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과 베트북이 맞장을 뜰 때
내 계급이 상사였다.차출보단
지원, 지원 우선였기에한시라도 빨리 가고픈 맘에
목숨을 걸어야는 험지에 지원을 했더니아니 쓰바,
날 뭘로 보고.
여군,
여군부대로 배치를 했다.
백마
부대였다.
백마부대장은 날 크게 반기며
천군만말 얻었다며 매우 기뻐했다.무튼,
가선 베트북 애덜 몇 잡아 족쳐서
의젓하게 훈장달고 돌아오면
온 동네 잔치를 하고
엄마도 품에 안기고
여동생도 품에 안기고짝사랑했던 현자.
그 지지배도
굳게닫힌 입술, 무거운 철몰 쓰고
웃으며 돌아오는 믿음직한칼상사.
그런 날 보면
내 품에 퐉,
앵길 줄 알아서였다.그러나
야속하게도 신은 내 편이 아녔다.백마부대
스키중대 소속였던 난베트북 애덜을 코앞에 둔 진지에서
눈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끝내 눈이 안 와
총 한 발 못 쏴 보고 철수하게 되었고가슴에 훈장이 안 달렸단 이유로
여동생년은
해외여행 다녀왔네비지? 얼굴이 때깔이 좋네? ㅉㅉㅉㅉㅉ
하며 품에 안 앵겼고,현자는
네가 그럼 그렇지라며
딴놈을 찾아 삼만리나 떠났고엄마만 날 끌어안아줬었다.
저런 썩을년들.
뭣이 중헌디.
칼아,
아이구 예쁜 내새끼.이 이미는
네가 살아 돌아 온 게
이미한텐 질 큰 훈장여.
.
.
.
.
.
전세기 70년대 초반 이후에 군생활을 한 애덜은
3년이란 세월이 안식년였다.물군대라
놀러가고
쉬러가고
재충전하러 가는 곳이 군대였지만나 땐
처맞기 위해 기상을 했고
처맞으며 취침을 했고
가끔은
자다 일어나 처맞고 다시 잤었다.당시의 군댄
처때려도 된다는 게
군법 1 조 1항에 명시되어 있어
얼마나 처맞는 게 유행였냠,내가 자대에 당도하자
고참들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당신은 처맞기 위해 군대 온 사람”~~~
.
.
.
.
.
군생활이 힘들었던 건고된 훈련과
처맞음의 연속, 그런 게 아녔다.답장이 없는 현자를 못 잊어
탈영욕구를 억제해야만 했었던 고통도 아녔다.가장 힘들었던 건
왜기였다.
애국간 국 사가 되어서야 마스틀 했었고,
국민교육헌장은 국 오가 되어서,
구구단은 국 육이 되어서 마스틀 했었고,국기에 대한 맹센
중 일인갈 때 마스틀 했으니
군인정신이니
군인의 길이니는 말해 뭐하랴.제대하고 나서
바드시 마스틀 했었다.내무사열할 때
중대장이 밸 툭 치면,
추앙서엉!!!
단풍하사 칼 있 으 마!!!!“군인정신 왜 봐.”
그럼 냥 목에 치렁치렁 지렁이를 감으며
힘찬 목소리로군인정신!!!
에 , 저, 그,
그게 있지말입니다.
원래 군인정신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해 또 처맞았고
소대장한테 처맞았고
선임하사에게 처맞았고
고참한테 처맞으며돌림빵을 당하곤 했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왜기 트라우마가 있는데,
.
.
.
.
.
그래야지.
게 맞다고 봐.시댄 변했는데
언젯적 왜기를 지금도 그걸 그대로 왜둬락하는 건
구태일 뿐이고,구닥다린
현시대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 변경해서왜기도
진화를 시켜야는 게 현명하다고 봐.먹고 살기 바빠
그 때 왜뒀던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엊그제
미 오야붕 바이든이
한국을 방문했단 뉴슬 보면서왜기의 추억이 소환되는 바람에
깜짝 놀랐잖아.국기에 대한 맹세.
걸 보면서 말야.
우리가 왰던 국기에 대한 맹세.
것관 다르게
걸 많이 수정 보완해서아주 고무적으로 진화를 시켜놨더라고.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살포시 얹는 것은 그대로드마안?
.
.
.
.
.
“나는 자랑스런성조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미국
에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천 22년 모월 모일
주방장
윤 완용
외
국힘반점 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