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다니는데 우울증 걸린 것 같습니다

저도 지나가다 68.***.179.233

미국서 석사하는 입장에서, 제가 글쓴이분이라면, SNU 학부를 포기하기는 조금 아쉬울 것 같고, 전공이 글쓴이의 관심 분야인지 먼저 확인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A과에 관심 있는데, 어쨌든 SNU 입학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B과에 갔을 경우라면 전과를 하는 게 맞겠죠? 그래서 저라면, SNU 학부 졸업 + 리서치 (페이퍼) —> 미국교환학생 (랩에서 페이퍼 1-2개 내기, SNU에서 A학점 받기 어려운 전공과목을 교환학생동안 수강하여 A학점받고 GPA 물타기 하기) —> 미국박사 유학 할 것 같습니다. 리서치에 관심 없다는 것을 뒤늦게 댓글로 봤는데, 미국서 공대 나오셔도 석사까지만 하시면 나중에 직장에서 디렉터 이상 올라가기 힘드실 것 입니다. 요즘은 많은 분야에서 전문성+박사학위가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먼저, 친구들의 고등학교시절의 화려한 이력에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10대 때의 화려함은 잊으세요. 명문대 다니시는 분들 중에서 10대 때 화려한 아카데믹 퍼포먼스 등을 안 보인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한국 수능이나 미국 SAT 에서 과학이나 수학에서 한 과목이라도 만점 안 받은 사람이 없을 것 입니다. 글쓴이는 SNU 들어가신 것으로 보상받으신 것이고, 대학부터 다시 리셋된 것입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의 앞으로의 목표와의 관련성과 방향성이 더 중요합니다.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글쓴이의 경우 GPA에 불리할 수 있습니다. 수강 과목을 좀 줄이시고 3-4학년 때 전공과목의 기초가 되는 과목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게 좋습니다. GPA가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니, 미국 석박사 과정까지 생각하고 계신다면 학점은 최소 B+ 이상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게 좋겠습니다. 미드, 파이널 텀 보고 나서도 성적 나오기 전에 뭔가 내 학점이 A-B를 왔다갔다 할 거 같으면, 페이퍼 추가 제출하거나 해서 1점이라도 올려서 A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교수님과 논의해보세요. 경험상 수업 초반부터 적극적인 학생을 교수님이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피스 아워 못 맞춰서 따로 이메일 보내고, 디스커션 포럼에 글 남기고 이런 방식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상담도 했는데 결국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최소한 교수님과의 네트워크는 유지될 겁니다.

수업 자료(PPT 포함)도 중요하고, 개념의 흐름과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주교재”를 반복해서 읽는 것을 권장합니다. 교수님께 추천 도서를 요청하거나 학점을 잘 받는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인의 공부방식을 되돌아 보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수의 강의력이 부족하다고 수업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업을 잘 들어야 어떤 것이 시험에 나올지 캐치가 되고, 공부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서 100%로 소화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고, 복습 중에, 향후에 다음 챕터로 넘어가거나 다른 과목을 듣거나 리서처 중에 혹은 석박사과정에 깨달음 처럼 지식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학점 받을 만큼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으며, 여기저기 찾아보면서 모르는 것을 이해 하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보다 해당 수업 전후, 쉬는시간에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이해하려고 하면서 시간을 단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의 동급생들은 이런 것들을 글쓴이보다 더 잘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선행학습과 같은 사전노출 경험은 동기부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학/영재고의 1-2학년 수업은 AP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아시지요? 그냥 받아들이시고 교수/TA/동급생 등의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공대 수업은 난이도가 있으니, 오늘 수업 후 해당과목 리뷰는 바로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 과목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 여유로워지면, 전공이나 관심 분야의 랩을 빨리 잡고 리서치에 참여하며 흥미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연구 주제를 스스로 찾고 연구결과를 도출하고 저널에 내는 능력이 더 중요한데, 미국 대학들과는 다르게 한국 명문대 학부에서는 이 경험을 쌓기가 매우 어렵지만, 가능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학부때부터 리서치 기초가 탄탄한 친구들이 바로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미래의 목표에 따른 전략을 잘 세우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계시는 동안 산학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 혹은 전공과 관련된 인턴십을 하시면, 나중에 이력서가 매우 화려해질 것입니다.

저는 Y대 졸업 후 미국에서 전공 분야 랭킹 1위 프로그램에서 석사 과정 (이과이나 공대는 아님)을 하고 있는데, 제가 다니는 대학원은 절대평가라서 A학점 받기가 Y대 시절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평가면 내가 한 과목을 위해서 파이널이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공부하는데 (남이 나보다 시험을 얼마나 잘 볼 지 알 수 없으니), 여기는 시험이 오픈북으로 치는 것도 많고, 절대평가니까 이 정도만 공부하면 A 나오겠다하고 적당히만 하게 됩니다ㅎㅎ 그리고 미국학계 자체가 지식탐구형 인재를 기르는 과제나 리서치 기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해외학부 중인 글쓴이의 지인분이 이런 것에서 님과 다른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초반에 영어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것도 이제 익숙해졌고 네이티브스피커보다 잠 덜자고 1.3-1.5배 시간 더 써서 공부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영어가 되신다면 여기서 석사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실 겁니다. 이과쪽 과목 시험치면 고득점은 동북아시안/인도쪽이 다 가져갑니다- 상대적으로 SNU 공대 교육과정에서처럼 학부 때 선행학습이 되었으니까요-

미국 대학원들도 한국 통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SNU 출신이라고 하면 어드미션커미티나 아시아 학교를 좀 아는 분들은 글쓴이를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다만, 석사나 박사 유학오시면 랩에서의 퍼포먼스에서 다시 한 번 수준 차이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리서치 주제를 잘 찾아내고 페이퍼도 척척 쓰는데, 나는 왜 주제를 하나 못 잡나 자책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글쓴이의 SNU 동급생들이 밟아온 선행학습이나 단순히 A학점으로 길러지는 능력이 아닙니다.

미국대학에 환상도 좀 있으신 거 같은데, 시민/영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재정보조는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미국대학이든 대학원이든 탑스쿨에서는 서로가 기회를 얻기 위해 또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서로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는 소리없는 전쟁 입니다- 그런데 학기가 지날수록 실력차가 엄청나게 벌어집니다. SNU 다니시다가 미국 20위권이내에 학교가시면 결국 또 불만족 스러운 것이 있을거예요- 예를들어 SNU에서는 이런 개념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시키는데, 여기는 왜 학비 아깝게 이 소중한 수업시간에 설명하고 있지 이런 것… 제 대학원 전공수업에서는 교수님들이 “이런 것은 원래 prerequisite이니까 수업시간에 설명 안 할게” 하고 그냥 넘기시거나 TA office hour 활용하라고 하십니다, 미국 탑스쿨은 대부분 다 이렇습니다. 그래서 수강하실 때 syllabus를 잘 읽거나 교수님께 미리 연락을 취해서 prerequisite을 확인하고 그 과목을 꼭 듣고 싶으면, 방학을 이용하여 사전 학습을 해야 합니다.

SNU 들어가실 정도면 다 할 수 있어요. 지나가는 과정이니,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세요- SNU도 님이 해외출신이지만 수업을 따라갈 수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뽑은 것 입니다. 글쓴이분이 학업능력이 정말 안 될 것 같으면, 저도 이런 댓글 남기지도 않았을거예요. 그리고 영어를 잘 하시는 것은 한국에서는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쓴이의 장점도 한 번 정리해서 네트워크나 기회를 잡을 때 활용을 잘 하시고 작은 성취부터 다시 시작하시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멘탈관리 잘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