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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사는 30대 싱글로 다른 면에 있어서는 웬만큼 세련됐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패션, 문화생활 등등)
차 취미만큼 돈 쉽게 나가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차에 있어서만은 엄격한 금욕주의를 고수해왔습니다.
평생 코롤라 캠리 소나타 알티마 퓨전 같은 차들만 타본 촌놈이었습니다.
벤츠나 캐딜락 같은 차 렌트할 기회가 있어도, 친구가 한 번 몰아보라고 할 때도 눈이 높아질까봐 거절해왔습니다.
차에 대한 생각도 그냥 나중에 부자 되면 테슬라같이 조용한 차 사면 팟캐스트 듣기 좋겠다 정도…그러다 싸게 나왔길래 처음으로 컨버터블을 렌트 해봤습니다.
조금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냥 뚜껑 열고 달리면 재밌겠지 하는 생각으로.. 컨버터블 모델이 나오는 차는 대부분 성능 좋은 차라는 생각은 못했나봅니다.
컨버터블도 처음인데 머스탱처럼 좋은 차도 처음인데 심지어 GT모델을 렌트 받아서 바닷가로 나갔습니다.근데 와 정말 신세계더라고요.
컨버터블 탑을 열고 숲 속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위에서 뭔가 떨어질까 새같은 게 날아와서 얼굴에 부딪히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지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비치고 숲내 가득한 공기를 뚫고 나가며 머리로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데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차 안에 있으면 답답한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고 사방이 초록색인데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졌습니다.
레스토랑도 열었길래 (바깥에만 앉을 수 있음) 세 달만에 처음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바다에 가서 수영하고, 산에 가서 하이킹도 하고 혼자 즐거운 날을 보냈습니다.근데 처음에는 무서워서 아기고양이가 걸어다니듯 얌전하게 운전을 했는데 원체 급한 성격이라 좀 익숙해지니 점점 맹수처럼 사납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와… 그냥 밟으면 쭉 나가는 매력에 잠자던 질주본능이 깨어났습니다.
뚜껑 없이 달리는 스릴이 배가 되더라고요. 한 40~50마일로 달리다가 100마일로 확 밟았다가 좀 감속했다가 하며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달렸습니다.
또 핸들링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스티어링 휠부터가 고급이라 그 가죽에서 오는 촉감부터가 다른데, 돌리는 대로 저항 없이 꺾이고, 급커브에서도 차체가 안정감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이 때까지 운전하는 재미라는 게 뭔 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깜깜한 밤이었는데 저 멀리 도시 야경이 보이고 위를 올려다보니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리턴하러 운전해서 가는데 작별하기 아쉽더라고요.이제 저는 망했습니다.
착한 아내 얻어서 자식 낳고 근교에 좋은 집 사서 소나타처럼 적당히 지루한 차 끌고 다니는 좋은 가장이 되려던 제 꿈은 어제 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젠 성공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