도 없는 상황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동대진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먼저 <씨알의 소리>에 실린 함석헌의 ‘내가 겪은 관동대진재’라는 글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된 도쿄

     

    1923년 9월 1일 일본의 동경,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로인해, 당시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였던 도쿄가 하룻밤 사이에 3분의 2가 잿더미가 돼버렸다. 일본에서 그 지방을 ‘関東(일본어로는 간토, 한국식 발음으로는 관동)지방’이라 부르기 때문에 ‘관동대진재’라고 한다.

     

      

    ▲ 당시 보도내용 정치인들은 조선인들을 강도로 몰아가고,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 학살 사냥에 나선다.

    ⓒ 인터넷

    관동대진재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강점된 지 13년이 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3.1운동을 일으켜 잃었던 주권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에는 원하지 않았어도 일본과의 관계가 생활을 통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에는 도쿄에 유학하는 우리나라 학생도 상당히 많았고 그 시외 변두리에는 날품팔이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많이 있었다. 당연히 우리 사람 중에도 지진에 희생이 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은, 일본 사람들이 난데없이 조선 사람들이 난동을 꾸민다고 풍설을 돌려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린 일이었다. 소위 조선인 학살사건으로 수천 명이 일본 민간인의 손에 죽어간 것이다.

     

    함석헌 선생이 겪었던 관동대진재

     

    파출소를 지나 그 옆 골목으로 막 꺾어지려는 순간, 어디서 오는지 사람의 떼가 갑자기 몰려들며 “고레가 홈모노다. 고레가 홈모노다.” 와와 외치는 겁니다. “이게(이놈이) 진짜”라는 말입니다. 손에는 모두 번쩍번쩍 하는 일본도, 몽둥이, 대창, 철창 같은 것들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들으니 조선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불 놓고 우물에 독약을 치고 다니며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면서 청년단 재향군인 또 일반 시민을 일으켜 칼로 죽창으로 마구 죽인다는 것이요, 여기 잡아넣은 것은 보호한다면서 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 관동대진재 관동대진재당시의 학살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 인터넷자료

    관동대진재

     

    그 엇메었던  일본도, 깎아들었던 대창, 그 증오에 타는 눈들, 그 거품을 문 이빨들. 어디서 그것이  나왔을까? 내가 당했던 것은 약과입니다. 와세다고등예비학교는 와세다대학에 부속으로 있는 고등학교의 선생들이 나와서 강의를 해주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 선생들은 일본에서는 최고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보십시오. 하루는 한문 시간인데 그 선생은 나이도 상당히 들어 그때 인상으로 오십줄이나 된 것으로 보였는데, 지진 때의 무슨 얘기를 해가다가 “나두 조선놈 사냥했어요”라며 아주 당당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그 사람 결코 험악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점잖은  학자지요, 또 학생 중에 한국 사람들이 있는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아무리 시험준비 강습소라 하더라도 젊은 학생들을 보고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도, 꺼리는 기색도 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유학생회에서 조사단을 조직해서 조사한 것에 의하면 그때 학생들은  방학이라고 본국으로 많이 돌아가고  남아 있던 사람이 많지 않던 관계도 있지만 도심지에 있던 학생보다는 공장지대와 시외 지역에 살던 노동자가 많이 학살됐는데, 불을 놓느니 우물에 독약을 푼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전연 없는 거짓말이고, 한편으로 풍설을 돌리고는 보호한답시고, 모두 유치장 창고 같은 데 수용해 놓고는 집단적으로 모조리 죽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린애, 남자, 여자 할 것 없었고, 임신이 돼 만삭된 여자를 태아째 찔러 죽였다는 것까지 있었습니다(이상, 1973년 『씨알의 소리』에서 정리).

     

    아직도 반성 없는 일본과 진실규명 요구도 하지 않는 우리 정부

     

    일본은 과연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을까?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을 두려워했던 일본 정치인들은 그 수습책의 하나로 조선인을 학살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므로 관동대진재의 핵심은 ‘조선인학살’에 있는 것이다. 현재 4-5천명이 학살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결국은 조선 전체가 학살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정부는 그에 대해 반성도 없고 보상도 없다. 거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국외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여 진상규명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기 민족이 대량 학살되었는데도 말이다.

     

      

    ▲ 관동대진재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해야 했다.

    ⓒ 자료사진

    관동대진재

    ‘제노사이드(대량학살)’는 공권력에 의한 대량학살을 의미한다. 민족 혹은 인종에 의한 대량학살이란 의미도 있고, 전문학자들은 여러 삶이 한 삶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제노사이드의 범주에 넣는다. 관동대진재, 그것은 일본에 의한 조선인 제노사이드였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나라에 대해 과연 일본인들이나 그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아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그렇게 자기들의 문제에도 무관심한 민족을 어떻게 평가할까 싶은 것이다.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표기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을 국제기구에 제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얼마나 많은 정치적인 로비를 했을지 가늠할 수 있고, 언제든지 미국이 일본과 손을 잡고 우리나라를 ‘팽’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외교력 부재일까? 혹시 관동대진재처럼 그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민족을 미국이나 일본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닐까?

     

    그 표면적인 것들을 우리 현실에서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일본강점기를 미화하는 내용은 물론이요, 정신대 문제, 교과서왜곡 문제, 독도영유권 문제 등은 일본 극우정치인들만의 행보라고만 설명할 수 없다. 과연, 한국 내에는 이러한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없는 것일까?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세워가는 일은 과거를 되짚어 책임을 추궁하려함도 있으나 미래의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관동대진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제주 4.3평화공원과 강정마을 등지에서 열리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그 모두가 ‘내셔널리즘에 의한 제노사이드’적인 측면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기획전시회와 국제심포지엄은 8월 27일-30일 제주도 일원에서 진행합니다. 앞으로 4회에 거쳐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필자 김민수는 2011년 행사를 위한 실행 위원입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