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 이거 누가 정한 거임?

lax 24.***.176.17

> 결국 문자가 발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거꾸로 말하면 문자가 음성언어를 거꾸로 지배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 난 것임.

지배라고 말하기에는 철자법 역사 속의 작은 hiccup 정도라고 말하고 싶네요. 작은 것이지만 님이 관심있는 게 그쪽인 거 같으니까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죠. 표기법이나 발음의 표준이 음성언어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던 시도들.

1. 짜장면/자장면 사태.
2. 에/애의 단모음 규정.
3. 외의 단모음 규정.
4. 위의 단모음 규정.

이것들이 그간 국어연구원 및 예전의 문교부가 했던 (제 생각에는 문제를 일으켰던) 결정들인데, 일부는 철회됐고 일부는 철회되지 않은 채 아직 문제가 되는 채로 남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들은 정부 차원에서 표준화의 일부로 포함되었는데, 이를 포함하는 문법/철자법 표준화 그 자체의 규모는 이것의 100배는 넘기 때문에 99.9를 잘 했고 0.1의 안 해도 될 오바질이 있었다 정도로 말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역전, 지배라고 말하면 매우 큰 과장이며 어폐죠.

위의 1

‘짜장면/자장면’ 사태는 국어연구원의 누군가 몇 명를 제외한 한국인 언중 100%의 반대로 짜장면으로 되돌아갔죠. 너무 유명한 일이니 더 얘기할 거 없고요.

위의 2

‘에/애’의 단모음 규정은 언제 이게 규정됐는지는 안 찾아봤지만 80년대나 그 언저리 정도에 규정됐을 걸로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걸 굳이 단모음이다라고 규정하지 않았다면 훨씬 상황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종 당시와 마찬가지로 복모음이라고 규정하면, 제/재가 헷갈릴 때 저이/자이 정도로 늘려서 말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방송이나 교육 당국에서 그런 workaround를 언중이 사용하도록 하는 게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면 점차 발음만으로도 제/재의 구분을 하는 사람의 수가 점차 늘어나게 되고 언젠가는 제/재가 그냥 발음만으로도 구분이 되겠죠.

일본인에게 아무리 ㄴ/ㅇ의 차이를 설명해봐야 그들은 ㅇ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한국인은 ㄴ/ㅇ의 차이를 너무 잘 알죠.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일단 다르게 적고 반복 훈련하면 작은 차이를 구분하는 게 가능합니다. 영어 사용자가 까/카를 구분 못하지만 한국인은 구분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위의 3, 4

‘외’의 단모음 규정도 80년대 그 언저리일 겁니다.

오래 전 제 고등학교 때로 올라가는데, 국어 선생님이 외삼촌의 ‘외’ 단모음이므로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고 입모양을 보여주며 얘기했죠.

‘외’가 단모음이냐는 시험 문제도 있었고요. 그러나 클래스 60명 전원이 외삼촌/왜삼촌을 구분해서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에 나오니 그걸 단모음이라고 외긴 했지만, 누구도 그 발음을 듣고 구분한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 심지어 국어 선생님도 학생이 발음하는 게 맞는지 틀린지 확인해줄 때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판정을 했습니다. 학생의 발음을 듣고 맞다 틀리다 얘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인의 99.999999%는 ‘외’를 복모음으로 발음합니다. 그래서 ‘외’의 단모음 주장도 철회됐습니다. ‘위’의 단모음 주장도 철회됐고요.

철회의 형태

짜장면/자장면은 복수를 표준으로 허용하는 형태로 철회됐고요 (하지만 자장면을 누가 쓰겠어요. 국어연구원 직원이나 쓰겠지).

‘외’의 단모음/복모음도 복수 표준을 허용하는 형태로 단모음 규정이 철회됐고요. 하지만 누가 ‘외’를 단모음으로 발음할 수 있겠어요. ‘외’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발음하는 단모음, 입술을 움직이며 ‘우애’로 발음하는 복모음 둘 다 맞는 발음입니다.

‘위’도 마찬가지로 단모음/복모음 복수 표준 형태로 단모음 규정이 철회됐습니다.

예외: 에/애

누가 철회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마도 아직 없어서 철회되지 않은게 님이 언급한 에/애의 단모음입니다. 에/애를 복모음으로 하는 걸 표준으로 한다면, 모음을 모아 표기한 후 단모음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이상한 예외를 없애서 한글 모음 규칙에 통일성과 아름다음을 더 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예외가 에/애 두 개 뿐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이걸 복모음이라고 규정했다면, 방송이나 교육 현장에서 제/재를 저이/자이의 빠른 발음 형태로 말해서 굳이 ‘아이’야? ‘어이’야? 라고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넣지 않아도 될 겁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민감해지면 점차 네/내도 발음만으로도 구분가능해질 겁니다. bed/bad의 유사 케이스를 생각해보면, 네/내 발음으로 구분하는 거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